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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정치 선언한 2030 노조 “반미 포스터 왜 붙이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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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윤석만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노동현장 새 바람 MZ세대 노조

지난달 15일 서울교통공사의 올바른노조는 MZ세대답게 스마트폰 어플을 통한 가상공간인 ‘이프랜드’에서 출범식을 열었다. 발표하고 있는 송시영 위원장. [이프랜드 캡처]

지난달 15일 서울교통공사의 올바른노조는 MZ세대답게 스마트폰 어플을 통한 가상공간인 ‘이프랜드’에서 출범식을 열었다. 발표하고 있는 송시영 위원장. [이프랜드 캡처]

“태극기 부대 같은 놈” “너희 친일파 집안이지?”

서울교통공사의 송시영(29) 올바른노동조합 위원장이 노조 설립 당시 들었던 말이다. 지난달 15일 MZ세대 400여 명을 주축으로 출범한 올바른노조는 ‘공정’을 핵심 가치로 내세웠다. 탈정치를 선언하고 노동자 본연의 목소리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그러자 기존 노조원들로부터 원성이 터져나왔다. 공사는 전체 임직원(1만6860명) 중 65%가 민주노총 소속 조합원이다. 송 위원장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지난달 15일 서울교통공사의 올바른노조는 MZ세대답게 스마트폰 어플을 통한 가상공간인 ‘이프랜드’에서 출범식을 열었다. 이를 바라보는 조합원들. [이프랜드 캡처]

지난달 15일 서울교통공사의 올바른노조는 MZ세대답게 스마트폰 어플을 통한 가상공간인 ‘이프랜드’에서 출범식을 열었다. 이를 바라보는 조합원들. [이프랜드 캡처]

기존 노조원들의 반응은.
“응원 목소리도 있었지만, ‘변태 일베’ ‘사측의 개’라는 표현부터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모욕적 언사가 많았다. 우리 세대의 목소리를 내려고 했을 뿐인데, 이렇게 욕먹을 일인가 싶었다. 원래는 노조의 ‘노’ 자도 몰랐다. 2019년 입사 때까지 평범한 공시생이었다. 서너 시간 자면서 공부만 했고 자격증 4개를 땄다. 젊은 노조원 대부분이 그렇다.”
노조 설립을 결정한 계기는.
“공사 합격에 보통 2~3년, 길게는 5년도 걸린다. 입사해 보니 불공정한 정규직 전환, 친인척 채용 비리가 보였다. 밤낮없이 열심히 공부해도 취업하기 힘든데, 원칙 없이 정규직화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했다. 새로운 노조 설립에 많은 젊은이들이 공감했고, 누군가는 해야 될 일이라 나섰다.”

서울교통공사 ‘올바른노조’ 출발

행사가 끝난 후엔 조합원들이 무대에 함께 올라와 춤을 췄다. [이프랜드 캡처]

행사가 끝난 후엔 조합원들이 무대에 함께 올라와 춤을 췄다. [이프랜드 캡처]

감사원에 따르면 서울교통공사는 2018년 3월 무기계약직 1285명을 정규직으로 일괄 전환했다. 이중 192명이 기존 직원의 친인척인 것으로 밝혀졌다. 친인척 직원의 추천을 받아 면접처럼 간소한 절차만 거치거나, 사망 직원의 유가족이란 이유로 평가 과정 없이 채용됐다. 감사원은 “일반직과 같은 공개경쟁을 통하지 않고 부적격자인 경우도 상당수 포함돼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지방공기업법(63조)에 따르면 “공사의 직원은 시험성적, 근무성적, 그 밖의 능력 실증에 따라 임용”하고 “직원을 채용할 때는 공개경쟁시험 채용을 원칙”으로 해야 한다. 아울러 “임직원의 가족이거나 이해관계가 있는 등 공정성을 해칠 우려가 있는 사람”을 우대해선 안 된다. “무분별한 정규직 전환은 이 법에 위배된다”는 것이 올바른노조의 주장이다.

MZ세대는 왜 불공정에 민감한가.
“요즘 취업이 얼마나 어려운지 기성세대는 모른다. 열심히 공부해도 취업문 자체가 좁다 보니 경쟁이 치열하다. 이런 상황에서 누군가 편법을 쓰거나 혜택을 받는다는 건 젊은 세대 입장에선 받아들이기 힘들다. 원칙과 절차에 맞는 투명한 경쟁이어야만 결과에 승복할 수 있다. 오히려 불공정에 둔감한 게 이상한 것 아닌가.”
정치에는 분명한 선을 그었다.
“7월쯤 기존 노조가 한미연합훈련을 반대하는 포스터를 곳곳에 붙였다. 역사에서 근무하다 보면 이런 걸 왜 붙이냐고 항의하는 승객들이 많다. 승강장과 대합실에 붙은 포스터를 떼러 다니면서 노조가 왜 정치적 행보를 보이는지 의아했다. 백번 천번 이해하려 해도 이해되지 않는다.”

20·30대가 조합원의 90% 이상인 올바른노조는 MZ세대답게 3차원 가상공간인 ‘메타버스’에서 출범식을 개최했다. 스마트폰 앱 ‘이프랜드(ifland)’를 이용해 무대와 객석을 만들고, 송 위원장이 전광판에 프리젠테이션 자료를 띄어놓고 직접 발표했다. 참석자들은 전통 한복에 갓을 쓰고 오거나, 카우보이·야구선수 복장을 하는 등 각자의 개성을 뽐냈다.

