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에 자주 글을 올린다. 그의 SNS 계정에는 코로나 백신 접종률 등 정책 성과 홍보와 주요 현안에 대한 입장표명을 비롯해 올림픽에서 선전한 선수들에 대한 격려 등 다양한 글이 올라와 있다. 보건의료노조의 파업이 예고됐던 지난 1일에는 청와대에서 기르는 풍산개와 관련한 글을 쓰기도 했다.
문 대통령의 글들은 대개 사진을 첨부하고 직접 내용을 적는 형식으로 이뤄진다. 그런데 거의 유일한 예외가 있다. 경제지표에 대해서만은 본인의 입장 대신 꼭 홍남기 경제부총리의 글을 리트윗하는 형식으로 글을 게시한다는 점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2일 2분기 GDP 잠정치 발표와 관련해 홍 부총리가 “성장률이 당초 0.7%에서 0.8%로 0.1%P 상향됐다.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는 글을 올리자 이를 1시간만에 ‘퍼가기’ 형식으로 게시했다. 별도 입장이나 반응은 달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11일에도 홍 부총리의 글을 그대로 게시했다. 7월 고용동향 발표에서 취업자수가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52만 2000명이 증가했다는 내용의 글이었다. 7월 27일 GDP 성장률 속보치 발표 때는 홍 부총리의 글을 가져온 뒤 “민간과 정부소비가 큰폭으로 증가하면서 성장률을 견인했다”는 내용의 기획재정부 자료를 추가로 올리기도 했다.
이에대해 여권에선 “문 대통령이 경제 성과를 홍 부총리의 몫으로 돌리려는 의도가 있는 것 같다”는 말이 나온다.
실제로 문 대통령은 홍 부총리가 지난달 자신의 페이스북에 2분기 가계동향조사 결과(16일), 산업활동동향 지표(31일)에 대한 글을 올렸지만, 해당 게시글은 인용하지 않았다. 누락한 글에는 공통적으로 부정적 지표들이 담겨있다. 문 대통령이 긍정적 지표만을 골라 홍 부총리를 홍보하는 것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는 셈이다.
여권에선 이러한 강한 신뢰의 배경을 홍 부총리의 업무 스타일과 연관지어 설명하는 인사들이 많다.
여권의 핵심 인사는 3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과거 ‘김&장’으로 불리던 당시 김동연 부총리와 장하성 정책실장과의 갈등의 핵심은 재정건전성을 이유로 적극적 재정정책 지원에 소극적이었던 김 전 부총리의 원칙론이었다”며 “반면 홍 부총리는 여러차례의 재난지원금을 비롯해 추경 등에서 큰 반발없이 재원을 만들어냈다는 점이 장수 부총리가 된 결정적 이유”라고 말했다.
홍 부총리가 적극적 재정투입을 골자로 한 문 대통령의 경제정책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온 것이 신뢰의 핵심 배경이라는 뜻이다.
문 대통령의 재정 투입 정책과 홍 부총리의 역할은 강민석 전 청와대 대변인이 쓴 『승부사 문재인』이라는 책에서도 확인된다.
책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지난해 총선 직전 코로나 1차 재난지원금 지급 과정에서 “경제가 아니라 정치경제를 할 때”라며 대규모 예산집행을 위한 정치적 판단을 하라고 직접 지시했다. 당시 홍 부총리에게는 “비상 대권을 가졌다고 생각하라. 동원할 수 있는 수단을 다 허용하라”고 했다. 홍 부총리는 문 대통령의 지시에 충실히 따랐고, 재난 지원금은 총선 직전에 지급됐다.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에 대해 “총선을 한 달 앞둔 대통령의 ‘정치경제’ 주문은 선거 승리를 위해 현금 살포하라는 말과 다름이 없다”고 비판했다. 김 원내대표는 특히 “5년 내내 현금을 살포하며 나라 곳간을 허물어놓고 다음 정부부터는 총지출 증가율을 5%로 낮추라고 요구한다”며 “열매는 문재인 정권이 따먹고 다음 정권이 뒤치다꺼리하라는 것으로, 후안무치하기 짝이 없다”고 주장했다.
야당의 비판에 대해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전적으로 저자가 쓴 것이고 또 저자의 책임”이라며 별도 입장을 내지 않았다.
2018년 12월 11일에 취임한 홍 부총리는 현재 재임 1000일을 눈앞에 두고 있다. 지난 4월 1일자로 843일을 돌파하며 이미 역대 최장수 기재부 장관 기록을 갈아치운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