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같은 1조 금융사기…이철 8년형, 옵티머스 대표 25년형 왜

중앙일보

입력 2021.09.04 07:07

업데이트 2021.09.29 17:02

금융정의연대와 라임·옵티머스 등 사모펀드 사태 피해자들이 5월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회의 사모펀드 사태 대책 마련과 김부겸 국무총리 후보자와의 간담회를 요청하고 있다. 이들은 "사모펀드 환매중단 사태의 근본책임이 사모펀드 활성화 정책을 펼친 정부와 국회에 있다"며 "집단소송제 및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을 통해 금융소비자를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뉴스1

금융정의연대와 라임·옵티머스 등 사모펀드 사태 피해자들이 5월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회의 사모펀드 사태 대책 마련과 김부겸 국무총리 후보자와의 간담회를 요청하고 있다. 이들은 "사모펀드 환매중단 사태의 근본책임이 사모펀드 활성화 정책을 펼친 정부와 국회에 있다"며 "집단소송제 및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을 통해 금융소비자를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뉴스1

[4회] 금융사기공화국의 탈출 : 5가지 해법은

중앙일보가 최근 법률·금융·정책 전문가들과 함께 분석한 5대 금융사기 범죄(조희팔·IDS홀딩스·VIK·라임·옵티머스 사건)의 총 피해액은 10조원이 넘고, 피해자는 12만명에 육박한다. 거대한 숫자 속 피해자 한 명, 한 명의 삶은 송두리째 파괴됐다.

모든 투자자가 투자 위험을 꿰뚫어 보고 사탕발림에 넘어가지 않는 게 최선이다. 하지만 최근 금융 사기의 행태를 보면 상당한 금융 지식을 가지고 있어도 쉽게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라임·옵티머스 사모펀드 사기의 경우 은행과 증권사에서 버젓이 “안정적 수익을 보장하는 상품”이라며 팔았기 때문이다. 라임·옵티머스는 각각 173개, 46개의 자(子)펀드·시리즈 펀드를 팔아 다단계처럼 ‘펀드 돌려막기’ 범행을 벌였다.

김정수 금융법전략연구소 대표는 “사기꾼들이 작심하고 사기를 치기 때문에 금융 지식이 있는 투자자들도 당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결국 사기 상품을 걸러낼 금융시장 감독·예방 시스템은 물론 사후적으로도 엄정한 처벌은 물론 범죄수익을 철저히 환수할 수 있는 수사·사법 시스템이 모두 필요하다. 전문가들도 ▶피해 예방 중심 정책 ▶규제 합리화 ▶감독·조사·수사 시스템의 재정비 ▶엄벌주의 ▶신속한 피해 복구 시스템 마련 등 5가지 측면의 솔루션을 제시했다.

금융 사기 피해 막으려면.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금융 사기 피해 막으려면.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①“은행·증권사의 사기 상품 검증 책임 강화해야”

사모펀드인 라임·옵티머스 피해자 단체들은 라임자산운용과 옵티머스자산운용이 아닌 해당 펀드를 판매한 은행과 증권사에 피해 구제를 요청했다. 금융 소비자들 입장에선 펀드를 소개하고 가입하게 한 판매사에 사기 판매의 책임을 묻는 게 자연스럽다. 하지만 판매사들도 사기의 피해자라고 주장하기 때문에 ‘불완전판매’가 인정되더라도 판매사로부터 피해를 100% 보상받는 일은 매우 드물다.

한 옵티머스 피해자는 “무식하고 법을 모른다고 하겠지만 판매사가 전적으로 책임져야 한다”며 “고위험·고수익 투자로 인한 손실까지 책임져달라는 것이 아니고, ‘안전하다’며 사기 상품을 판 데 대한 책임을 반드시 물어달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금융사기범죄 수사 경험이 있는 한 법조인은 “자산운용사는 높은 수익률을 유지하는 데만 관심이 있고, 판매사는 펀드를 많이 팔아 수수료만 챙기려고 한다”며 “금융위원회가 이런 부당한 이해관계를 조율할 개선책을 내놓아야 피해를 사전에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판매사뿐 아니라 상품을 판매한 직원들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더 강경한 주장도 나온다. 김정수 대표는 “금융사에 투자심의위원회가 있지만, 제대로 검증하지 않고 직원들에게 판매 압박을 하는 등 내부 통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며 “회사의 책임뿐 아니라 인적 책임을 물어야 불완전 판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5대 금융 사기 사건 개요.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5대 금융 사기 사건 개요.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②“규제 풀면 대형 사고” 사모펀드 공모화(公募禍) 막아야

정부가 과도하게 풀어놓은 사모펀드 규제를 합리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기식 더미래연구소 소장(전 금융감독원장)은 “2006년 저축은행, 2009년 신용카드, 최근 잇따라 터지는 사모펀드 사건까지 정부가 규제를 풀 때마다 대형 금융 사건이 터졌다”고 지적했다.

