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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군 46% "성희롱 당해"…여성징병제 노르웨이도 이렇다 [지구촌 과제 양성평등 下]

중앙일보

입력

 ‘135.6년.’

올해 세계경제포럼(WEF)의 성격차지수(GGI)가 추산한 전세계에서 성별 격차를 완전히 없애는데 걸리는 시간이다. 남성과 비교해 여성은 특히 정치적 권한 부문에서 크게 뒤떨어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나머지 건강ㆍ교육ㆍ경제 분야에 비해서다.

WEF 조사 대상 156개국의 의회 3만 5500석 가운데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26.1%. 여성 인구는 전세계 절반을 차지하지만, 각국 3400여 명의 행정부 장관 가운데 여성은 22.6%에 불과했다. 지금 속도라면 정치 영역에서 양성평등을 달성하는 시점은 145.5년 이후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여성 징병제, 과제는 실질적 남녀평등 

유럽 등 선진국의 양성평등 논의는 정치·사회·경제 분야에서 여성의 동등한 참여와 권리를 보장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양성평등 모범생’ 노르웨이의 사례는 최근 한국에서 여성 징병 논쟁을 부르며 자주 거론됐다. 2016년 8월부터 여성도 징집 대상이 되는 양성 징병제를 시행하고 있어서다. 노르웨이는 지난해 유엔개발계획(UNDP)의 여성발전지수(GDI) 측정에서 189개국 중 1위를 차지했다. 전 세계 어떤 여성보다 노르웨이에서 살고 있는 여성의 삶의 질이 가장 높다는 의미다.

노르웨이, 女 징병 앞서 고위직 할당제

노르웨이는 2013년 '성 중립 징병제'를 의회에서 채택해 2016년 8월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노르웨이 국방백서]

노르웨이는 2013년 '성 중립 징병제'를 의회에서 채택해 2016년 8월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노르웨이 국방백서]

앞서 2013년 노르웨이의 옌스 스톨텐베르그 총리(현 북대서양조약기구 사무총장)가 이끄는 중도좌파 정부는 여성을 징집 대상에 포함시키는 법안을 의회에서 통과시켰다.

양성 징병제에 관한 노르웨이의 철학은 2017년 3월 유럽안보협력기구(OSCE)가 발표한 성명에 잘 드러나 있다. “사회 모든 부문에서 여성과 남성은 동등한 권리와 의무, 기회를 가져야”하고, “가장 능력 있는 집단에서 선발해야 하는 군대의 특성상 인적 자원 측면에서 인구의 절반을 제외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만 19세에서 44세 사이의 노르웨이 남녀 8000~1만 명이 매년 징집된다. 노르웨이는 양심적 병역거부도 허용하고 있다.

이런 노르웨이도 여성 징병을 결정하기까지 숱한 논쟁과 노력이 있었다. 노르웨이 여성권리협회(NKF)는 법안 통과 당시 성명을 통해 “노르웨이에서 여성은 종종 경제 활동 외에 가족 돌봄과 같은 이중노동을 하지만, 남성보다 적게 벌고 연금 비중도 낮으며, 권력에서 과소 대표되곤 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NKF는 “여성에게 징집이라는 추가 부담을 지우는 것은 오히려 사회적 격차를 증가시킨다”라고도 반발했다.

세계 최초로 여성만으로 구성된 노르웨이 육군 특수부대 '예거트론'에서 여군들이 혹한기 훈련을 받는 모습. [노르웨이 특수부대 사령부]

세계 최초로 여성만으로 구성된 노르웨이 육군 특수부대 '예거트론'에서 여군들이 혹한기 훈련을 받는 모습. [노르웨이 특수부대 사령부]

노르웨이는 여성 징집에 앞서 사회 전반에서 양성평등을 달성하기 위한 조치를 적극적으로 도입해왔다. 2003년에는 모든 공기업에 대해 이사회의 40%를 여성으로 채워야 한다는 할당제도를 도입했다. WEF의 GGI 국가별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노르웨이 의회 의석의 절반 가까이(44%)가 여성 의원이다. 군에서도 1995년 세계 최초로 여성 잠수함 사령관을 임명한 데 이어, 2014년 첫 여성 유엔군 사령관을 키프로스 평화유지군 임무에 배치하는 등 노력을 기울였다.

