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전 공시의 세계
기업끼리 합병을 하려면 주주총회를 열어 승인(특별결의)을 받아야 한다. 합병안이 주총에서 통과하면 합병에 반대하는 주주들은 어떡해야 할까? 결정에 따르든지, 주식을 매각하고 다른 기업에 투자하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할 것이다. 주식을 팔기로 했다면 회사에다 “내 주식을 사 달라”고 요구할 수 있다. 상법상 ‘주식매수청구권’이 부여되기 때문이다. 청구가격은 이사회에서 합병결정을 하고 이를 공시를 할 때 제시한다. 그런데, 주식매수청구권 행사방법에 대해 잘 모르거나 잘못 알고 있는 투자자들이 꽤 있다.
최근 SK그룹의 지주회사인 SK가 자회사 SK머티리얼즈(반도체 등 산업용 특수가스 제조)를 흡수합병한다고 공시했다. 주식매수청구권은 SK머티리얼즈 주주에게만 부여된다. SK 입장에서는 상법상 ‘소규모 합병’에 해당하기 때문에 부여하지 않아도 된다. 주총을 열 필요도 없다. SK가 SK머티리얼즈를 흡수하는 대가로 이 회사 주주들에게 발행해줘야 하는 신주가 현재 SK 총발행주식의 10%가 안되기 때문이다. SK는 SK머티리얼즈 지분 49%를 가진 대주주다. 이 지분에 대해서는 합병신주를 발행하지 않기로 했다. 나머지 일반주주 지분에 대해서만 합병비율(SK머티리얼즈 1주 당 SK 1.578주)에 따라 신주가 발행되기 때문에 물량이 확 줄었다.
SK머티리얼즈 주주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절차는 합병에 대한 ‘서면 의사 표시’다. 회사는 주총 전까지 합병 반대 의사를 서면으로 받는다. 주총에서 합병안이 통과되면 서면 반대 의사를 밝혔던 주주들은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서면 반대를 하지 않았던 주주들은 나중에 매수청수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서면 반대를 하지 않았어도 주총에 참석해 반대표를 던지면 매수청구를 할 수 있는 것으로 아는 투자자들이 있는데, 사실이 아니다. 서면 반대를 해 놓으면 주총 참석 여부와 상관없이 매수청구권 행사가 가능하다. 서면 반대를 하고 주총장에 가 찬성 표결을 하면 매수청구 자격을 상실한다.
서면 반대를 했으면 무조건 매수청구가격에 해당되는 금액을 받아야 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또한 사실이 아니다. 서면 반대가 곧 청구권 행사인 것은 아니다. 합병하는 회사의 주주게시판에 가보면 매수청구권 행사가격을 합병가액과 혼동하는 투자자들이 꽤 있다. 합병가액은 합병비율을 산출하기 위해 회사가 평가한 가격이다. SK와 SK머티리얼즈는 둘 다 상장사이기 때문에 자본시장법에 따라 최근 1개월간 주가를 기준으로 각각 26만4076원, 41만6670원의 합병가액과 합병비율(1대1.578)을 산출했다.
매수청구가격 역시 자본시장법에 따른다. 원칙적으로는 회사와 주주 간 협의로 결정을 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협의 자체가 불가능하다. 법에서는 이 경우 최근 2개월간 주가흐름으로 산출하라고 한다. 이게 41만5751원으로, 합병가액보다는 조금 낮다. 만약 주가가 매수청구가보다 낮게 형성되고, 그 차이가 크다면 많은 주주들이 매수청구권 행사에 나설 수 있다. 매수청구가 대량으로 몰려 회사에 자금압박이 생길 수 있다. 이에 대비해 합병계약서에 관련 조항을 넣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SK와 SK머티리얼즈는 매수청구권 행사금액이 8000억원을 초과할 경우 한 회사가 상대방에게 합병계약 해제를 서면통지할 수 있게 했다. 8000억원이 넘어도 합병을 진행될 수 있겠지만 대개 이런 경우에는 합병을 중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