사모펀드는 일반 다수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모집하는 공모펀드와 달리 기관투자자 등 소수의 투자자가 자금을 모아 고위험 자산에 투자해 고수익을 노리는 펀드를 말한다. 투자자가 위험을 떠안는 대신 일반인 공모펀드처럼 사전 등록심사를 받지 않아도 되고 분산투자 의무나 대출 규제 받지 않고 운용의 자유를 갖는다.

‘모험자본 육성’을 명분으로 기관·전문투자자 중심의 사모펀드 시장을 일반 투자자에 개방한 게 사모(私募)펀드의 공모화(公募化)라는 화(禍)를 불렀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5년 ‘사모펀드 활성화 방안’이 계기였다. 당시 사모펀드 투자금 기준을 ‘5억원 이상’에서 ‘1억원 이상’으로 5분의 1까지 낮췄다. 또 모(母)펀드 비중의 10% 미만씩을 투자하는 자펀드를 무한정 만들어 팔 수 있게 해서 49명 이하만 투자하는 사모와 공모펀드의 경계도 허물었다. 공모펀드인 ‘사모투자 재간접펀드’는 최소 투자금액(500만원 이상)도 폐지했다.

권경애 변호사는 “규제가 풀리자 판매사들은 사모펀드를 공모펀드처럼 팔았고, 그에 대한 감독과 제재 시스템은 무너졌다”며 “금융상품 개발 단계에서 금융 감독과 승인 절차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구집 라임피해자모임 대표는 “사모펀드는 49인 이내에게만 팔아야 하는데, 똑같은 사모펀드를 시리즈로 내놔 공모펀드처럼 수천명을 가입시켜 피해가 컸다”고 지적했다.

일단 금융위는 올해 3월 자본시장법 시행령을 개정해 모펀드의 총 30% 이상을 투자한 모든 자펀드 투자자 수를 모펀드 투자자 수에 합산해 49명을 넘지 못하게 함으로써 ‘돌려막기용’ 자펀드 시리즈 판매는 막았다.

김오수 검찰총장이 1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울남부지방검찰청에서 열린 금융·증권범죄수사협력단 출범식에서 현판식을 마치고 취재진의 질문을 듣고 있다. 뉴스1

김오수 검찰총장이 1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울남부지방검찰청에서 열린 금융·증권범죄수사협력단 출범식에서 현판식을 마치고 취재진의 질문을 듣고 있다. 뉴스1

③ “수사권 없는 금융·증권범죄수사협력단은 반쪽짜리”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지난해 1월 ‘여의도 저승사자’로 불린 증권범죄합동수사단(합수단)을 폐지했다. 당시 라임 사건 등 금융 범죄가 판을 치고 있는 상황에서 ‘비직제 부서’라는 이유만으로 폐지돼 논란이 컸다. 박범계 장관이 최근 ‘금융·증권범죄수사협력단’이란 이름으로 부활시켰다. 하지만 이를 두고 법조계에선 “직접수사 권한이 배제된 협력단 형태로 반쪽짜리 부활에 불과하다” “주먹구구식으로 운영하면서 누구 하나 책임지지 않는다”는 지적이 쏟아진다. 추 전 장관이 합수단을 폐지할 당시 김오수 검찰총장은 법무부 차관이었다.

문찬석 전 광주지검장(초대 합수단장)은 “금융 범죄 수사는 법리와 증거 분석에 상당한 전문성이 필요해 검찰이든 경찰이든 단독으로는 절대 할 수 없다”며 “금융위·국세청·금감원·한국거래소·예금보험공사 등 5대 자본시장 감시·감독기구와 수사기관이 한 몸처럼 움직이는 합수단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예 금감원에 검사들을 파견해 금융 범죄 수사에 특화된 상설 부서를 만들자는 주장도 나온다.

이민석 변호사는 “금감원 내에 검찰의 금융범죄특별수사부를 둬 검사는 수사와 기소를 총괄하고, 금감원의 전문 인력을 검찰 수사관처럼 활용하는 식으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아예 금감원에 수사권을 주자는 의견도 있다. 김기식 소장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처럼 금감원에도 수사권을 부여할 필요가 있다”며 “사건의 초기 단계부터 강제력을 동원한 조사와 수사로 피해를 최소화시키는 게 우선”이라고 주장했다.

