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김호동의 실크로드에 길을 묻다

그리스·불교·이슬람 융합…산악에 꽃핀 황금문화

중앙일보

입력 2021.09.03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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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동서문명의 교차로’ 아프간

아프가니스탄은 동서 문명을 잇는 징검다리 였다. 신라 금관과 흡사해 관심을 모은 틸리야 테페 유적의 화려한 금관. 5년 전 한국에도 소개됐다.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아프가니스탄은 동서 문명을 잇는 징검다리 였다. 신라 금관과 흡사해 관심을 모은 틸리야 테페 유적의 화려한 금관. 5년 전 한국에도 소개됐다.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미국이 탈레반과 합의한 대로 지난달 31일 아프가니스탄에서 군대를 완전히 철수했다. 2001년 9·11사태 이후 탈레반 정권이 오사마 빈 라덴을 숨겨주고 있다는 이유로 그해 12월에 침공한 지 꼭 20년 만이다. 오늘날의 아프간 사태는 반세기 전 베트남전과 데자뷔를 이룬다. 아비규환이 된 카불의 모습은 1975년 4월 사이공 함락을 연상케 한다. 예전에 수십 만의 ‘보트 피플’이 생겨났다면 지금은 그에 못지않은 아프간 난민이 발생하고 있다.

아프간에 군대를 보냈다가 손을 뗀 사례는 과거에도 여러 번 있었다. 19세기에 영국은 아프간과 두 차례 전쟁을 치렀다. 인도 식민지를 보호하기 위해 1839~42년, 1878~80년 침공했지만 모두 실패로 끝났다. 20세기에는 소련이 아프간을 공격했다. 두라니(Durrani) 왕조 군주의 피살 이후 들어선 공산정권을 후원할 목적으로 1979년 군대를 파견했다. 하지만 바로 격렬한 반발에 부딪혔다. 각지에서 일어난 ‘무자헤딘’, 즉 성(聖)전사들과 힘겨운 전투를 벌였다. 사망자 100만여 명과 망명 난민 300~400만 명을 낳은 채 소련군은 1989년 철군하고 말았다. 탈레반 정권이 들어선 배경이다.

고대부터 주변 강국 침입 잇따라
‘스위스 치즈’처럼 구멍 많은 지형
통일국가 대신 ‘부족간 할거’ 체제
탈레반 정권 ‘중도노선’ 유지할까

수많은 강대국 거쳐 간 ‘제국의 무덤’

아프간 핫다에서 출토된 것으로 추정되는 5~6세기 무렵의 불두(佛頭). [사진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아프간 핫다에서 출토된 것으로 추정되는 5~6세기 무렵의 불두(佛頭). [사진 메트로폴리탄박물관]

미국은 19세기 이래 아프간에 개입했다가 퇴각한 세 번째 제국이 됐다. 아프간을 ‘제국의 무덤(Graveyard of Empires)’이라 부르는 연유다. 미국이 떠난 아프간은 과거 베트남처럼 통일국가라는 새 역사를 써나갈 수 있을까. 탈레반은 혼란에 종지부를 찍고 아프간인에게 최소한의 안정과 휴식을 줄 수 있을까. 전망은 불투명하다. 이 나라가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 때문이다.

아프간 국토는 우리나라의 6배, 한반도의 3배나 된다. 최근 통계를 믿는다면 인구는 4000만에 가깝다. 아프간 중앙부에는 힌두쿠시라는 거대한 산맥이 동서를 가로지르고 있다. 수많은 험로와 계곡 때문에 지역 간 소통이 매우 어렵다. 카불·쿤두즈·헤라트·칸다하르 같은 대도시들은 독자적 지역권을 이루고 있다. 산지에 흩어진 촌락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생활방식도 갖가지여서 도시민·유목민·촌락민이 뒤섞여 있다. 경제적으로 통합된 단일 시장을 이루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아프간은 다민족 국가다. 파슈툰이란 불리는 집단이 전인구의 40%를 차지하고, 그다음으로 타직이 30%, 하자라가 15%다. 키르기즈·우즈벡·투르크멘·아이막 등 소수 집단도 있다. 종족적으로는 이란계와 투르크계가 혼재한다. 이들 민족은 또다시 수많은 부족으로 나뉘는데, 부족 수령들은 위계적 상하 관계를 인정하지 않고 독자적인 정치세력을 이룬다. 아프간에서는 국회를 ‘지르가(jirga)’라고 한다. 몰이사냥의 둥그런 포위망을 가리키는 몽골어 ‘제르게(jerge)’에서 유래했다. 수령 가운데 상위자 1인을 인정하지 않기에 원형을 이루며 앉았다. 말하자면 족장회의인 셈이다. 이러한 구조적 분권성 때문에 강력한 통일국가가 출현하지 못하고 수많은 외세의 침공을 받게 됐다.

