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가지 야생버섯 탕 감칠맛 철철…“마법가루 안 쓴 맹물탕”

중앙선데이

입력 2021.09.04 00:02

업데이트 2021.09.04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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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2호 24면

맛따라기

15가지 야생버섯을 넣고 끓인 호남식당 버섯탕. [사진 이택희]

15가지 야생버섯을 넣고 끓인 호남식당 버섯탕. [사진 이택희]

주인과 인사를 나누자마자 주방으로 따라 들어갔다. 혼자 큰 식당 점심손님 맞을 준비가 한창이다. 커다란 양은 푼주에서 ‘자연산 버섯탕’이 펄펄 끓고 있다. 그렇게 초벌 끓이고 투가리(뚝배기의 현지어)에 나눠 담아 다시 끓여 손님상에 낸다. 대뜸 물었다. “국물엔 뭐가 들어가나요?” 택배로 받아 처음 먹어 본 버섯탕 향과 맛의 인상이 강렬해 무척 궁금했기 때문이다. 대답은 않고 왜 묻냐는 표정이라 더 자극적으로 물었다. “감칠맛이 철철 넘쳐요. 마법가루를 많이 넣은 것 아닌가요?”

이걸 물으려고 지난달 23일 먼 길(서울시청에서 406㎞)을 갔는데 대답은 싱거웠다. “이거 맹물탕여요. 맹물에 자연산 버섯 15가지 하고 쇠고기·양파·청양고추·소금 말고는 암 것도 안 들어가. 마법가루? 난 그게 뭔지도 몰라. 그거 들어가면 버섯 맛을 버릴 틴디. 버섯 향을 해칠 거여. 나는 그렇게 생각하는디. 국물 감칠맛은, 버섯을 물에 담그면 미끈덩거리는 진액이 있는디, 거기서 나는 맛여. 버섯이 여러 가지 들어가야 하지 글 안 하면 맛이 안 나. 15가지 버섯으로 끓이다가 저장한 게 떨어져 7~8가지만 넣으면 맛이 없더라고. 그랑게 종류가 적어지면 버섯탕 안 팔아 부러.”

“버섯 덜 들어가면 맛 없어, 안 팔아 부러”

조경애씨가 날마다 직접 준비해 전라도 말로 ‘개미가 있는’ 반찬 15가지가 오른 버섯탕 밥상. [사진 이택희]

조경애씨가 날마다 직접 준비해 전라도 말로 ‘개미가 있는’ 반찬 15가지가 오른 버섯탕 밥상. [사진 이택희]

전남 해남 대흥사 입구 음식촌에 있는 야생버섯 전문 ‘호남식당’ 여주인 조경애(71)씨 얘기다. 주인도 정확히 기억 못 하지만, 이곳에서 식당을 시작한 지 44~45년쯤 됐다 한다. 식재료 살 돈도 없어서 두륜산에서 버섯 따고 산나물 뜯어 산채음식을 만들어 판 게 시작이었다.

그는 “근디 이걸 다 얘기하면 어떡하나” 걱정하면서도 본인의 요리법 얘기를 계속했다. “버섯도 맛있지만, 잘 익어서 말린 청양고추에서 맛이 많이 나와. 달보드름 시원 칼칼한 맛이 거기서 다 나와. 감칠맛은 버섯이 내고, 단맛은 양파가 내고, 고추를 좋은 거로 잘 골라 써야 혀. 청양고추 퍼런 걸 썼더니 풋내가 나고 맛이 없어. 이 국물 맛 낸다고 안 해본 게 없어. 뼈 고아서 해보고 멸치·다시마 국물도 써 보고 마지막에 알아낸 게 맹물에 고추여. 뼈 국물로 하니까 느글거려서 못 먹겠더라고. 소고기는 사태 위주로 여러 부위를 섞어 쓰는디, 한우 아니면 절대 안 쓰지.”

이날 버섯탕에는 야생버섯 15가지가 들어갔다. 능이버섯, 밤버섯, 강강술래버섯, 참나무버섯, 곰팡버섯, 솔버섯, 서리버섯(표준명 가지버섯), 총각버섯, 싸리버섯, 오이꽃버섯(꾀꼬리버섯), 솔꽃버섯, 산느타리버섯, 갓버섯, 계란버섯 두 가지(하얀 것, 꺼풀 쓴 것)까지 꼽더니 탄식을 했다. “아이구, 나도 다 기억 못 해. 더 들어갔을 거여. 전부 자연산이지. 버섯탕만 해. 다른 메뉴는 안 해. 예전에는 버섯볶음이나 구이도 했지만, 요즘은 나이 들고 힘들어서 이것만 해.”

지난달 23일 새벽 두륜산에서 딴 총각버섯(회색 갓), 계란버섯(흰 갓), 오이꽃버섯(노랑·주홍), 참나무버섯(갈색). [사진 이택희]

지난달 23일 새벽 두륜산에서 딴 총각버섯(회색 갓), 계란버섯(흰 갓), 오이꽃버섯(노랑·주홍), 참나무버섯(갈색). [사진 이택희]

반찬도 15가지였다. 엄나무순장아찌, 도라지나물, 더덕장아찌, 새송이버섯볶음, 만가닥버섯볶음, 배추김치, 산다래순나물, 해파리무침, 석화젓무침, 양하(양애)근볶음, 쪽파김치, 쑥부쟁이나물, 죽순나물, 토란대나물, 고사리나물. 날마다 조금씩 바뀌는데, 일반 음식점에서 나오는 것은 별로 없다. 재료나 이름이 같아도 나온 음식은 다르다. 절 아래서 익힌 솜씨로 손수 준비하기 때문이다.