노르웨이는 이제 제도를 넘어 병영 문화에서 실질적인 양성평등을 달성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정부는 “군 부대와 리더십 분야, 고위 관리직에서 문화적 편견은 여성에게 결코 유리하지 않다”며 “노르웨이는 여전히 해결할 많은 일이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노르웨이 타임스에 따르면 올해 2월 국군연구소(FFI)의 실태 조사에서 여군 응답자의 46%가 “지난 1년 동안 어떤 형태든 성희롱을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남성은 14%만 그렇다고 답변했다. 예일국제학리뷰(YRIS)에 실린 노르웨이 여군 실태조사에서도 한 여군은 “혼성 막사에서 남성 동료들이 ‘가볍다(cheap)’고 성적인 욕을 하거나, 지정된 샤워 시간을 무시해 여성 병사들이 화장실에 갇혀 있는 경우가 있었다”고 증언했다.

국제성평등지수별 상ㆍ하위 5개국.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국제성평등지수별 상ㆍ하위 5개국.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여성 정치 1위 아이슬란드도 한계 

북유럽의 아이슬란드는 여성의 정치적 권한이 가장 많은 국가로 꼽힌다. 올해 WEF의 GGI 평가에서 156개국 가운데 전체 1위를 기록했다. 아이슬란드는 지난 50년 간 여성 수반의 재임 기간(23.5년)이 여타 국가에 비해 비해 길었다. 의회 여성 의원 수(39.7%)도 많은 편이다. 요한나 시귀르다르도티르 총리(2009~2013년 재임)는 전세계에서 여성이자 성소수자로, 동성 파트너와 합법적으로 결혼한 첫번째 총리로 기록됐다.

그러나 WEF는 “이런 아이슬란드조차도 남성에 대한 여성의 상대적 권한은 24% 떨어지는 것으로 평가된다”고 분석했다. 남성을 100으로 볼 때 여성의 정치적 권한이 76이라는 얘기다. WEF는 “미국·스웨덴·스페인 등 81개국은 지난 50년 간 여성 지도자를 단 한 명도 배출하지 못했다”는 점도 지적했다.

아이슬란드의 카트린 야콥스도티르 총리가 지난 7월 1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을 만나 엄지를 들어보이고 있다. 아이슬란드는 세계경제포럼(WEF)의 성격차지수(GGI) 지표에서 지난 50년 간 여성 통치자의 재임기간이 가장 길었던 나라로 꼽힌다. [AP=연합뉴스]

아이슬란드의 카트린 야콥스도티르 총리가 지난 7월 1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을 만나 엄지를 들어보이고 있다. 아이슬란드는 세계경제포럼(WEF)의 성격차지수(GGI) 지표에서 지난 50년 간 여성 통치자의 재임기간이 가장 길었던 나라로 꼽힌다. [AP=연합뉴스]

여성의 경제 활동 참여를 높이기 위해 임금 격차를 줄이고, 남성 육아휴직 등 복지제도를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지난해 38개 회원국의 성별 임금격차는 12.53%로 집계됐다. 이 조사에선 한국(31.48%)의 임금격차가 가장 큰 반면 룩셈부르크는 여성의 임금이 더 높은 것(-3.13%)으로 조사됐다. 벨기에·노르웨이 등 유럽 국가와 뉴질랜드의 임금격차가 3~4%로 적은 편이었다.

국제노동기구(ILO)가 2017년 발간한 ‘세계 사회적 보호 보고서’에 따르면 육아휴직 규정을 둔 나라는 1995년 40개국에서 2015년 94개국으로 크게 늘었다. 단 현실에서 실제로 활용이 되느냐의 문제가 남아있다.

