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꺾어지는 해' 아닌데 묘한 움직임…北 열병식 시계 다시 돈다

중앙일보

입력 2021.09.04 05:00

지난 1월 14일 북한 평양 김일성 광장에서 열린 제8차 당대회 기념 열병식에서 북한이 공개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인 북극성-5형ㅅ의 모습.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지난 1월 14일 북한 평양 김일성 광장에서 열린 제8차 당대회 기념 열병식에서 북한이 공개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인 북극성-5형ㅅ의 모습.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지난 1월 14일 저녁 평양 김일성광장에선 제8차 노동당 대회를 기념하는 대규모 심야 열병식이 열렸다. 자로 잰 듯 오(伍)와 열(列)을 정확하게 맞춘 병력과 함께 신형 전술 무기도 등장했다. 북한은 이날 신형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북극성-5ㅅ(시옷)'과 '북한판 이스칸데르'로 불리는 단거리 전술 미사일(NK-23) 확대 개량형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열병식(閱兵式·Military Parade)은 군사역량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의식이다. 열병부대는 전투 장비와 병력을 통해 사기와 위용을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열병식은 당초 전투태세를 검열하는 목적으로 시작됐으나 최근에는 군사력을 과시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런 북한의 열병식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미국의 북한전문매체 38노스는 지난 1일(현지시간) 북한이 평양 인근 미림비행장에서 열병식을 준비하는 동향이 포착됐다고 보도했다. 38노스가 공개한 지난달 30일 위성사진에는 군 병력으로 보이는 대규모 인원이 행진 대열을 갖춰 모여있는 모습이 담겼다.

미국의 북한전문매체 38노스가 평양 인근 미림비행장에서 열졍식을 준비하는 모습을 포착했다고 트위터 계정을 통해 1일(현지시간) 밝혔다. [38노스 트위터 캡처]

미국의 북한전문매체 38노스가 평양 인근 미림비행장에서 열졍식을 준비하는 모습을 포착했다고 트위터 계정을 통해 1일(현지시간) 밝혔다. [38노스 트위터 캡처]

38노스는 "북한의 열병식 준비는 일반적으로 1~2개월 전에, 때로는 더 일찍 시작된다"며 "10월 열병식 준비를 시사하는 것일 수 있다"고 전했다. 38노스를 운영하는 워싱턴 소재 스팀슨센터의 마틴 윌리엄스 연구원도 "(북한의) '열병식 시계'가 다시 작동하기 시작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열병식 무기 공개 경제적 목적도 있어

제이슨 바틀렛 신미국안보센터(CNAS) 연구원은 지난달 30일 미국 외교 전문지 '더 디플로맷(The Diplomat)' 기고문에서 "북한의 열병식 방송은 미국과 유엔의 제재 탈피를 과시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언급했다.

열병식의 정치·사회적 함의에 대한 분석은 대부분 핵 무력과 김정은 정권의 생존 사이의 상관관계를 언급한다. 하지만 대규모 열병식에서 치명적인 무기를 공개하는 것은 정치·경제적 목적 모두에 기여하는 측면이 있다는 설명이다.

북한이 지난해 10월 당 창건 75주년을 맞아 진행된 열병식에서 공개한 '북한판 이스칸데르'로 불리는 단거리 전술 미사일(NK-23)의 모습. [노동신문=뉴스1]

북한이 지난해 10월 당 창건 75주년을 맞아 진행된 열병식에서 공개한 '북한판 이스칸데르'로 불리는 단거리 전술 미사일(NK-23)의 모습. [노동신문=뉴스1]

특히 열병식 방송은 북한의 최신 무기 정보를 미국의 적성 국가와 같은 잠재적 해외 구매자들에게 전달하는 창구 역할을 할 수 있다. 바틀렛은 "핵 프로그램의 민감성을 고려하면 첨단 무기를 방송으로 공개하는 것을 꺼릴 수 있지만, 북한은 전혀 주저하지 않는다"며 "북한의 열병식 방송은 미국 적대국들에게 무기 카탈로그를 제공하는 것과 같다"고 지적했다.

일반적으로 북한의 대량살상무기가 미치는 영향을 평가할 때 북한과 미국 또는 한국 사이의 잠재적인 무력 충돌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북한이 불량국가 또는 극단주의 무장단체에 이 무기들을 판매하고 있는지에 대한 관심도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실제로 지난 3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산하 대북제재위원회의 전문가패널 보고서는 북한이 유엔 안보리 결의에도 불구하고 불법군사협력과 무기거래를 지속하고 있다고 적시했다. 전문가패널은 회원국의 제보를 바탕으로 북한이 중동·아프리카·남미 등에서 여러 국가와 무기 거래 등 군사적 협력을 이어간 정황을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미협상 겨냥한 무력시위 가능성

지난 8일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열병식 군중대회에서 여러 가지 색깔의 꽃다발로 당 마크 등의 거대한 선전문구를 만들어내는 평양시민들 [사진 조선중앙TV캡처]

지난 8일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열병식 군중대회에서 여러 가지 색깔의 꽃다발로 당 마크 등의 거대한 선전문구를 만들어내는 평양시민들 [사진 조선중앙TV캡처]

북한은 각종 기념일의 매 5·10년 주기를 '꺾어지는 해(정주년)'로 부르며 열병식을 치르곤 했다. 북한이 지난해 10월 10일(노동당 창건기념일)에 진행한 열병식도 당창건 75주년을 기념한 행사였다. 올해는 정권 설립일(9월9일)이 73주년, 당창건일(10월10일)이 76주년이라 열병식을 개최할만한 정주년 기념일이 없다.

그래서 북한이 대미협상을 겨냥한 무력시위 차원에서 9월 혹은 10월에 열병식을 진행하려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미국이 '조건 없는 대화'를 제의한 후 별다른 움직임이 없는 데다 아프간 사태로 북핵 협상에 대한 집중력이 떨어진 상황에서 관심을 제고하기 위한 목적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북한이 정주년이 아님에도 열병식을 한다면 특수한 목적이 있는 것"이라며 "정권설립일이나 당창건일에 열병식을 한다면 체제결속 목적과 함께 대미협상을 겨냥한 무력시위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열병식을 체제 결속과 핵·미사일 등 군사력을 과시하는 기회로 삼았다. 열병식에 등장했던 각종 전략무기는 어김없이 시험발사로 이어지면서 한반도의 긴장 수위를 높이는 수단이 됐다. 열병식이 진행된다면 북한은 어떤 메시지를 담을까. 북한이 열병식을 준비하는 의도가 주목받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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