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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타강사 강의 무료제공에 "저소득층이 웬 인강"이냐는 與 [뉴스원샷]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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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문을 연 온라인 교육플랫폼 '서울런'. 홈페이지 캡쳐

27일 문을 연 온라인 교육플랫폼 '서울런'. 홈페이지 캡쳐

남윤서 교육팀장의 픽: 서울런(Seoul learn)

취약 계층 학생들에게 무료로 사교육 업체 인터넷 강의를 듣도록 해주는 '서울런'이 지난달 27일 문을 열었습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교육 격차를 해소해야 한다며 내놓은 정책입니다.

취약계층 학생은 서울런 홈페이지에서 인증을 받아 접속하면 메가스터디·대성·이투스 등의 업체의 인터넷 강의(인강)를 마음대로 들을 수 있습니다. 30~40만원선인 유료 강의패스를 공짜로 쓸 수 있는 셈입니다.

이 사업은 한때 서울시의회에서 예산이 전액 삭감되는 등 좌초 위기를 겪었습니다. 결국 예산안이 일부 삭감된 상태로 통과는 됐지만 그 과정에서 여당 의원들과 시민단체 등의 비판이 컸습니다. 그간 서울런을 둘러싼 논쟁은 '사교육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라는 문제와 맞닿아 있습니다.

저소득층 아이들은 인강에 관심없다?

27일 오후 서울 은평구 꿈꾸는 다락방에서 학생들이 서울형 교육 플랫폼 서울런을 체험하고 있다. 뉴스1

27일 오후 서울 은평구 꿈꾸는 다락방에서 학생들이 서울형 교육 플랫폼 서울런을 체험하고 있다. 뉴스1

지난 6월 29일 서울시의회 본회의에서는 서울런에 대한 더불어민주당 소속 시의원들의 질타가 쏟아졌습니다. 채유미 의원은 "(관계 공무원 자녀들은)대형학원 보내고 고액 과외 시키지 않느냐"며 "왜 저소득층 아이들에게는 듣지도 않는 인강 제공하면서 교육 사다리 운운하느냐"고 말했습니다. 이어 서울런을 "감성팔이 하며 예산 통과시키려 하는데, 저소득층 아이들은 인강에 1도 관심 없고 오히려 사교육 시장만 배불리는 일"이라고 비판했습니다.

하지만 교육계에선 이런 비판에 동의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수백억 매출을 기록하는 일타강사가 있을만큼 인강의 인기는 높습니다. '듣지도 않는 인강'이나 '1도 관심없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오르비' 등 수험생 커뮤니티에는 채 의원의 발언에 대해 "너무 교육 현실을 모르는 것 아니냐"는 비난이 이어졌습니다.

한 입시 전문가는 "메가나 이투스 등의 일타강사 강의는 가정 소득에 상관없이 대부분 학생이 듣고싶어 한다"며 "인강의 효과는 학생이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에 달린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EBS가 있으니 인강은 필요없다?

'서울런'을 통해 강의를 재생한 모습. 홈페이지 캡쳐

'서울런'을 통해 강의를 재생한 모습. 홈페이지 캡쳐

서울런과 비슷한 공교육 프로그램이 많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서윤기 의원은 "EBS는 무료로 제공되고 e학습터도 무료인데 왜 서울시가 새로 만들어야 되느냐"고 지적했습니다. 전병주 의원도 "서울시교육청이 이미 '뉴쌤'을 통해 온라인 학습을 지원하고 있어 중복되는 사업"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e학습터나 뉴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에서 원격수업을 위한 플랫폼입니다. 학력 향상을 위한 질 높은 강의를 제공한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특히 서울교육청이 만든 뉴쌤은 교사들조차 모를 정도로 인지도가 낮습니다.

EBS는 초중고교 전 학년을 대상으로 한 수업을 제공하지만 인강 업체만큼 학생 수준과 취향에 따라 다양한 강의를 제공하지는 못합니다. 한 사교육 업체 관계자는 "EBS가 있으니 인강은 필요 없다는 얘기는, 보건소가 있으니 병원이 필요없다는 얘기와 비슷하다"고 했습니다.

공교육은 사교육을 이용하면 안되나

오세훈 서울시장이 2일 서울시의회에서 열린 제302회 임시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오세훈 서울시장이 2일 서울시의회에서 열린 제302회 임시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시의회와 시민단체가 서울런을 저격하는 근본적 이유는 이 정책이 공교육에 써야 할 예산으로 사교육을 끌어들이는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의원들과 단체는 하나같이 "사교육을 배불리기보다 공교육에 투자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물론 이런 지적대로 서울시 예산이 특정 사교육 업체들로 흘러들어가고, 이들 업체가 손쉽게 '고객'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는 점은 불편하게 느껴집니다. '공교육에 투자해야 한다'는 주장도 너무나 정론(正論)입니다.

그러나 많은 학생들이 일타강사의 강의를 원하고, 어떤 학생은 수강료가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입니다. 서울런은 학력 격차 해소를 위한 선별적 복지 정책에 가깝습니다. 수혜자가 원하는 것을 줘야 제대로 된 정책이 될것입니다. 모든 정부가 사교육을 적으로 보고 싸웠지만 이겨본 적은 없습니다. 최악의 학력 격차가 우려되는 지금, 공교육은 선이고 사교육은 악이라는 관점을 떠나서 공교육이 사교육을 이용하는 방법도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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