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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의 삶' 가출소녀 된 걸스데이 방민아 "제 삶의 아픔들 정리될 것 같았죠"

중앙일보

입력

영화 '최선의 삶'. [사진 엣나인필름]

영화 '최선의 삶'. [사진 엣나인필름]

“그런 느낌이 들었어요. 내가 이 연기를 한다면, 그간 지우고 싶었던 기억들, 문득문득 기억나서 밥 먹을 때도 자기 전에도 갑자기 찾아오는 아픔들이 한 챕터 넘어가면서 스스로 정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제 삶의 어떤 부분을 한번 토해내면 저한테도 어떤 시작점이 열리지 않을까.”

걸그룹 ‘걸스데이’ 방민아(28)가 영화 ‘최선의 삶’(1일 개봉)의 가출 소녀 강이가 되고 싶었던 이유다. 2010년 아이돌 데뷔 이듬해부터 꾸준히 연기에 도전해 올해로 배우 10년 차다. 방민아를 지난달 24일 화상 인터뷰로 만났다.

영화 '최선의 삶' 주연 배우 방민아 #걸그룹 걸스데이 벗고 가출 10대 열연 #뉴욕아시안영화제 라이징스타상 수상

가출소녀들 성장통…원작은 아이유 '인생소설' 

신인 이우정 감독이 임솔아 작가의 2015년 동명 소설을 토대로 각본까지 겸한 단편 데뷔작이다. 원작은 가수 아이유가 ‘인생 책’으로 꼽아 알려지기도 했다. 영화는 열여덟 살 고교생 강이‧아람(심달기)‧소영(한성민)이 함께 가출했다가 겪는 지독한 성장통을 그렸다. 기찻길 위 언덕에 사는 강이는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아람, 모델을 꿈꾸는 우등생 소영과 서로 죽고 못 사는 단짝이지만, 어느 틈에 금이 간 관계는 되돌릴 수 없을 만큼 악화한다.

영화 '최선의 삶' 주연 배우 방민아를 지난달 24일 화상 인터뷰로 만났다. [사진 엣나인필름]

영화 '최선의 삶' 주연 배우 방민아를 지난달 24일 화상 인터뷰로 만났다. [사진 엣나인필름]

왕따‧학교폭력, 거듭된 가출 등 여느 10대 주인공 작품에서 자주 봐온 소재도 나오지만, 이런 사건들은 암시만으로 생략하고 친구 사이의 미묘한 공기와 감정 묘사에 최대한 집중해 차별화했다. 주인공 강이는 자기 의견도, 삶의 목표도 없이 친구들에게 부대끼다 벼랑 끝에 선다. 그 참혹한 결과를 영화는 담담하게 보여준다.

방민아 "자기가 없고 타인 더 중요한 때 있어 공감" 

방민아는 “존재감이 있어야 존재하는 것은 아니더라. 강이는 회색 같은 존재”라고 설명했다. 시사 후 간담회에선 “저 또한 강이처럼, 자기가 없고 타인이 더 중요한 때가 있었다. 그래서 공감이 많이 갔다”면서 “강이가 한 선택이 점점 더 최악에 치달을 때가 가장 어려웠다”고 했던 그다. “익숙해질수록 더 진저리쳐지는 무서움이 있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더 나아지기 위해서 우리는 기꺼이 나빠졌다. 이게 우리의 최선이었다” 등 원작 소설의 문장처럼 영화에서 표류하는 강이에게 방민아는 기쁨과 불행을 수면처럼 찰랑이며 오가는 투명한 얼굴을 부여했다.

스크린 데뷔작 ‘홀리’(2013)에선 무용수를 꿈꾸는 고등학생 역할로 광주국제영화제 신인여우주연상을 받고, 드라마 ‘미녀 공심이’(2016)론 SBS연기대상 우수연기상‧뉴스타상을 차지하기도 했다. 다시 교복을 입은 이번 영화로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KTH상, CGK&상암XEEN상 2관왕, 서울독립영화제 새로운선택상에 더해 지난달 뉴욕아시안영화제에서 국제라이징스타상을 차지했다. “K팝 스타 ‘걸스데이’ 방민아가 기존의 화려한 이미지와 다른 주연을 맡았다”는 평과 함께다. 개봉 후에도 100개 남짓 작은 스크린 수 탓에 이틀간 관객 수는 2700여명에 불과하지만, 본 관객들은 호평이 잇따른다.

