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 흔들면 샌다는 건 옛말” 20년간 막걸리 빚은 이 여자

중앙일보

입력 2021.09.04 08:00

경기 성남시 중원구 국순당 부설연구소. 이병준 기자

경기 성남시 중원구 국순당 부설연구소. 이병준 기자

경기 성남시 중원구 국순당 연구소. 겉보기엔 일반 사무실과 다를 바 없어 보였다. 그런데 연구소 문 앞에 서자 달큼한 냄새가 문틈 사이로 흘러나왔다. 연구소 내부는 바깥보다 따뜻했다. 흰 연구복을 입은 연구원들은 분주히 연구소를 오가며 쌀을 갈거나 끓이는 등 제각기 실험에 한창이었다. 연구소 창고에선 이들이 직접 만든 누룩이 솔잎을 얹은 채 익어가고 있었다.

[잡썰25] 국순당 류수진 연구개발1팀장

국순당 연구소는 막걸리 등 주류와 식음료 신제품을 개발하고, 전통주를 복원하거나 스마트팜 기술을 연구하는 등의 일을 한다. 연구소를 20여년 경력의 류수진(44) 연구개발1팀장이 지휘한다. 생물화학공학을 전공한 류 팀장은 2000년부터 주류업계에 종사하고 있다. 국순당의 히트 제품인 ‘국순당 생막걸리’ ‘1000억 유산균 막걸리’ ‘우국생’ 등이 모두 그의 작품이다.

“줄줄 새던 생막걸리…바꿔봐야겠다 생각”

류수진 국순당 연구개발1팀장. 이병준 기자

류수진 국순당 연구개발1팀장. 이병준 기자

류 팀장은 “국순당이 막걸리 제품 판매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약 10년 전이었다. 전통주를 계속 만들긴 했지만, 그때 국순당이 내놓은 탁주 제품은 수출용으로 만든 캔 막걸리 정도밖에 없었다. 그런데 기존 인기 제품이었던 백세주(1992년 출시)의 매출이 점차 줄어들고, 소비자의 입맛도 변해 막걸리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당시 시중의 대다수 생막걸리 제품은 품질이 굉장히 떨어졌다. 상온에서 유통이 되기 때문에 배송 도중 제품 품질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았고, 유통기한도 일주일밖에 안 됐다. 또 흔들면 뚜껑 사이로 막걸리가 줄줄 샜다. 이걸 바꿔봐야겠다는 생각에 2009년 업계 최초로 냉장 유통 시스템(콜드체인)과 발효 제어 기술을 도입했다. 덕분에 한 달에서 100일로 유통기한을 늘렸고, 막걸리가 새지 않게 만들었다. 그렇게 나온 게 국순당 생막걸리 제품”이라고 했다.

이전까지 대부분 막걸리 제품은 출시 이후에도 발효가 이어져 뚜껑 틈으로 공기가 통하는 ‘불완전 밀폐 뚜껑’을 썼다. 밀폐 뚜껑을 쓰면 용기가 팽창하거나 막걸리가 터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순당은 막걸리 제품의 발효를 제어하고, 냉장 유통을 도입해 밀폐형 뚜껑을 쓸 수 있었다. 현재 국순당 주요 제품은 대부분 밀폐형 뚜껑을 쓰고 있다.

복원한 전통주 80여종…“맨땅에 헤딩”

국순당 강원 횡성 공장에서 만들어진 막걸리 제품이 옮겨지고 있다. [영상 국순당]

국순당 강원 횡성 공장에서 만들어진 막걸리 제품이 옮겨지고 있다. [영상 국순당]

국순당 연구소는 조상이 마셨던 전통주를 복원하는 일도 하고 있다. 현재까지 연구소가 복원에 성공한 전통주 종류는 약 80여 가지다. 그중 20여개는 상용화해 판매하고 있다. 류 팀장은 고려 시대 때부터 만들어진 전통주 ‘이화주(梨花酒)’ 복원에 참여했다. 이화주는 탁주로, 배꽃이 필 때 빚은 술 혹은 하얗고 배꽃 향이 난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다.

그는 “시중에 나와 있는 막걸리는 저가가 많고, 대중적인 막걸리는 이미 생막걸리 등 제품으로 출시된 상태였다. 프리미엄 막걸리는 어떤 게 있을까 하다가 이화주 복원을 하면서 ‘이게 우리가 찾던 막걸리’라는 생각을 했다. 이화주는 현재 국순당에서 파는 유산균 막걸리 등의 모티브가 됐다. 이화주는 ‘이화곡’이라는 쌀을 갈고 뭉쳐 만든 오리알 모양의 누룩을 띄워서 만든다. 걸쭉하고 요구르트 같은 모양으로 떠먹으면 배꽃 향이 난다”고 설명했다.

류 팀장은 “복원 업무는 맨땅에 헤딩하는 식이다. 원서를 찾고, 한자를 해석하는 등 자료 수집을 하고 술 빚는 방법을 재현한다. 옛날과 도량형이 다르고, 지금과 온도·습도가 다르다 보니 시행착오가 많았다. 미생물 군집 자체가 달라 어디에서 발효를 어떻게 해야 할지 그 조건을 아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고 회상했다. 이화주 복원에는 1년 이상이 소요됐다.

국순당 전통주 ‘이화주’. [사진 국순당]

국순당 전통주 ‘이화주’. [사진 국순당]

국순당은 막걸리를 만들 때 한국식 전통 누룩을 쓰고 있다. 그는 “일본식 누룩 ‘입국’은 쌀을 이용해 만든다. 전통 누룩은 밀을 기본으로 만들어 색상부터가 다르다. 전통 누룩은 밀 겨가 들어가서 색상이 좀 더 누렇고, 일본식 누룩은 쌀알로만 만들어 색깔이 투명하다. 전통 누룩은 밀을 생으로 갈아서 만들다 보니 진하고 다양한 맛이 있고, 일본 누룩은 단일 균을 넣어 만들다 보니 깔끔한 맛이 난다”고 했다. 일본 누룩으로 만든 대표적인 술이 사케다.

류 팀장은 “막걸리는 탄산 감이 있고 개운한 느낌이 있기 때문에 5~8℃ 정도에서 먹는 게, 백세주는 8~10℃ 정도에 먹으면 좋다. 너무 차가우면 향이 안 올라온다”고 했다. 그러면서 “잔도 백세주의 향을 즐기고 싶으시면 와인 잔에 마시는 걸 추천해 드린다. 혹은 소주잔보다 조금 큰 잔도 괜찮다. 소주잔은 길쭉한 형태인데, 술맛이 쓰니 맛이나 향을 느끼기보다는 그냥 넘기기 위한 구조다. 그래서 향이 충분히 입 안에 적셔질 수 있는 잔이 좋다. 막걸리 잔도 볼륨감이 있는, 배가 부른 모양의 잔이 좋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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