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속서 감히 남편 때렸다" 이런 황당 이유로 살해 당한 아내 [지구촌 과제 양성평등 上]

중앙일보

입력 2021.09.04 05:00

업데이트 2021.09.04 09:31

탈레반이 점령한 아프가니스탄의 탈로칸에서는 지난달 중순 부르카를 쓰지 않은 채 거리로 나선 여성이 탈레반의 총에 맞아 사망했다. 소셜미디어네트워크(SNS)를 달군 한 장의 사진에서 여성은 피로 물든 웅덩이에 누워있고, 그의 부모와 가족들은 오열하고 있다.
얼굴을 가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탈레반의 총에 맞아 사망한 여성. [트위터 캡처]

얼굴을 가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탈레반의 총에 맞아 사망한 여성. [트위터 캡처]

아프간은 올초 세계경제포럼(WEF)의 성격차지수(GGI) 평가에서 156개국 가운데 최하위를 기록한 나라. 여성 억압적인 정책을 쓰는 탈레반까지 재등장하면서 아프간 여성들의 생명과 인권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는 커지고 있다.

지금도 세계 어느 곳에선 매 시간 약 5.7명의 여성이 남편과 가족들에 의해 살해되고 있다. 국제사회와 인권단체들은 결혼 지참금을 덜 가져왔다는 이유로, 가문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이유로 테러의 표적이 되는 여성들을 국가가 보호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다른 쪽의 세계에선 여성의 정당한 지위를 확보하기 위한 또 다른 노력이 진행중이다. 여성의 경제적ㆍ정치적 권한 확보를 위해 양성 의무 징병제를 도입하거나, 남성의 육아휴직을 확대하는 등의 이슈를 놓고 첨예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양쪽 세계의 외양은 다르지만, 이들은 양성평등이라는 인류 공통의 목표을 추구하는 데서 동일하다. 양성평등을 위한 지구촌의 노력을 상ㆍ하편으로 전달한다.

악습 중 악습 지참금·명예살인·조혼 

#.지난달 초 인도 남부 마두라이시에서 열아홉 신부 판디에스와리(19)는 스스로 등유를 끼얹고 불을 붙였다. 남편과 그의 신부 지참금(dowryㆍ다우리) 문제로 극심한 갈등을 빚어오던 와중이었다. 임신 2개월째였던 그는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끝내 사망했다. 인도에서는 2019년 한해 지참금 분쟁으로 7115명의 여성이 살해되거나 스스로 삶을 마감했다. 남편이나 그 가족에 의해 화형ㆍ폭행ㆍ교살 등을 당하거나 스스로 스러져간 이들이다.

#.파키스탄의 패션 모델 나야브 나딤(29)은 지난 달 의붓 오빠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모델 일을 해 가문의 명예를 더럽혔다”는 이유였다. 파키스탄에서 명예살인으로 참수ㆍ화형ㆍ총살당하는 여성은 연간 약 1000명으로 추정된다. 전세계 명예살인의 5분의 1이 이곳에서 일어난다고 인권 운동가들은 말한다.

여성에게만, 여성이라는 이유로 행해지는 ‘여성을 향한 폭력’을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CEDAW)는 ‘남성에 대한 여성의 종속적 위치와 성 역할을 영속시키는 사회·정치·경제적 수단’으로 규정한다. CEDAW는 이 중에서도 아시아와 중동, 아프리카 일부 지역에서 행해지는 지참금 범죄·명예살인·아동 강제결혼(조혼)·여성 성기절제(FGM·female genital mutilation)를 “지구상에서 사라져야 할 악습 중의 악습”으로 꼽는다.

지난 2015년 인도의 무슬림 커뮤니티에서 집단 결혼식이 이뤄지고 있다. 힌두교가 압도적인 인도에서는 기독교, 이슬람교 집단에서도 결혼할 때 신부가 신랑 측에 지참금을 지급하는 관행이 퍼져있다. [AP=연합뉴스]

지난 2015년 인도의 무슬림 커뮤니티에서 집단 결혼식이 이뤄지고 있다. 힌두교가 압도적인 인도에서는 기독교, 이슬람교 집단에서도 결혼할 때 신부가 신랑 측에 지참금을 지급하는 관행이 퍼져있다. [AP=연합뉴스]

인도에 널리 퍼져 있는 신부 지참금 제도는 고대부터 이어져 왔다고 한다. 카스트 제도가 있었을 때 신부 측이 신랑 측에 건네는 지참금 규모는 가문과 공동체의 지위, 명예를 드러내는 수단으로 간주됐다. 지참금을 둘러싼 살인·가정폭력 등이 사회 문제로 떠오른 건 비교적 최근 일이다. 자본주의의 발달이 이런 경향을 가속화했다. 신랑 측은 신부 측에 거액의 현금과 귀금속, 현물을 요구하는 것은 물론 결혼비용, 친척들의 여행비용까지 부담시키기도 한다.

인도는 1961년 지참금 금지법을 도입했지만 근절되지 않고 있다. ‘법 위의 인습’이 비극을 초래하고 있다. 올해 6월 세계은행 보고서에 따르면 중앙 정부의 행정력이 미치지 않는 인도 시골 마을에서는 95%가 지참금을 주고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은행은 “인도에서 여아는 곧 경제적 부담으로 여겨져 남아 선호사상을 강화하고, 여아에 대한 성 감별 낙태를 부추긴다”고 지적했다.

