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장세정의 직격인터뷰

"노무현 못 이룬 사학법 개정, 문재인 한풀이 완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6면

장세정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2003년 초 참여정부 출범 당시 노무현 대통령 정부의 대통령 비서실에 민정수석으로 임명돼 참여한 문재인 현 대통령. 문재인 정부는 '노무현 2.0 정부'로 불린다. [중앙포토]

2003년 초 참여정부 출범 당시 노무현 대통령 정부의 대통령 비서실에 민정수석으로 임명돼 참여한 문재인 현 대통령. 문재인 정부는 '노무현 2.0 정부'로 불린다. [중앙포토]

세간의 시선이 거대 여당의 언론중재법 강행 처리 여부에 쏠려 있던 와중에 사립학교법(사학법)과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 법안 등이 충분한 논의도 없이 슬그머니 국회에서 처리됐다. 민주당은 국내외에서 비난이 빗발치자 언론중재법 강행 처리를 한 달 늦추는 시늉을 하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숙원이던 사학법 처리라는 과실을 챙겼다. 보수 교육계에서는 여당의 성동격서(聲東擊西)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는 탄식이 나온다.

 하윤수(59)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 회장은 사학법 처리를 막기 위해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그는 문재인 정부 들어서 1인 시위를 다섯 차례나 벌이는 등 이 정부의 교육정책에 저항해온 대표적 교육계 인사다. 1948년 이후 대한민국의 성공 역사를 만드는 데 기여한 교육의 다원성과 자율성을 급진 이념에 경도된 좌파 세력이 교육 개혁을 빌미로 내세워 파괴하려 든다고 판단해서다.
 교육계와 야당의 반대를 묵살하고 거대 여당이 사학법을 강행 처리한 지난달 31일 하 회장을 만나 개정 사학법의 독소 조항, 앞으로 초래될 부작용 등에 대한 견해를 들었다. 경성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동아대에서 법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하 회장은 부산교대 총장을 역임했다. 2016년 6월 교총 회장에 선출됐고 2019년에 연임에 성공했다.

하윤수 교총 회장이 지난 31일 서울 교총 회관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하윤수 교총 회장이 지난 31일 서울 교총 회관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하윤수 교총 회장이 사학법 개악 저지를 외치며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교총 제공]

하윤수 교총 회장이 사학법 개악 저지를 외치며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교총 제공]

 -개정 사학법에 반대하는 이유는.
 "간접적으로 국민 세금이 들어가 있는 금융회사의 대출을 받아 사업하던 민간기업을 정부가 갑자기 국유화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사립학교 교원 월급을 국가와 지자체가 절반씩 예산으로 지원하는데, 돈을 줬으니 인사권을 맘대로 하겠다는 논리다. 교육은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인데 임기 4년짜리 국회의원들이 100년 교육을 마음대로 하면 되겠나."
 -세금이 들어갔으니 발언권이 있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사립학교를 정부가 통째로 사 가서 차라리 모두 국공립으로 만들든지 하라는 거다. 대한민국이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로 도약하는 과정에서 사학이 중추적 역할을 해냈다. 그런데 저출산으로 학령인구가 줄어들면서 사학들이 영세해지니까 아예 없애겠다고 한다. 세상에 이런 나라가 어디 있나. 세금이 투입됐으면 법에 따라 사학 재정을 투명하게 유도하고, 인사도 투명하게 하면 될 일이다. 인사 비리가 드러난 경기도 평택의 한 사립학교는 사립초중고법인협의회가 제명 처리해 사학의 자정 능력이 있음을 보여줬다."
 -구체적으로 어떤 조항이 문제인가.
 "사학 자율권의 핵심은 인사권과 재정권이다. 일부 '비리 사학'은 마땅히 일벌백계(一罰百戒)해야겠지만, 다수의 '건전 사학'은 자율 운영을 더 육성·지원해줘야 한다. 이번 개정법은 사립학교의 신규 교원 위탁 채용을 강제했고, 학교운영위원회를 자문기구에서 심의기구로 변경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대한민국 교육의 중요한 축인 사학 운영의 자율권을 근본적으로 침해하는 것이자 사학을 공영화하려는 속셈이 엿보인다."
 -지금도 사학의 67%가 위탁해 선발하는데.
 "사학마다 설립 목적이 있는데 다양한 설립 이념이 사학의 특수성이다. 기독교·불교 등 종교 이념의 다양성이 녹아있는 게 사립학교법의 본질이다. 1차 필기시험도 학교의 설립 이념에 맞는 사람을 선발하는 것이 필요하니 다양성을 인정해줘야 한다. 그 과정에서 공정성에 문제가 있으면 지도·감독하고, 법을 어기면 처벌하면 된다."

