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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콩 살 돈도 없잖아"…40년 콩의 여왕도 코로나에 운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함정희(69·여)씨가 지난 2017년 전주 한옥마을에서 운영하던 '함씨네 밥상' 마당에서 담근 지 10년 된 간장 독에서 소금 결정체를 바가지로 퍼올리고 있다. 식당은 적자 누적으로 2019년 문을 닫았다. 프리랜서 장정필

함정희(69·여)씨가 지난 2017년 전주 한옥마을에서 운영하던 '함씨네 밥상' 마당에서 담근 지 10년 된 간장 독에서 소금 결정체를 바가지로 퍼올리고 있다. 식당은 적자 누적으로 2019년 문을 닫았다. 프리랜서 장정필

40년 운영하던 두부공장 문 닫을 판 

국산 콩 지킴이로서 '콩의 여왕'·'콩 박사'·'콩 독립군'으로 알려진 함정희(69·여) '함씨네토종콩식품' 대표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직격탄을 피하지 못했다.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매출이 급감해 40년간 운영하던 공장 문을 닫을 위기에 놓였다.

함씨는 3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지난해부터 이어진 코로나19 여파로 학교 급식 등 주요 판로가 끊겨 자금난을 겪고 있다"며 "연간 매출이 반 토막 나는 바람에 대출 이자와 세금을 내지 못할 정도"라고 말했다. 20년간 수입 콩과 GMO(유전자변형생물체) 콩에 맞서 국산 콩 등 토종 먹거리를 지키기 위해 외길을 걸어왔지만, 코로나19로 최대 위기를 맞은 셈이다.

함씨는 '콩에 미친 사람'으로 통한다. 그는 2007년 쥐눈이콩(서목태)과 마늘로 '마늘청국장환'을 개발해 특허를 땄다. 지난 2월에는 원광대 대학원에서 토종 콩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입소문이 퍼지면서 단골 중에는 조정래 작가와 '수학의 정석' 저자인 홍성대 상산학원 초대 이사장 등 유명 인사도 적지 않다.

함정희씨가 직접 담근 간장·된장·고추장. 프리랜서 장정필

함정희씨가 직접 담근 간장·된장·고추장. 프리랜서 장정필

"수입콩 대부분 GMO…국산이 해독제" 

함씨가 처음부터 국산 콩에 집착한 건 아니다. 40년 전부터 남편과 두부공장을 운영하던 함씨는 2001년 9월 농학박사인 안학수 전 고려대 교수의 GMO에 관한 강연을 듣고 나서 콩에 대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당시 안 전 교수는 "수입 콩 대부분이 GMO 종자에 의한 것이며 아직까지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았다"고 경고했다.

함씨는 곧바로 기존 거래처 100여 곳에 대한 납품을 중단하고, 철저히 국산 콩만 쓰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2003년엔 부도 위기를 맞기도 했다.

함씨는 2009년부터 10년가량 전주시 반월동과 전주 한옥마을에서 '함씨네 밥상'이라는 식당도 운영했다. "우리 땅에서 나는 발효식품이야말로 GMO의 나쁜 성분을 없애는 해독제"라는 철칙 아래 모든 식자재는 국산 농수산물만 썼다.

'안전한 먹거리를 판다'는 명성은 얻었지만, 수입 콩보다 5~10배 비싼 국산 콩만 고집하다 보니 적자가 누적돼 2019년 식당 문을 닫았다. 지금은 전주시 팔복동 공장에서 두부와 청국장 등 콩 제품만 팔고 있다.

함정희씨가 국산 콩으로 직접 담근 된장을 들어 보이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함정희씨가 국산 콩으로 직접 담근 된장을 들어 보이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엄마, 공장 돌아가?" 함께 울어

최근에는 가슴을 쓸어내리는 일도 겪었다. 함씨가 경영난에 시달리는 것을 곁에서 지켜보던 아들 박승우(23)씨가 갑작스레 병원 치료를 받게 된 것이다. 박씨는 평소 "어머니가 날마다 콩 살 돈이 없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서 괴로웠다"고 말해왔다고 한다.

함씨는 "아들이 병원에서 깨어나자마자 '엄마, 우리 공장 돌아가?'라고 물어 같이 울었다"며 "'엄마는 절대 무너지면 안 된다'고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가 그만두기 전에 누군가 우리 콩과 농업을 살리는 일을 이어 갔으면 하는 마음"이라며 "하루속히 코로나19가 끝났으면 좋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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