감독 "눈치 빠른 방민아 만나 캐릭터 변화" 

영화 '최선의 삶'. [사진 엣나인필름]

영화 '최선의 삶'. [사진 엣나인필름]

“강이 역은 안해본 모험을 할 수 있는 배우면 좋겠다”고 바랐다는 이 감독은 본지와 인터뷰에서 “첫 만남에서 (방)민아 배우가 강이란 인물이 예전의 자신과 닮은 부분, 본인이 살아남기 위해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모습들. 그걸 꺼냈을 때 사람들이 어떻게 볼까, 같은 두려움을 다 얘기해줬다”며 솔직함을 캐스팅 이유로 밝혔다.

방민아는 “10대 시절에 최대한 가깝게 다가서는 작업에 감독님과 공을 많이 들였다”면서 “신기한 게 초등학교 저학년, 유치원 때 친구로 인해 상처받은 기억이 났다. 아픈 기억은 쉽게 잊지 못하는구나, 또 한번 놀랐다”고 했다. 캐스팅 후 촬영까지 2달 반 빠듯한 준비 기간 동안 각각 스물둘, 스물인 동료 배우 심달기, 한성민과 따로 일주일에 너댓번씩 뭉치며 친해졌다.

영화 '최선의 삶'. [사진 엣나인필름]

영화 '최선의 삶'. [사진 엣나인필름]

극중 강이와 소영이 우정의 경계를 넘나드는 노출 장면은 이 감독 집에서 사전 리허설을 철저히 했다. 그는 “감독님이 저보다 더 걱정하고 고민하는 모습에 믿음이 갔다”고 했다. 마음을 열자 본모습도 튀어나왔다. “강‧소‧아(극 중 세 친구를 그는 이렇게 불렀다)가 모텔에서 노는 장면은 너무 (평소) 저같이 나와서 볼 때마다 움찔움찔한다”며 웃었다.

방민아 "점점 눈물 없어졌죠. 어차피 내일도 힘들 테니까"

그는 연예계에 갓 뛰어든 자신의 열여덟 시절도 떠올렸다. “강이와 비슷했어요. 실수투성이고 후회 속에 살았고 아팠던 것 같아요. 그룹생활이 어려웠던 게 아니라 저라는 사람이 학교를 벗어나 다른 사회를 만난 거잖아요. 열여덟살이니까, 벼랑 끝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그렇다고 앞으로도 나갈 수 없이 위태위태했죠. 사람은 자기가 아는 지식, 아는 것만큼만 할 수 있는 거니까요.”

영화 '최선의 삶'. [사진 엣나인필름]

영화 '최선의 삶'. [사진 엣나인필름]

예능에서 누구보다 씩씩하지만, 눈물 많기로도 유명했던 그다. “20대 중반까지도 과도기였다”는 그는 “어렸을 땐 눈물이 많았지만, 점점 울 일이 없어지더라. 어차피 내일도 힘들 테니까 이 정돈 괜찮다며 넘어가게 됐다”고 했다.

강이의 숨 가쁜 ‘최선’의 선택들을 지켜보며 ‘최선’의 의미도 되새기게 됐다. “최선은 최고가 아니잖아요. 매번 최고이기 어렵고 그렇다고 포기하기엔 내일도 살아야죠. 오늘 하루를 힘겹게 버텼더라도 그게 나의 최선이면 나쁘지 않았다. 이번 영화 하면서 저를 다독인 최선의 의미죠. 20대 초엔 저의 최선이 최고였고 욕심냈지만 지금은 달라요. 최고는 싫어요. 생각만 해도 피곤해요.”

방민아 "꿈 아닌 일로 생각하니 더 즐기게 됐죠"

영화 '최선의 삶'. [사진 엣나인필름]

영화 '최선의 삶'. [사진 엣나인필름]

그에게는 연기도, 가수 생활도 “직장이자, 삶”이라 했다. “미워도 싫어도 내 일이죠. 어릴 땐 나의 열정으로 다 될 것만 같은 꿈으로 봤는데 그러면 아주 위험한 것 같아요. 나보다 잘하는 사람은 많죠. 무너지기 쉽더라고요. 꿈이 아닌 일로 생각하니까 더 즐길 수 있게 됐고 더 지키고 싶어졌어요.”

‘최선의 삶’을 “자신이 강이였고, 또 강이가 아니었던 사람들을 생각하며 찍었다”고 했다. “저는 영화 보면서 위로받았거든요. 가끔 ‘괜찮아, 잘 될 거야’란 말이 위로가 안 될 때가 있잖아요. 이 영화는 강이가 ‘너도 그랬어? 나도 그랬는데 힘들었겠다. 얼마큼 힘들었어?’ 물어보는 것 같았거든요. 강이는 걱정하지 마시고 그런 위로를 가져가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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