감독 기관 내부 직원들의 인식 개선도 과제다. 전광우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초대 금융위원장)은 “선진국일수록 금융 감독 기관의 기능은 선제적 예방을 우선하고, 사후적 징계는 그다음”이라며 “금감원이 예방적 감독 문화로 DNA를 철저히 바꿔야 하고, 인력들에 대한 평가 기준부터 바꿔야 한다”고 조언했다.

주요 피고인 형량.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주요 피고인 형량.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④“특경법 기준 ‘50억원 이상’에 허점”…범죄단체 적용해야

이철 전 VIK 대표는 약 3만여명을 상대로 1조원 가까운 금융 사기 피해를 입혔지만 상대적으로 다수의 소액 피해자를 양산해 단순 사기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1심에서 징역 8년을 선고받았다. 2심에서 징역 12년으로 늘었고, 대법원에서 이 형량이 확정됐다.

피해 규모는 비슷한데도 김재현 옵티머스 대표(약 1조3526억원)는 1심에서 훨씬 중한 징역 25년형을 선고받았다. 김 대표의 경우 최대 무기징역까지 선고할 수 있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혐의로 기소됐기 때문이다. 이 전 대표에게 적용된 단순 사기는 징역 10년 이하로 특경법상 사기보다 형량이 훨씬 적다. 특경법상 사기는 50억원 이상 사기 피해를 입힐 경우 적용된다.

그런데 여기에 법의 맹점이 있다. 이민석 변호사는 “특경법의 적용 기준인 ‘50억원 이상’은 피해 합산 금액이 아니라 한 사람에 대한 피해 금액”이라며 “이 때문에 1만명한테 1조원 규모의 사기를 쳤는데도 전원이 50억원 미만 피해자라면 1명에게 50억원을 사기 친 것보다 형량이 적다는 문제가 발생해 법을 고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 변호사는 그러면서 “대형 금융 사기 사건의 경우에는 N번방 사건에 적용한 범죄단체조직죄를 적용해 가담한 자들에게 모두 실형을 선고해야 피해를 막을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구집 대표는 “라임 사태의 핵심 인물인 김봉현은 도주하다가 잡히고, 법정에서도 증언을 계속 번복하는 악질인데도 보석으로 풀어주는 건 말이 안 된다”며 “검찰·법원의 시스템이 멈춰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조희팔이 중국에서 숨진 뒤 치렀다는 장례식 장면. 투명한 관 덮개 아래로 조희팔의 얼굴이 보인다. 사진 바른가정경제 실천을 위한 시민연대

조희팔이 중국에서 숨진 뒤 치렀다는 장례식 장면. 투명한 관 덮개 아래로 조희팔의 얼굴이 보인다. 사진 바른가정경제 실천을 위한 시민연대

⑤“유죄 판결 전 범죄수익 확보 ‘독립몰수제’ 검토해야” 

현행법에 따르면 범죄수익에 대한 몰수는 법원이 최종 유죄 판결을 내려야 가능하다. 또 범인이 범죄수익을 가족이나 제3자 명의로 은닉했을 경우에는 제3자가 그 정황을 알고 취득한 경우에만 몰수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조희팔 사건처럼 범죄자가 해외로 도주하거나 재판 도중 피고인이 사망하면 법원의 별도 추징 명령 없이는 범죄수익 환수가 불가능하다. 제3자를 활용해 범죄수익을 은닉하는 경우, 제3자가 범죄 정황을 알고 악의적으로 수익을 취득했을 때에도 범죄에 대한 확정판결이 있어야 몰수가 가능한 허점이 있다. 대형 금융사기사건에서 검찰의 추징금 집행률이 1%도 되지 않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유죄 확정 판결이나 재판이 없어도 범죄수익을 환수할 수 있는 독립몰수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견해가 제기된다.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피해자들은 매일이 지옥인데 주범들이 유죄 판결을 확정받는 데만 2~3년이 걸린다”며 “보이스피싱과 마약 범죄 등에만 적용되는 기소 전 보전몰수의 범위를 확대하고, 독립몰수제 도입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서민 꿈 짓밟은 금융사기공화국 시즌1

서민 꿈 짓밟은 금융사기공화국
선진 금융감독 시스템을 도입했다던 외환위기(IMF) 이후 25년, 대한민국은 거꾸로 금융사기공화국(www.joongang.co.kr/series/11478)으로 전락했습니다. 조희팔부터 IDS홀딩스·VIK·라임·옵티머스 등 5대 사건의 피해자만 12만명, 피해 금액은 10조원이 넘습니다. 평생 번데기를 판 돈, 남편 사망보험금까지 빼앗긴 서민들의 목소리를 시작으로 금융사기공화국을 만든 이들을 중앙일보 사회1팀 기자들이 총 10회에 걸쳐 추적합니다. 금융사기를 예방할 솔루션도 찾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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