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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종 모면했지만 고래 몸은 아프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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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2호 21면

고래가 가는 곳

고래가 가는 곳

고래가 가는 곳 리베카 긱스 지음, 배동근 옮김 / 바다출판사

고래가 우리 곁에서 사라지는 일은 당분간 없을 것 같다. 지난해 미국에서 출간돼 각광받은 이 생태 문학 책에 따르면 그렇다. 세계 여러 곳에서 고래 개체수가 늘고 있다. 남극과 호주를 오가며 서식하는 혹등고래의 경우 베이비붐이 일고 있다고 할 만큼 숫자가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1980년대 세계적으로 일었던 포경 반대 환경 운동의 결과다. 일본 같은 나라는 여전히 포경을 고집하고 있지만 말이다.

하지만 미래에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 인간이 지금처럼 행동해서는 안 된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바다로 흘러 들어간 각종 쓰레기와 오염물질을 고래가 아무런 여과 과정 없이 먹어치우고 축적한 결과 제 몸뚱이만큼의 거대한 오염체가 되어가고 있어서다.

가령 스페인 해안으로 떠밀려와 죽은 향고래의 배 속에서 비닐하우스 한 채(제철 아닌 토마토 농사용이었다), 매트리스 조각, 옷걸이, 음식 찌꺼기 거름망, 아이스크림 통 같은 것들이 나왔다. 폴리염화 바이페닐 같은 독성 물질은 1980년대에 세계적으로 사용이 금지됐지만 생태계에 남아 있다 고래 몸으로 흘러든다.

이런 오염의 축적 과정은 충격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고래를 주기적으로 섭취하는 그린란드의 이누이트 여성들에게는 모유 수유 중단이 강력 권고된다고 한다. 이누이트 여성의 모유를 유방이 아닌 다른 용기에 담았을 경우 여성의 국경 통과가 금지될 거라고 BBC 다큐가 지적했을만큼 모유가 오염됐다는 얘기다.

섬뜩한 사례들을 소개했지만 책이 고발서는 아니다. 환경 오염이라는 큰 난제가 원인인 만큼 고래의 건강을 되찾아줄 뾰족한 방법도 없다. 저자는 쓴다. 모든 생명체는 신비한 우물이라고. 인간이 고래에 대해 알면 알수록 더 깊은 수준에서 모르는 부분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 인간의 상상을 뛰어넘는 신비로운 자연 앞에서 보다 겸손해지자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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