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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크인부터 나갈 때까지 마주친 직원 '0명'…'로봇호텔' 가보니

중앙일보

입력

지난달 18일에 방문한 서울 중구 명동 헨나호텔. 이 호텔에는 프런트에 로봇 2대, 배달 로봇 1대 총 3대의 로봇이 직원을 대신하고 있다. 권유진 기자

지난달 18일에 방문한 서울 중구 명동 헨나호텔. 이 호텔에는 프런트에 로봇 2대, 배달 로봇 1대 총 3대의 로봇이 직원을 대신하고 있다. 권유진 기자

 ‘0명’
지난달 18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 헨나호텔 로비에 들어서서 체크인 및 하루 숙박을 하고 다음 날 체크아웃을 할 때까지 마주친 직원의 숫자다. 대신 로비에 들어서면 프런트에서 머리와 몸통ㆍ팔이 있는 로봇이 사람을 인식해 “안녕하세요”라며 인사를 건넨다. 그러면서 옆에 있는 키오스크에서 체크인하라고 안내한다. 키오스크에 예약한 번호를 입력하면 배정된 객실의 카드키가 발급된다.

로봇 옆에는 직원을 호출할 수 있는 전용 전화기도 놓여있다. 키오스크 체크인 과정 등에서 문제가 생기는 상황에 대비해 일부 직원이 숙박객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공간에 따로 상주한다. 헨나호텔 관계자는 “대부분 키오스크에서 문제없이 체크인을 하기 때문에 호출용 전화가 울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체크인,아웃을 하는 키오스크(왼쪽)와 직원을 호출할 수 있는 전화(오른쪽). 권유진 기자

체크인,아웃을 하는 키오스크(왼쪽)와 직원을 호출할 수 있는 전화(오른쪽). 권유진 기자

지난달 초 명동에 오픈한 일본 체인 헨나호텔은 손님을 맞이하는 프런트 업무부터 객실에 물품을 전달하는 역할까지 모두 로봇이 한다. 일본에서는 2015년 처음 문을 열어 로봇이 직원으로 일하는 세계 최초의 호텔로 기네스에 등재되기도 했다. 한국에 진출해서는 KT와 손을 잡고 ‘AI(인공지능) 호텔’ 서비스를 시작했다. KT의 기가지니 단말을 통해 음성 명령으로 객실 내 조명ㆍ에어컨ㆍTV 등을 조절할 수 있다.

"물 갖다 줘" 시키니 10여분 뒤 어색한 "똑똑"

로봇이 가져다준 생수 2병. 서랍 위에 있는 모니터에 안내멘트가 나온다. 권유진 기자

로봇이 가져다준 생수 2병. 서랍 위에 있는 모니터에 안내멘트가 나온다. 권유진 기자

객실에 필요한 물이나 수건 등을 추가로 시킬 때도 로봇이 등장했다. “물 가져다줘”라고 음성 명령을 하고 확인 과정을 거치니 약 10분 뒤 배송 로봇이 ‘똑똑’ 문을 두드렸다. 사람이 두드리는 것보다 다소 어색하고 소리가 지나치게 컸다. 문을 여니 사람이 나오는 것을 인지한 로봇이 물을 꺼내기 편하게 방향을 틀었다. 모니터에는 ‘주문하신 물건이 도착했습니다. 서랍 열기 버튼을 누르고 물건을 수령하세요’라는 안내문이 나왔다. 시키는 대로 서랍을 열고 물을 꺼내니 임무를 마친 로봇이 뒤돌아서 복도를 쭉 따라 엘리베이터까지 곧장 갔다.

엘리베이터 앞에 로봇이 도착하니 문이 저절로 열렸다. 로봇은 ‘로봇 전용 모드’로 설정된 엘리베이터에 곧장 탑승했다. 1층 로비로 내려온 로봇은 충전 스테이션으로 복귀해 스스로 충전을 시작했다. 헨나호텔 관계자는 “해당 층에 엘리베이터가 있으면 바로 타고, 없으면 로봇이 팔을 뻗어 버튼을 눌러 엘리베이터를 부른다”고 말했다.