파키스탄의 시민행동그룹을 지지하는 시민들이 2004년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 이른바 '명예살인' 근절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파키스탄의 시민행동그룹을 지지하는 시민들이 2004년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 이른바 '명예살인' 근절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여성 복종을 남성 명예와 동일시” 

파키스탄·인도·예멘·터키 등에서 보고되는 명예살인은 여성의 정절과 복종을 남성의 명예와 동일시하는 인식에서 비롯됐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한해 전 세계에서 5000명에서 많게는 2만 명이 죽임을 당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한 국내 연구에 따르면 남편의 식사를 늦게 차렸거나 “꿈속에서 아내가 남편을 때렸다”는 이유로 살해당하기도 했다.

파키스탄 내에서 명예살인(우르드어로 ‘카로카리’)은 심각한 사회 문제다. 2017년 명예살인을 소재로 다룬 24부작의 TV 드라마가 방영될 정도였다. 명예살인은 최고 사형에 처하고, 파키스탄 대법원이 최근 “명예살인에 더는 ‘명예’라는 수식어를 붙이지 말라”는 판결도 했다. 그럼에도 범죄는 여전히 심심찮게 일어난다.

요르단에서는 지난해 “가문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며 이혼한 딸(40)을 대낮에 콘크리트 블록으로 내리쳐 죽게 한 아버지(57)를 향한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역시 여성을 가문의 체면으로 여기는 그릇된 인식에서 비롯된 참극이었다.

그래픽으로 보는 여성 폭력.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으로 보는 여성 폭력.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국내외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상이 특정 종교·나라의 문제보다는 남성 중심의 부족주의가 발달한 공동체나 보수적인 가부장제 문화가 강한 집단에서 일어나는 것이라는 쪽에 무게를 둔다. 중동의 명예살인을 연구한 임병필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박사는 “이슬람교의 교리(코란)는 기본적으로 살인을 금하고 있다”며 “부정 행위를 한 남녀에 대한 ‘샤리아(이슬람의 율법)’ 규정을 일부 남성들이 극단적으로 해석해 여성에 대한 폭력과 살인을 정당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은행 분석에 따르면 인도의 지참금 관습 역시 인도 내 80%를 차지하는 힌두교도뿐 아니라 소수인 기독교, 이슬람교 커뮤니티에서도 행해지고 있다.

국제적으로 이동·이주가 활발한 현대 사회에서 특정 악습은 한 나라만의 문제도 아니다. 유엔마약범죄사무소(UNDOC)의 2018년 조사에 따르면 전세계에서 ‘친밀한 파트너나 가족에 의해 살해된 여성’은 약 5만 명으로 추산됐다. 폭력의 가장 극단적인 형태인 살인 피해자 외에도 염산 테러나 성폭행 등의 폭력에 노출되는 여성 인구는 이보다 훨씬 많다.

그래픽으로 보는 여성 폭력.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으로 보는 여성 폭력.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법ㆍ제도, 최소한의 필요 조건”

유니세프가 올해 2월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중·서부 아프리카에서 여아의 강제결혼 결혼 비율은 39%였다. 15세 미만도 13%나 됐다. 짐바브웨에서는 지난달 동부 마랑주의 한 교회에서 열 네살 소녀 메모리 마차야가 아이를 낳다 사망하면서 만 18세 미만 아동 결혼을 국내법으로 금지하라는 비판 여론이 고조됐다.

유엔 보고서에 따르면 소말리아·지부티·기니 등 31개국에서 조혼과 여성 성기절제가 동시에 시행되고 있었다. 여아들의 교육기회를 박탈하고, 출산 시 산모 사망률을 높이는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 이들의 부모는 경제적 이유나 성폭행을 피한다는 명목으로 지참금을 받고 여아를 강제로 결혼시키고 있다. 때문에 인권단체들은 국제협약 뿐 아니라 국내법으로 혼인 연령을 18세 이상으로 정해야 한다고 촉구한다. “법 제도가 만능은 아니지만, 최소한의 필요조건”이어서다.

2013년 나이지리아 라고스에서 한 여성이 아동 강제결혼(조혼)을 비판하는 시위에 참여했다. [AP =연합뉴스]

2013년 나이지리아 라고스에서 한 여성이 아동 강제결혼(조혼)을 비판하는 시위에 참여했다. [AP =연합뉴스]

파키스탄, 여론 들끓자 형량 높여

여성폭력을 근절하기 위해선 국제사회의 압박과 정부의 의지, 시민사회의 노력이라는 ‘3박자’가 갖춰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파키스탄은 2016년 7월 유명 SNS 스타 찬딜 발로치가 친오빠에 의해 살해당하며 나라 안팎이 들끓었다. 내부의 비판 여론은 물론 유엔 기구들까지 “파키스탄 정부가 명예살인을 막아야 한다”는 압박 성명을 냈다.

파키스탄 상·하원은 그해 10월 가족에 의한 살인 범죄를 감형하는 사면 조항을 삭제하는 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법정형은 징역 25년형 이상으로 높였다. 발로치의 오빠는 부모의 사면 탄원에도 불구하고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인도의 지참금 범죄 역시 언론 보도와 당국의 단속으로 2012년 8000건을 넘겼던 것에서 2019년 7000건대로 소폭이지만 매년 줄어들고 있다.

CEDAW 부위원장을 지낸 신혜수 유엔인권정책센터 이사장은 “근본적인 근절을 위해선 결국 해당국의 전반적인 사회 경제적 수준이 발전해야 하고, 이와 함께 구성원 모두의 의식 변화가 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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