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의 언론 탄압, 한국은 얼마나 다른가

중앙선데이

입력 2021.09.04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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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2호 20면

나는 다시는 세상을 보지 못할 것이다

나는 다시는 세상을 보지 못할 것이다

나는 다시는 세상을 보지 못할 것이다 아흐메트 알탄 지음, 고영범 옮김 / 알마

‘언론재갈법’으로 둔갑한 언론중재법 처리가 9월 말로 연기되기는 했지만 징벌적 보상 등 독소조항을 가득 담은 현재 법안이 그대로 상정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국내 언론·시민단체와 법조·학계뿐 아니라 해외 언론단체와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까지 나서 한국의 언론자유 위축 우려를 표시하면서 더불어민주당은 일단 한발 물러섰지만 발톱은 숨기지 않고 있다.

한국에서 권력 감시라는 언론 본연의 역할이 백척간두에 선 이 시점에 발간된 『나는 다시는 세상을 보지 못할 것이다』는 우리에게 언론자유의 중요성을 새삼 일깨워 준다. 이 책은 2016년 7월 15일 실패한 터키 군부 쿠데타에 억울하게 연루돼 종신형을 선고받은 언론인이 언론자유가 짓밟힌 터키의 상황을 고발한 옥중서신 19편을 담고 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쿠데타를 제압한 이후 많은 군인, 경찰, 공무원과 자신에 대해 비판적인 언론인, 교사 등을 잡아들였으며 다수의 언론사에 탄압을 가했다.

이 책의 지은이는 ‘터키의 밀란 쿤데라’라 불리는 대표 작가이면서 신문사 편집국장을 지낸 언론인인 아흐메트 알탄(71)이다. 이스탄불대 경제학자였던 그의 동생 메흐메트와 함께 아흐메트는 쿠데타 실패 두 달 뒤 새벽에 집으로 들이닥친 경찰에 연행됐다. 알탄 형제는 쿠데타 시도 전날 밤 출연한 한 TV 프로그램에서 ‘은근한 메시지’를 전달했다는 터무니없는 혐의로 체포됐다.

2016년 군부 쿠데타에 연루됐다는 이유로 언론을 탄압한 데 대해 항의하는 터키 군중. [AP=연합뉴스]

2016년 군부 쿠데타에 연루됐다는 이유로 언론을 탄압한 데 대해 항의하는 터키 군중. [AP=연합뉴스]

그러나 정작 터키 법정에서는 ‘은근한 메시지’에 대한 증거가 제시되지 않았다. 대신 형제가 창간했던 신문에 질문이 집중됐다. 옥중 편지에 따르면 담당 검사는 “우린 국가 전복 음모에 관여한 자들이 모두 이 신문에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확고하게 해놨소”라고 말했다. 판사는 “당신들이 우리 정부가 부패했다고 이야기했나요?”라며 “당신이 정치적인 사안들에 관심을 끊고 소설을 쓰는 일에만 몰두했더라면…”이라고 했다. “정부가 부패했다고 말하는 것이 정부 전복의 범죄를 구성하는 조건이 되지는 못합니다”라는 아흐메트의 말에 판사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아흐메트의 고발에 따르면 쿠데타에 직접적으로 전혀 연루되지 않은 알탄 형제가 날조된 죄목으로 부당하게 투옥돼 고통을 받았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언론재갈법이 원안대로 통과되면 그런 일이 벌어지지 말라는 법은 없을 것이다.

동생 메흐메트는 “나는 내 평생 군사 쿠데타에 저항하면서 싸웠습니다. 그런데 당신들은 지금 내가 정부를 비판했다는 이유만으로 쿠데타를 음모했다고 혐의를 뒤집어씌우고 있소”라고 주장했다. 형 아흐메트는 “법원은 종교적인 반역 음모 가담자라는 죄목으로 내게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선고했다. 그들이 증거랍시고 내민 건 내가 쓴 세 편의 칼럼과 한 번의 TV 출연뿐이었다”고 고발한다.

아흐메트는 수감 중 뉴욕타임스에 “우리는 절대 사면되지 못할 것이며 우리는 감방 안에서 죽을 것”이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그는 “저들은 내게 감옥 안에서 죽을 것을 선고했지만 나는 아직 죽지 않았다. 내 핏속에는 싸움을 사랑하는 정신이 흐르고 있다”며 버텨냈다.

종신형을 선고받았던 언론인 아흐메트 알탄이 감옥에서 쓴 원고. [사진 알마]

종신형을 선고받았던 언론인 아흐메트 알탄이 감옥에서 쓴 원고. [사진 알마]

아흐메트는 언론과 창작의 자유,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생각의 독립성, 생각의 자유를 위해 평생을 싸워 왔다. 그는 바로 이것 때문에 감옥에 갇혔다.

이 책은 터키 정부의 언론 탄압에 대한 고발인 동시에 한 예술가의 솔직한 자기 고백이기도 하다. 절망적인 수감 생활 중에도 아흐메트는 “권력자들이 나를 감옥에 집어넣을 수는 있지만 가둬 두지는 못할 것”이라며 “나는 작가”라고 선언한다. 그는 가장 어려운 순간에도 대상과 타협하는 대신 ‘거의 신적인 교만함’을 갖고 자신을 더 강하게 만드는 작가 정신을 지켰다.

다행히도 아흐메트는 지난 4월 14일 석방됐다. 그러나 이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언제 다시 재수감될지도 모른다.

터키는 여전히 ‘독재적’ 정권 아래 언론의 자유가 완전히 보장되지 않는 민주주의의 위기를 겪고 있다고 외신들은 전한다. 이 책은 민주화운동으로 어렵게 민주주의를 지켜 낸 한국이 어찌하다 다시 터키처럼 정부에 의한 언론 탄압을 거론하는 지경까지 이르게 됐는지를 깊이 새겨 보는 계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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