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언의 '더 모닝'] 국회가 폭력 조직인가요? 왜 '탈퇴'를 안 시켜주죠?

중앙일보

입력 2021.09.03 08:12

안녕하세요? 오늘은 의원직 사퇴를 선언하고 사직서를 제출한 윤희숙 의원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 [중앙포토]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 [중앙포토]

영화 ‘영웅본색’의 비극적 반전은 위조지폐 제조 단체의 ‘넘버 투’였던 송자호(적룡 분)가 교도소에서 출소한 뒤 조직과의 인연을 끊고 새 삶을 찾는 데서 시작합니다. 택시기사가 된 그를 조직이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그의 자리를 꿰찬 새 ‘넘버 투’가 송자호를 협박(경찰관인 그의 동생에 대한 위해를 암시)해 조직으로 끌어들입니다. 새 조직 관리자로서의 힘을 과시하고, 그를 이용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한국 영화 ‘해바라기’에도 출소 후 ‘차카게 살기’로 마음먹은 깡패 태식(김래원 분)에 불편과 불안을 느끼는 ‘조직’이 등장합니다. 태식은 신체 훼손을 감내하며 ‘평화 의지’를 드러냈지만, 조직은 집요하게 그를 괴롭힙니다. 결국 태식의 주변 사람들이 죽거나 다치게 되고 그는 “꼭 그렇게 다 가져가야만 했냐”고 외치며 홀로 조직에 맞섭니다. 영화는 비극적 파국으로 끝을 맺습니다.

조직 폭력배 영화에서 이탈자 괴롭힘은 흔한 소재입니다. “너만 깨끗해지겠다는 거냐”는 힐난, “결국 돌아오게 된다”는 비아냥이 대사로 흐릅니다. 마피아 영화 ‘22블렛’에서 어둠의 세계에서 벗어나려는 주인공(장 르노 분)에게 조직원이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다르다고 생각해? 더 낫다고 생각하나? 우린 똑같은 부류지.”

현실 세계에서도 깡패 조직이나 불량 모임에서는 ‘탈퇴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습니다. ‘탈퇴한 선배 찾아가 집단 폭행, 경주 조폭 무더기 검거.’ 올해 5월 한 지방지 기사의 제목입니다. ‘조직을 떠나? 탈퇴 의사 밝히자 집단 폭행한 군산 조폭들.’ 지난해에 나온 기사의 제목입니다. 인터넷 검색을 하면 같은 부류의 기사가 무수히 나옵니다. 학교의 일진 조직이나 대학교의 운동부에서도 이탈자에 대한 집단적 괴롭힘이 꾸준히 발생합니다.

도대체 왜 그럴까요? ‘패밀리 정신’ 이 무너질지 모른다는 불안감, 혼자만 깨끗한 척한다고 보는 삐뚤어진 마음, 악행의 책임을 나누는 분모(n) 감소의 현실. 이런 것들이 답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선량(選良)의 모임인 국회에 대단히 불경스럽지만 윤희숙 의원 문제를 보면 폭력 조직이 떠오릅니다. 가족의 행위에 도덕적 책임을 지는 뜻으로 사표를 내고 떠나겠다는데 “그건 곤란하다”고 합니다. 의원직 사퇴를 본인과 가족에 대한 부동산 투기 의혹 수사를 피하는 방패로  쓰려는 것도 아닌데 그럽니다. 윤 의원은 공수처든 경찰이든 수사를 하면 성실히 응하겠다고 말했습니다. 평안 감사도 제 싫으면 그만이고, 헌법에 엄연히 직업 선택의 자유가 쓰여 있는데도 마음대로 그만둘 수가 없습니다. 심지어 의원회관에서 짐을 뺐는데도 “누구 맘대로 집으로 가냐”고 합니다.

‘네가 그러면 더 큰 의혹을 받는 의원들은 어쩌라는 것이냐’ 는, 여권 의원들의 불편한 심기가 드러난 것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윤 의원의 사퇴 결심을 비난하는 범여권에는 형사적 문제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거나 1심에서 의원직 상실 범위에 속하는 형을 받은 의원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버젓이 의정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일부 여당 의원은 윤 의원에게 탈당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나가면 이 구역에서 완전히 떠나라”는 마피아 조직원의 대사를 듣는 듯합니다. 종종 현실이 더 영화 같습니다.

윤 의원 사퇴 문제에 대한 여당 의원들의 생각을 짚은 기사를 보시죠. 의견이 여러 갈래라고 합니다. 이것이 그렇게 어렵고 복잡한 일인가요?

당적 두고 의원만 사퇴…‘윤희숙 배수진’에 與 스텝 꼬인 이유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이 제출한 국회의원 사직안을 바라보는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의 속내는 복잡하다. 윤 의원의 사퇴 선언 배경이 된 부친의 땅 투기 의혹을 맹렬히 비판해왔고 범여권 의석수만으로 가결(재적의원 과반 출석에 출석의원 과반 찬성)이 가능하지만, 막상 사무실 짐까지 빼며 배수진을 친 윤 의원 앞에선 의견이 갈라진다.