더덕장아찌가 맛있다고 하자 푸념 섞인 자랑을 했다. “들어가는 공력이 말도 못해. 껍질을 까서 40%쯤 말리고 고추장에 버무려서 1년 넘게 둬야 먹어. 냉장고에 두면 더덕이 고추장을 다 먹어. 그걸 꺼내 찢어서 물엿 넣고 볶은 고추장에 다시 무친 게 그거여.”

밥도 범상치 않다. 쌀·찹쌀·흑미·찰보리쌀·흑보리쌀·차조·기장·녹두와 콩 3가지 등 11가지 곡물로 지은 건강밥이다. 요즘 젊은이들 말처럼 가히 ‘예술’이다. 단골손님들 가운데 성인병 있는 사람도 많고, 남편이 콩밥을 좋아해서 3년 전부터 밥을 그렇게 짓고 있다 한다.

채집부터 조리까지 모든 과정 혼자 다 해

안혜경씨가 그려 선물한 ‘두륜균보’ 그림. [사진 이택희]

안혜경씨가 그려 선물한 ‘두륜균보’ 그림. [사진 이택희]

식당 벽에는 주인이 두륜산 일대에서 따 나른 버섯의 야생 상태 사진이 가득 걸려있다. 그 사이에 ‘두륜균보(頭輪菌寶)’라는 제목의 유화(193.9×130.3㎝, 캔버스에 아크릴, 2016년) 한 점도 걸려 있다. 자주 올 때는 일주일에 두 번은 밥을 먹으러 오던 손님이 있었다. 버섯 철이 되자 올 때마다 그날 따온 버섯을 사진 찍고, 물어보고, 본인이 따로 알아보고… 2년을 그러더니 이 그림을 그려서 2016년 선물했다.

맛있는 음식에 대한 보답인 셈이다. 주인은 “우리 식당에 있는 버섯은 거의 다 그렸다고 봐야지”라며 흡족한 표정이다. 그림에는 버섯을 40가지쯤 그렸다. 버섯은 두륜산 종균들이 키운 보물이라 여기는 마음을 그림에 담은 작가는 안혜경씨다.

주인은 그림 속 버섯 이름을 줄줄이 읊었다. 헌데 책에 나오는 이름과 사뭇 다르다. 문자로 버섯을 배운 게 아니라 실물을 보고 구전으로 배웠기 때문이다. 가르쳐 준 분은 한 동네 살면서 미수(米壽)까지 버섯과 산나물 채취해 홀로 10남매를 키운 위금요 할머니(1925~2014)였다. 할머니는 따 온 버섯을 호남식당에 몽땅 넘겼다.

38년 동안 그러면서 버섯 이름, 독 있는 것과 없는 것, 독 빼는 법 같은 걸 알려줬다. 산에서 배운 건 거의 없다. 산속의 버섯밭은 자식도 안 알려준다 할 만큼 일생의 비밀이다. 양어머니로 모신 그분도 산 입구까지는 함께 가지만 채취는 각자 했다.

2019년 밤버섯을 따는 조경애씨. [사진 이택희]

2019년 밤버섯을 따는 조경애씨. [사진 이택희]

주인 조씨는 버섯이 많이 나는 기간에는 음식점 손님을 받으면서 오전 5시부터 하루에 두세 차례 두륜산 일대를 오르내리며 많게는 300㎏씩 버섯을 딴다. 그만큼 따는 날이 한 해 20일은 된다고 한다. 버섯 자루를 임도에 내놓으면 남편 김대진(77)씨가 때맞춰 오토바이 타고 올라가 실어 내린다. 저녁이면 그 버섯을 일일이 다듬고 가려 저장한다. 그러기를 올해로 45년.

독이 있는 버섯은 염장했다가 요리할 때 잘 우려서 쓰고, 독 없는 버섯은 생으로 냉동했다가 녹여서 쓴다. 저장할 때 비닐봉지 색깔로 버섯 종류를 구분한다. 버섯을 많이 따면 손질 작업을 오전 2시까지도 한다. 그런데도 남에게 일을 맡기지 못한다. 조씨는 “일을 내 손으로 해야 마음이 놓이는 성격이기도 하지만, 버섯은 뭐 하나 깜빡 잘못 섞여 들어가면 인생 망가지는 거라 남 못 맡겨”라면서 “날 새워 가며 하는 날이 올해도 있어야 할 건디 있을래나 말래나”하고 기대 반 걱정 반 혼잣말을 했다.

지난달 23일 현재 이 지역 야생버섯은 예년보다 2~3주 늦다고 한다. 그날 새벽 조씨는 산에 가서 오이꽃버섯 2가지와 총각버섯·계란버섯·참나무버섯을 조금씩 따다가 다듬어 놓고 있었다. 두륜산 버섯이 모자라면 강원도, 충북 괴산, 전남 구례의 단골 버섯꾼들에게서 긴급 조달한다.

늦은 점심으로 차려 준 버섯탕 국물은 어찌나 향기롭고 쌉싸름 칼칼하면서 시원하고 감칠맛 넘치던지, 또 버섯마다 각자의 향과 맛이 다 살아 있는 것은 어찌나 신기하던지. 감탄하는 사이 옆에 있던 주인은 “앞으로 몇 년이나 더 할라나” 하며 앞산을 바라본다. 문득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이라는 시 한 구절이 그 반대 상황을 연상케 했다.

“사람이 온다는 건/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그는/그의 과거와/현재와/그리고/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위험한 식재료인 야생버섯의 채집-분류-갈무리-조리 모든 과정을 혼자 다 해내는 이런 분이 일손을 놓으면 그 경험과 지혜가 통째 사라지는 건 아닐까. 그러면 이런 훌륭한 음식을 어디서 먹을 수 있을까. 아무쪼록 부질없는 걱정이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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