거대 여당이 교육계의 반대에도 사립학교 통제를 강화하는 입법을 강행해 논란이 커지고 있다.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왼쪽 둘째)과 함께 공식 행사에 참석한 이재정 경기교육감(왼쪽 셋째). [중앙포토]

거대 여당이 교육계의 반대에도 사립학교 통제를 강화하는 입법을 강행해 논란이 커지고 있다.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왼쪽 둘째)과 함께 공식 행사에 참석한 이재정 경기교육감(왼쪽 셋째). [중앙포토]

 -경기교육청은 면접도 직접 본다던데.
 "1차 필기시험, 2차 실기 및 면접까지 모든 과정을 이재정 교육감이 권한을 행사해 최종 합격자까지 결정한 뒤 학교에 통보하겠다고 한다. 경기교육청의 경우 사학들이 자체 채용하면 교육청이 인건비와 보조금을 지원 안 하겠다고 협박한다. 돈을 무기로 선택권을 사실상 없앤 거다. 교원 인사권을 강탈한 행위로 사립학교법에 정면으로 어긋난다. 사학의 건학 이념에 맞는 교육 가치관을 가진 사람을 뽑을 수 없고, 좌파 교육감의 입맛에 맞는 정책을 달달 외운 사람만 뽑히게 된다. 사학의 자율성을 거세하는 점령군과 다름없는 횡포다."
 -학교운영위를 심의기구로 바꾸면 부작용이 우려되나.
 "학교법인의 이사회가 무력화되고 무용지물이 된다. 학교법인 제도를 둔 사립학교 법체계를 갈아엎는 행태다. 입법을 동원한 사립학교 강탈이고 위헌이다. 학교법인의 가장 기본적이고 본질적 권리능력인 예·결산권, 교육과정 운영권, 교과서 선정권, 학교운영 지원비 조성 및 사용권 등 이사회의 본질적 권한이 폐기된다. 특정 노조와 학부모로 구성된 학교운영위에서 심의 결정하면 이사회는 이를 수정하기 어렵다. 학교운영위 구성 단계부터 특정 세력의 장악이 벌어져 법인 이사회와의 큰 갈등이 우려된다."
 -여당은 사학 비리 근절을 명분으로 외친다.
 "이미 사립학교 교원의 임용은 법적으로 공개 채용하게 돼 있고, 사학의 비리에 대해 조사 및 처벌하는 규정이 있다. 그동안 집요하게 비리 집단으로 매도해온 사학을 개혁의 대상으로 공격해 전교조 등 좌파 진영의 지지를 얻으려는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본다. 하지만 헌법에 보장된 사학의 특수성과 자주성을 훼손하는 행위는 정당화될 수 없다."
 -사학의 자율성이 침해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사학의 건학 이념에 따른 특화된 교육이 실종되고 결과적으로 뜻있는 분들이나 단체가 사학 건립에 나서지 않을 것이다. 이제는 민사고·상산고 같은 사학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학생과 학부모의 교육 및 학교 선택권이 사라져 다양한 교육기관의 공존이 실종되고 사실상 공영화되면 사학의 존립 의의를 상실하게 될 것이다. 우수한 사학들과 공립학교들의 선의의 경쟁, 그리고 선순환 구조가 사라질 것이다. 다양성이 실종되고 획일적 교육으로 변질될 우려도 높다."
 -해외 선진국들도 사학에 개입하나.
 "그런 사례를 못 봤다. 미국의 사립학교는 법인설립법에 의해 인가되는 법인의 법적 지위를 가진다. 연방이든, 주 정부든 통일된 사립학교 관련법이 없어서 정부가 사립학교 운영에 관여하지 않는다. 영국도 정부가 사립학교 운영에 간섭하지 않는다. 일본의 경우 교원 자격을 국가가 관리하지만, 학교법인이 자체적으로 정관이 정하는 바에 따라 취업규칙 등에 의해 인사관리를 자유롭게 진행한다."
 -앞으로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사학법 개악은 헌법 31조 4항(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 및 대학의 자율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 위반이다. 직접적 이해당사자인 사학법인들(전국에 약 900개)이 개정법에 대해 법원에 효력정지 가처분을 신청하고 조만간 헌법소원을 제기할 것으로 안다. 교총은 사학들을 위해 법리 검토를 지원할 것이다. 교육 법정주의의 근간을 훼손하는 사학 관계법의 근본적 재검토와 개정 활동을 전개할 예정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 문재인 정부는 '노무현 2.0 정부'로 불린다. [JTBC '썰전' 방송 캡처]