MZ노조의 특징

MZ노조의 특징

MZ노조 바람은 사회 전반에서 불고 있다. 특히 생산직이 노조의 중심인 제조업계도 MZ세대가 주도하는 사무직 노조가 생겨나고 있다. 이들은 대체로 민주노총 등 거대 노조 활동에 대한 불만에서 시작됐다. 정치적 편향성을 지양하며 노동자 권익이라는 본질에 집중한다. 지난 2월 LG전자 사람중심 사무직 노조, 4월 현대자동차그룹 인재존중 사무연구직 노조와 금호타이어 사무직 노조 등이 연이어 출범했다.

MZ노조는 공정과 투명성을 중시한다. 임금도 무조건 ‘많이 달라’가 아니라 ‘기준이 뭐냐’다. 지난 1월 SK하이닉스의 성과급 논란이 일자 4년차 직원이 이석희 대표를 포함한 임직원 2만8000여 명에게 항의성 메일을 보냈다. 20·30대 직원들이 동조하며 사회적 이슈가 되자 최태원 회장이 급여를 반납하고 사측이 임금 개선안을 내놓으며 일단락 됐다.

최근엔 교육계도 젊은 교사 중심의 MZ노조가 나오고 있다. 지난 3월 출범한 초등교사노조의 정온(29) 위원장은 “3500명의 조합원 중 20·30대가 대략 70%”라고 밝혔다. 정 위원장은 “MZ세대는 잘못된 것을 잘못이라고 확실히 인지하고 말한다”며 “구조적 문제로 표현이 어려울 때도 있지만 MZ노조의 탄생은 조금씩 변화가 일고 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와 성격이 다르다.
“교사관은 관점에 따라 성직관, 전문직관, 노동직관으로 나눈다. 성직관은 교사를 제2의 부모처럼 여기고 희생과 헌신을 강조한다. 그러나 현대사회의 공교육은 정확한 지식과 적합한 교육방법론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 교육전문가로서의 역할과 권익을 보호하는 게 우리 노조의 목표다. 반면 노동직관은 교사를 말 그대로 그냥 노동자로 보는 것이다.”
정치적 이슈엔 목소리를 아끼는 것 같다.
“우리의 목표는 교사의 전문성 회복이다. 교육과 직접 관련된 이슈라면 정치적 목소리를 낼 수 있다. 예를 들어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외국 교사가 자유롭게 학교를 오가며 수업한다면 반대 입장을 밝힐 거다. 하지만 교육과 무관한 FTA 자체는 우리 목소리가 필요할 것 같지 않다.” (2007년 전교조는 한미FTA 반대집회를 열고 이와 관련한 계기수업을 실시해 논란이 됐다)

이처럼 MZ노조의 가장 큰 특징은 ‘탈이념’이다. 민주노총·전교조 등이 보이는 정치적 집단행동과 거리가 멀다. 초등교사노조가 속해 있는 교사노동조합연맹(교사노조연맹)도 비슷하다. 2016년 전교조 출신 80여 명이 전교조의 정파성과 비민주성을 비판하며 창립한 서울교사노조를 시작으로 지역별 노조가 만들어졌고, 이들이 모여 2017년 교사노조연맹을 출범했다.

교사노조연맹의 장경주 대변인은 “일상과 멀어진 거대 이슈보다 생활밀착형 이슈에 집중한다”며 “독립적인 여러 노조의 의견을 반영하는 실용적 연합체로 중앙집권보다 분권형 의사결정을 내린다”고 했다. 그 때문에 교사노조는 정치적 목소리를 높이기보다 행정업무 경감, 수당제도 개선 등 현장 의견에 집중한다.

장 대변인은 “8월 기준 회원 수가 3만6000명으로 4만5000명 정도인 전교조와 차이가 크지 않다”며 “전교조는 50대가 주축이지만 우리는 절반 이상이 20·30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교조에 공감하지 못하는 젊은 세대가 교사노조로 온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2017년 민주노총의 비정규직 투쟁에 전교조가 동참하자 젊은 교사들의 탈퇴가 이어졌다.

회사 제안도 합리적이면 수용

김달효 동아대 교수의 논문 ‘중등 교원양성기관 학생들의 교원단체에 관한 인식 분석(2016)’에 따르면 교육대학원생들은 전교조에 가입하지 않으려는 첫 번째 이유로 “너무 급진적이거나 정치적인 경향이 있기 때문”(44.8%)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교원단체인 한국교총에 대해서는 같은 질문에 “잘 모르기 때문”(47.6%)이라고 답했다. 김 교수는 “(예비 교사들 중) 교원단체에 가입하지 않으려는 비율이 다수를 차지한다”고 설명했다.

김중백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MZ노조의 가장 큰 특징을 유연성이라고 정의했다. “원하는 것은 똑 부러지게 요구하되, 회사의 안이라도 합리적이면 ‘쿨’하게 수긍하는 열린 자세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젊은 세대는 투쟁과 총파업 등을 내세우는 강성 노조에 부담을 느낀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실제로 586세대가 주도해온 그동안의 노조 활동은 강성 이미지가 컸다. 사측과 원만한 합의도 드물었다. 2019년 세계경제포럼(WEF)의 노사 협력 지표에 따르면 한국은 130위다. 이웃나라인 일본(5위)·대만(12위) 등에 크게 뒤처진다. 대신 브라질(128위)·남아프리카공화국(139위)과 비슷하다. 공통점은 세 나라 모두 뒤늦은 민주화와 함께 전투적 노동운동을 겪었다는 점이다.

오늘 오후 5시 중앙일보 유튜브 ‘윤석만의 뉴스뻥 Live’에서는 송시영 위원장이 출연해 MZ노조 설립 당시 겪었던 기존 노조원들의 방해와 향후 활동 목표를 상세히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