①“탈당 먼저”…명분론=민주당이 국민의힘과 극한 대치 중이라지만, 동료 의원의 사직안 처리를 위해선 우선 명분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다. 지도부 관계자는 “사직안 처리를 위해선 윤 의원의 탈당이 우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내 자체 무혐의’를 받은 윤 의원이 당적을 유지하는 상황에서 민주당이 ‘중징계’인 의원직 박탈에 나서기 부담스럽다는 우려다.

윤 의원은 지난달 국민권익위 조사 결과 땅 투기 의혹(국민의힘 총 12명)을 받았지만, 국민의힘 지도부는 윤 의원을 포함한 6명에 대해선 소명 절차가 완료됐다고 판단하고 탈당 권유 등 징계 절차를 밟지 않았다. 반면 민주당에선 지난 6월 탈당 권유를 받았던 자당 의원 7명이 아직 버티고 있다.

윤 의원은 당적은 유지한 채 의원직은 버리겠다는 의사가 분명하다. 사직안 제출 이틀 후 기자회견(지난달 27일)에서 “제가 우리나라 정치에서 얼마나 특이한 인물인지 안다. 제 방식으로 책임지고 제 기준이라고 생각해달라”고 말했다. ‘왜 탈당을 하지 않느냐’는 물음에 대한 답이었다.

이에 민주당에선 “민주당에 떠넘길 일이 아니라, 국민의힘이 책임 있게 처리하면 된다”(2일, 윤건영 의원)는 주장이 나온다. 사직안 처리를 아예 반대하는 이도 있다. 강병원 최고위원은 “윤 의원 사퇴쇼에 들러리로 동참하지 않겠다. 사퇴안을 부결시키는 데 앞장서겠다”(지난달 27일)고 말했다.

②“좌고우면 말라”…강경론=이런 분위기에 대한 반격도 있다. “윤희숙 사퇴안 처리를 놓고 좌고우면하지 말라”(김두관 의원)는 주장이다. 대선 주자인 그는 지난달 31일 페이스북에 “도대체 민주당이 윤희숙 의원을 왜 비호하냐. 윤희숙의 협박에 왜 안절부절못하냐”라며 이같이 썼다.

강경론은 윤 의원 부친 투기 의혹이 실재하며, 윤 의원이 한국개발연구원(KDI) 재직 시절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공모한 의혹이 있다는 판단에서 나온다. 윤 의원이 “우스꽝스러운 조사”(지난달 25일)라고 단호한 입장을 밝혔다가 이틀 후 “투기 의혹으로 비칠 여지가 있다”고 한발 물러서 공세에 빌미를 주기도 했다.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민주당 의원들은 자신이 직접 책임 있는 사유에도 단 한 명도 사퇴 의사를 밝힌 적이 없고, 자진 탈당한 사람도 없었다”며 민주당을 ‘내로남불’로 몰았지만 김 의원은 “민주당 국회의원과 윤희숙 의원은 차원이 다르다. 단순한 농지법 위반과 수십억대 부동산 기획 투기를 똑같은 기준으로 처리할 수는 없다”고 반박했다.

수도권 재선 의원도 “우리는 ‘탈당 권유’라도 했는데, 윤 의원은 혼자 당당하지 않나”라며 “내로남불 역풍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윤 의원 사퇴 처리를 주장하는 또 다른 수도권 재선 의원은 “우리가 그간 윤 의원을 비판해온 게 있는데, 만일 본회의에서 부결된다면 오히려 ‘국회의원 제 식구 감싸기’로 싸잡힐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③“의원들이 판단할 것”…자율투표=당내 의견이 갈라진 상황에서, 사직안 처리 열쇠를 쥔 윤호중 원내대표는 “처리 자체를 반대할 사안이 아니다”라며 “야당이 적극적으로 처리하겠다고 하면 저희는 거기에 따르겠다는 입장”(1일 라디오)이라고 말했다. 또 “(윤 의원이) 피해자 코스프레를 해온 데 대한 의원들의 판단이 있을 것”이라며 당론 없이 의원 자율투표에 맡긴다는 방침도 밝혔다.

송영길 대표도 유보적 입장을 드래냈다. 지난달 26일 “당에서 탈당을 권유한 것도 아닌데 자존심 상한다고 탈당을 한다는 것은 누가 봐도 과잉 행동 아닌가”라고 말한 뒤 별다른 입장을 내놓고 있진 않다. 고용진 수석대변인은 “우리가 사퇴하라 한 적도 없다”(지난달 30일), “소속 정당에서 대표가 국회의장에게 처리해달라 요청하면 의장이 (상정 여부를) 정하실 것”(1일)이라고만 했다. 송 대표와 가까운 한 수도권 의원은 “실체적 진실 규명도 없이 국민들의 선택을 져버리겠다는 윤 의원의 무책임한 행동 때문에 국회 전체가 우습게 됐다”며 “선명한 방향을 내놓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국회 안팎에선 박병석 국회의장이 상정 자체를 보류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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