육아휴직, 남성에겐 사회적 제약 

지난 3월 영국 런던에서 한 여성이 자녀들을 초등학교에 등교시키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지난 3월 영국 런던에서 한 여성이 자녀들을 초등학교에 등교시키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BBC는 올해 7월 영국 정부가 2015년 부모가 최대 50주의 육아휴직을 쓸 수 있는 제도를 도입했지만, 2018년 기준 90만 명의 영국 부모 가운데 약 9200명(1%)만 이 제도를 이용했다고 전했다. 특히 남성 육아 휴직은 고정관념으로 인해 거의 사용되지 못하고 있었다. 영국 엑서터대의 사회심리학자 클라 모겐로스는 BBC에 “사회에서 여성은 양육에 적합하고 보살핌을 주는 존재로 인식되는 반면, 남성은 보다 경쟁적이고 추진력 있는 존재로 여겨진다”며 “이 때문에 육아휴직을 쓰는 남성은 직장 내에서 큰 반발에 직면하며, 업무 몰입도가 떨어지는 사람으로 취급된다”고 지적했다.

반면 스웨덴에서는 자녀를 둔 남성의 90%는 육아휴직을 신청했고, 할당된 총 육아휴직 기간의 96%를 쓰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2019년 스톡홀름대와 스웨덴사회보장협회의 공동조사 결과다. 스웨덴이 한 손에는 카페라떼를, 다른 손으로는 유모차를 미는 ‘라떼파파’의 천국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집계한 스웨덴의 지난해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은 80.3%(OECD 평균 63.8%). 전체 38개국 가운데 2위였다. 스웨덴 남성(84.6%)과 비교해 큰 차이가 나지 않았다.

미국은 선진국 가운데 유일하게 유급 육아휴직 제도가 없는 나라로 꼽힌다. 미국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은 67.8%다. BBC에 따르면 미국의 한 설문조사에서는 조사 대상자의 3분의 2가 “남성은 육아휴직을 써서는 안 된다는 암묵적인 규칙이 있으며, 가능한 한 적게 사용하는 것이 직장 내에서 명예롭다는 인식이 있다”고 답변했다.

국제성평등지수는 무엇을 측정하나.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국제성평등지수는 무엇을 측정하나.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국제성평등지수, ‘절대평가는 UNDPㆍ상대평가는 WEF’

 국제성평등지수는 여러 지표가 있다. 대표적으로 유엔개발계획(UNDP)의 여성발전지수(GDI)와 성불평등지수(GII), 세계경제포럼(WEF)이 매년 발표하는 성격차지수(GGI)가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집계하는 성별임금격차 순위도 있다.

 이 가운데 UNDP의 GDIㆍGII와 WEF의 GGI는 다양한 지표를 고려해 각국의 양성평등 정도를 측정한다. 고려하는 요소가 다르다보니 약간씩 차이가 있다. 189개국을 대상으로 하는 UNDP의 GDI는 여성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ㆍ달러), 기대 교육기간과 평균(실제) 교육기간, 기대수명을 측정해 기초적인 의료ㆍ교육 수준을 측정한다. GII는 여성 10만 명당 출산시 여성 사망률, 여성 1000명당 청소년 출산율에 더해 여성 국회의원 비율과 경제활동 참가율 등을 본다.

 이들 지표는 각국의 여성 인구로만 지표를 측정하기 때문에 한 나라 여성의 절대적인 삶의 질을 측정하는 데 용이하다. 선진국과 저개발국의 차이를 선명하게 드러낼 수 있다. 다만 저개발국은 남녀 모두 삶의 질이 낮은 경우가 많다. 예컨대 서아프리카 니제르는 평균 교육기간 분야에서 여성(1.4년)뿐 아니라 남성(2.8년)도 짧은 것으로 나타났다.

 WEF의 GGI는 모든 지표를 ‘남성 대비 여성의 비율’로 산출해 순위를 매긴다. 국가 간 격차에 관계없이 그 나라에서 여성이 어떤 위치인가를 드러내는 ‘체감 불평등’ 지표다. 일종의 상대평가 순위인 셈이다. GGI는 네 가지 분야, 11~12개 지표를 들여다 본다. 동종 업종의 성별 임금격차, 관리직ㆍ전문직에서 여성의 비율, 여성 정치인의 통치기간 등도 포함된다.

 성문주 남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국제지표는 저개발국의 상황을 드러내기 적합한 지수와 선진국 간 차이를 반영하는 지표를 종합적으로 참고해야 정확한 그림을 볼 수 있다”며 “수치로 측정하는 특성상 해당 국가의 사회 문화적 맥락까지 담아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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