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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산개'도 직접 글쓴 文, 왜 경제만 홍남기 글 '퍼오기' 할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문재인 대통령은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에 자주 글을 올린다. 그의 SNS 계정에는 코로나 백신 접종률 등 정책 성과 홍보와 주요 현안에 대한 입장표명을 비롯해 올림픽에서 선전한 선수들에 대한 격려 등 다양한 글이 올라와 있다. 보건의료노조의 파업이 예고됐던 지난 1일에는 청와대에서 기르는 풍산개와 관련한 글을 쓰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1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선물한 풍산개 '곰이'가 낳은 새끼 7마리의 이름을 공개하고 지자체에 분양한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은 1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선물한 풍산개 '곰이'가 낳은 새끼 7마리의 이름을 공개하고 지자체에 분양한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문 대통령의 글들은 대개 사진을 첨부하고 직접 내용을 적는 형식으로 이뤄진다. 그런데 거의 유일한 예외가 있다. 경제지표에 대해서만은 본인의 입장 대신 꼭 홍남기 경제부총리의 글을 리트윗하는 형식으로 글을 게시한다는 점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2일 2분기 GDP 잠정치 발표와 관련해 홍 부총리가 “성장률이 당초 0.7%에서 0.8%로 0.1%P 상향됐다.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는 글을 올리자 이를 1시간만에 ‘퍼가기’ 형식으로 게시했다. 별도 입장이나 반응은 달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경제성과와 관련한 홍남기 경제부총리의 글을 그대로 인용해 자신의 페이스북에 게시했다. 문재인 대통령 페이스북 캡처

문재인 대통령은 경제성과와 관련한 홍남기 경제부총리의 글을 그대로 인용해 자신의 페이스북에 게시했다. 문재인 대통령 페이스북 캡처

문 대통령은 지난달 11일에도 홍 부총리의 글을 그대로 게시했다. 7월 고용동향 발표에서 취업자수가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52만 2000명이 증가했다는 내용의 글이었다. 7월 27일 GDP 성장률 속보치 발표 때는 홍 부총리의 글을 가져온 뒤 “민간과 정부소비가 큰폭으로 증가하면서 성장률을 견인했다”는 내용의 기획재정부 자료를 추가로 올리기도 했다.

경제성과를 홍보한 홍남기 경제부총리의 글을 그대로 게시한 문재인 대통령의 글에 달린 댓글. 현실과 달리 경제지표만을 강조하고 있다는 비판의 내용이 담겼다. 문재인 대통령 페이스북 캡처

경제성과를 홍보한 홍남기 경제부총리의 글을 그대로 게시한 문재인 대통령의 글에 달린 댓글. 현실과 달리 경제지표만을 강조하고 있다는 비판의 내용이 담겼다. 문재인 대통령 페이스북 캡처

이에대해 여권에선 “문 대통령이 경제 성과를 홍 부총리의 몫으로 돌리려는 의도가 있는 것 같다”는 말이 나온다.

실제로 문 대통령은 홍 부총리가 지난달 자신의 페이스북에 2분기 가계동향조사 결과(16일), 산업활동동향 지표(31일)에 대한 글을 올렸지만, 해당 게시글은 인용하지 않았다. 누락한 글에는 공통적으로 부정적 지표들이 담겨있다. 문 대통령이 긍정적 지표만을 골라 홍 부총리를 홍보하는 것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는 셈이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7월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에 참석해 있다. 뉴스1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7월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에 참석해 있다. 뉴스1

여권에선 이러한 강한 신뢰의 배경을 홍 부총리의 업무 스타일과 연관지어 설명하는 인사들이 많다.

여권의 핵심 인사는 3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과거 ‘김&장’으로 불리던 당시 김동연 부총리와 장하성 정책실장과의 갈등의 핵심은 재정건전성을 이유로 적극적 재정정책 지원에 소극적이었던 김 전 부총리의 원칙론이었다”며 “반면 홍 부총리는 여러차례의 재난지원금을 비롯해 추경 등에서 큰 반발없이 재원을 만들어냈다는 점이 장수 부총리가 된 결정적 이유”라고 말했다.

홍 부총리가 적극적 재정투입을 골자로 한 문 대통령의 경제정책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온 것이 신뢰의 핵심 배경이라는 뜻이다.

문재인 정부의 초대 경제라인이던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와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인사를 나누고 있다. 두 사람은 '김앤장의 갈등'이라고 불릴 정도로 매사 이견차를 노출했다. 뉴스1

문재인 정부의 초대 경제라인이던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와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인사를 나누고 있다. 두 사람은 '김앤장의 갈등'이라고 불릴 정도로 매사 이견차를 노출했다. 뉴스1

문 대통령의 재정 투입 정책과 홍 부총리의 역할은 강민석 전 청와대 대변인이 쓴 『승부사 문재인』이라는 책에서도 확인된다.

책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지난해 총선 직전 코로나 1차 재난지원금 지급 과정에서 “경제가 아니라 정치경제를 할 때”라며 대규모 예산집행을 위한 정치적 판단을 하라고 직접 지시했다. 당시 홍 부총리에게는 “비상 대권을 가졌다고 생각하라. 동원할 수 있는 수단을 다 허용하라”고 했다. 홍 부총리는 문 대통령의 지시에 충실히 따랐고, 재난 지원금은 총선 직전에 지급됐다.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에 대해 “총선을 한 달 앞둔 대통령의 ‘정치경제’ 주문은 선거 승리를 위해 현금 살포하라는 말과 다름이 없다”고 비판했다. 김 원내대표는 특히 “5년 내내 현금을 살포하며 나라 곳간을 허물어놓고 다음 정부부터는 총지출 증가율을 5%로 낮추라고 요구한다”며 “열매는 문재인 정권이 따먹고 다음 정권이 뒤치다꺼리하라는 것으로, 후안무치하기 짝이 없다”고 주장했다.

야당의 비판에 대해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전적으로 저자가 쓴 것이고 또 저자의 책임”이라며 별도 입장을 내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4월 청와대에서 열린 확대경제장관회의에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왼쪽), 유영민 비서실장(오른쪽)과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4월 청와대에서 열린 확대경제장관회의에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왼쪽), 유영민 비서실장(오른쪽)과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8년 12월 11일에 취임한 홍 부총리는 현재 재임 1000일을 눈앞에 두고 있다. 지난 4월 1일자로 843일을 돌파하며 이미 역대 최장수 기재부 장관 기록을 갈아치운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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