문재인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 문재인 정부는 '노무현 2.0 정부'로 불린다. [JTBC '썰전' 방송 캡처]

 -앞서 참여정부 때 사학법 논란이 있었다.
 "김대중 정부 때까지는 사학이 논쟁 대상이 아니었다. 노무현 정권 시절 전교조 탄압 시비가 일면서 사학법 파동이 벌어졌다. 좌파는 사학이 자기들 정권과는 상당히 거리가 멀다고 여긴다. 당시 야당의 강력한 반대로 참여정부는 사학을 장악하지 못했다. 예컨대 학교운영위의 심의기구화는 참여정부 때 추진하다 헌법에 위반된다는 야당의 비판에 막혀 접었다. '노무현 2.0 정부'로 불리는 문재인 정권이 사학의 권한을 송두리째 빼앗아 노무현이 못 이룬 사학 장악을 이번에 한풀이하듯 완수한 셈이다. 노무현 정권 때 재벌·강남·검찰·언론·서울대를 '한국사회 5적(敵)'으로 매도했는데 문 정부는 사학을 주요 개혁 대상으로 도마 위에 다시 올렸다. 민주성과 공공성을 앞세워 '유치원 3법'을 강행하고 마지막으로 사립학교법을 이번에 개악했다."
 -이런 입법 폭주로 대한민국이 한 단계 발전할까, 퇴보할까.
 "교육은 시소처럼 자율성·수월성과 공공성·민주성이 균형을 이뤄야 하는데, 문 정권은 어찌 된 셈인지 공공성만 강조하다 균형감을 상실했다. 지금 이 나라는 개미에게서 더듬이를 뜯어버린 것 같아 교육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방향을 모를 지경이다. 자칫 획일화된 이념에 빠져 교조주의가 만연하면 국가가 전체주의로 갈 우려가 크다. 그럴 경우 하향 평준화가 이뤄지고 창의성이 죽는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경쟁력 있는 교육도 인재도 육성하기 어렵다. 이 정권은 모두가 평등해져 똑같이 나눠 먹고 잘살게 된다고 보는 것 같다. 아무도 경험 못 한 평등한 지상낙원이 펼쳐질지 지켜볼 것이다."

하윤수 교총 회장은 '교육 무너지면 미래 없다'는 책에서 문재인 정부의 교육 파행에 직격탄을 날렸다.

하윤수 교총 회장은 '교육 무너지면 미래 없다'는 책에서 문재인 정부의 교육 파행에 직격탄을 날렸다.

장세정 논설위원

장세정 논설위원

장세정 논설위원의 직격인터뷰에 최지혜 인턴기자가 함께 참여했습니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