로봇이 물을 가져다주고 다시 돌아가는 모습. 영상은 편의를 위해 속도를 높인 것으로, 실제 속도는 이보다 느리다. 권유진 기자

로봇이 물을 가져다주고 다시 돌아가는 모습. 영상은 편의를 위해 속도를 높인 것으로, 실제 속도는 이보다 느리다. 권유진 기자

속도 다소 느리고 사람 도움 일부 필요

다만 로봇의 구동 속도가 다소 느리다는 한계가 있었다. 버튼을 눌러 명령을 실행해도 동영상에서 ‘슬로우 모션’을 걸어놓은 것처럼 천천히 움직였다. 일명 ‘한국인이 좋아하는 속도’에는 한참 미치지 못해 ‘같은 일을 사람이 했으면 이것보다 빠르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또한 로봇이 1대밖에 없기 때문에 여러 객실의 주문이 겹치면 로봇이 여러 군데를 들러 시간이 늦어지거나 사람이 움직일 수밖에 없다.

물론 이에 대한 반론도 있다. 로봇의 속도는 얼마든지 더 빠르게 할 수 있지만, 안전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적정 속도를 맞춰야 한다는 의견이다. 익명을 원한 로봇 업계 관계자는 “서비스 로봇에서는 안정성이 중요하다”며 “빨리 움직이다가 로봇이 사람을 칠 수도 있고, 스스로 어딘가에 부딪힐 수도 있는 위험이 있기 때문에 기술이 담보된다 해도 속도를 높이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주문을 이해하고 실행하는데도 사람의 도움이 일부 필요했다. 기가지니 AI 서비스에 필요한 물품을 요청하자 직원이 객실로 전화를 걸어 주문을 확인했다. 주문이 들어온 물품을 로봇에 알맞게 담는 것도 직원의 역할이다. 청소 또한 로봇이 아닌 사람이 직접 담당한다. ‘로봇 호텔’이라고는 하지만, 고객에게 보이는 부분만 일부 로봇이 담당하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일반 호텔과 마찬가지로 사람의 노동이 필요한 것이다.

"서비스 로봇 시대, 머지않았다"

헨나호텔이 국내에 들어오기 전에도 이미 지난해부터 대구 메리어트 호텔 등에서는 로봇이 객실과 로비를 오가며 서비스를 했다. 부산 롯데호텔에서는 객실층 건식 청소와 로비의 습식 청소를 로봇이 맡고 있다. 국제로봇연맹(IFR)에 따르면 이런 전문 서비스 로봇의 세계 시장 규모는 지난해 112억 달러(약 12조 9500억원)에서 2023년 2배가 넘는 277억 달러(약 32조 400억원)로 성장할 전망이다.

서비스 로봇이 사람과 함께 승강기를 이용할 수 있도록 안전기준도 마련되고 있다. 로봇이 승강기를 이용할 때 전도(넘어짐)나 충돌의 방지, 장애물 회피, 엘리베이터 단차 감지 등을 평가받아야 한다는 내용이다. 승강장 바닥과 승강기 바닥의 높이 차이가 있더라도 넘어지지 않고, 사람이 옆에 있으면 ‘부딪히지 않게 조심하라’는 등의 안내방송을 내보내는 식이다.

승강기와 로봇의 통신 문제도 해결될 전망이다. 현행 승강기 안전기준에 따르면 로봇이 승강기와 무선통신을 통해 승강기를 제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LG전자 클로이 등 일부 로봇은 현재 행정안전부로부터 특례 인정을 받아 자유롭게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릴 수 있다. 정부는 지난 4월 마련한 규제혁신 로드맵에 따라 연내에 이를 반영한 새로운 기준을 내놓을 예정이다.

성기엽 한국로봇산업협회 기술표준팀장은 “표준인증이 개발되면 명확한 기준에 따라 로봇이 움직이고 서비스할 수 있기 때문에 단순 서비스 부분은 빠르게 활성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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