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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밑 외교' 하라고 줬는데..대사 사모 회비로 썼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외교관들이 해외 주요 인사와 물밑 접촉을 하거나 인맥을 쌓는 데 쓰라고 편성된 '외교 네트워크 구축비'가 주재국 대사 부인의 모임 회비 등에 사용됐다는 지적이 나왔다. 공관 직원들이 법인카드가 아닌 개인카드로 식사비 등을 결제한 뒤 현금으로 돌려받아 지침 위반 소지가 있는 사례도 다수 발견됐다.

외교부 청사. 연합뉴스.

외교부 청사. 연합뉴스.

"목적 외 사용 31곳 달해"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이태규 국민의당 의원실은 3일 해외 공관 39곳의 외교네트워크 구축비 집행 현황을 분석해 공개했다. 지난해 1월부터 지난 7월까지 19개월 동안이 분석 대상이었다.

이태규 의원실, 해외 공관 예산 분석 #"외교 네트워크 구축비, 오집행 일상"

이 의원실에 따르면 배우자의 모임 회비(5곳), 행사비용 전용(16곳), 도서ㆍ화환 구매 등(10곳) 네트워크 구축비를 목적 이외에 사용한 공관이 31곳에 달했다. 이 의원실 측은 "대사가 동행하지 않고, 민간인 신분인 대사 부인만 참석하는 모임의 회비도 네트워크 구축비로 냈다"고 지적했다. 외교부는 이에 대해 "지적을 받은 공관에 대한 추가 조사가 필요하겠지만 현지 배우자회에서 외교 활동을 위해 썼다면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다"는 입장이다.

법인카드가 없거나 특정 카드의 결제가 안 된다는 이유 등으로 개인카드로 밥값 등 외교활동 관련 비용을 결제한 뒤 현금으로 돌려받는 사례도 다수 적발됐다. 주미국 한국대사관(대사 이수혁)이 지난해부터 두 차례에 걸쳐 대사 배우자의 모임 회비 납부에 네트워크 구축비를 사용한 게 대표적이다. 직원들이 법인카드가 아닌 개인카드로 식사 등 외교활동을 한 뒤 네트워크 구축비에서 돈을 받은 액수도 지난해 1만 136달러(한화 약 1172만원), 올해는 지난 7월까지 4373달러(한화 약 494만원)에 달했다.

모두 규정 위반 소지가 있는데, 개인카드 결제 후 현금 환급 액수가 총 집행액 대비 20%가 넘는 공관만 추려도 9곳에 달했다고 이 의원실은 밝혔다. 외교부 또한 "예외적인 상황에서 개인 카드를 사용한 뒤 환급받을 수는 있어도, 네트워크 구축비의 상당 부분이 카드 사용 규칙을 어겼을 경우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자체 감사를 진행 중이다.

이수혁 주미대사. 연합뉴스.

이수혁 주미대사. 연합뉴스.

해마다 예산 줄지만..."일상적 오집행 반복"

외교부에 따르면 해외 공관의 활동비는 공개 활동을 위한 '주요 행사비', 비공개 접촉을 위한 '네트워크 구축비', 기타 일반적인 공관 업무에 들어가는 '기본경비 활동비' 등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네트워크 구축비와 관련해 외교부는 외교 정보 수집 등 목적에 부합하고 대외적으로 보안이 유지돼야 하는 비공개 활동에 사용토록 하고 있다.

네트워크 구축비가 해외 인사 물밑 접촉을 통한 외교 인맥 형성이라는 원래 목적과 달리 사실상 외교관들의 쌈짓돈으로 사용된다는 지적이 매년 반복되면서, 관련 예산은 매년 줄고 있다. 지난 2018년 약 78억원, 2019년 약 67억원에서, 지난해엔 약 49억원 규모로 줄었다. 그런데도 해외 공관에선 기준에 맞지 않는 지출을 일삼고 있는 셈이다. 이태규 의원은 "보안이 필요한 긴요한 외교활동을 위해 쓰일 예산이 일상적으로 잘못 사용되고 있다"며 "엄중한 감사와 계도를 통해 국민 혈세 누수를 막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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