2001년 탈레반이 파괴한 세계문화유산인 바미안 대불. [AFP=연합뉴스]

2001년 탈레반이 파괴한 세계문화유산인 바미안 대불. [AFP=연합뉴스]

아프간은 동서문명의 교차로, 즉 실크로드가 가로지르는 십자로였다. 동남쪽으로는 거대한 인도 대륙이, 북쪽으로는 유목민의 중앙아시아가, 서쪽으로는 서아시아와 그 너머의 지중해가 펼쳐져 있다. 한마디로 교통의 길목이다. 주변 지역에 강력한 제국이 들어서면 이곳부터 장악하려 했다. 고대 페르시아(기원전 550~330)가 그랬고, 이를 무너뜨린 알렉산더 대왕(기원전 356~323)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사망한 뒤 제국은 분열됐지만 아프간 땅에는 셀레우코스와 박트리아 같은 그리스인이 세운 왕조가, 중앙아시아에서 내려온 파르티아인이 왕조가 들어서기도 했다.

아프간에서는 동서문명이 만나 화려한 꽃을 피웠다. 그 찬란한 문화를 보여주는 다양한 유적과 유물이 있다. 그리스 문화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고대 도시 아이 하늠, 수르흐 코탈·핫다·베그람·쇼토락 등에서 발견된 간다라 양식의 불교 유물, 틸리야 테페에서 나온 화려한 황금 장식품은 경탄을 금치 못하게 한다. 2016년 우리나라에도 그 유물을 들여와 특별전을 했는데, 특히 틸리야 테페에서 발견된 황금 금관은 신라 황남대총의 금관과 매우 흡사해 보는 이들의 눈을 의심케 할 정도다.

2001년 탈레반이 파괴한 세계문화유산인 바미안 대불에 3D 영상을 비춘 모습. [중앙포토]

2001년 탈레반이 파괴한 세계문화유산인 바미안 대불에 3D 영상을 비춘 모습. [중앙포토]

서아시아에서 밀려온 세력은 그 뒤로도 끊이지 않았다. 특히 이슬람을 기치로 내세운 아랍 세력이 들어온 뒤 아프간 주민은 새로운 종교로 개종했다. 10세기 이후에는 북방 유목민이 내려오기 시작했다. 가즈나 왕조(975~1187)를 필두로 셀주크와 호레즘 왕국이 차례로 아프간 땅을 석권했다. 마침내 몽골인도 진입했다. 칭기즈칸은 직접 군대를 이끌고 중앙아시아를 거쳐 아프간 중부 힌두쿠시 산맥 자락에 캠프를 치기도 했다. 이후 아프간은 몽골 제국의 일부가 됐다. 몽골이 무너진 뒤에는 티무르 제국이 주인이 됐다. 아프간에 현재 같은 다민족 구도가 형성된 것은 이러한 역사적 배경 때문이다.

바필드(T Barfield) 같은 학자는 아프간의 역사적 특징을 재치 있게 표현했다. 표면이 매끈한 미국식 치즈가 아니라 구멍이 숭숭 뚫린 스위스 치즈 같다고 비유했다. 미국은 여기저기 존재하는 수많은 구멍, 즉 깊은 산악지대에 근거를 둔 수많은 집단의 저항을 꺾기 위해 공격용 헬기와 미사일에 드론까지 동원했지만 별다른 소용이 없었다. 한국전쟁에서처럼 전선을 두고 적과 대치하는 것이 아니라, 아군이 장악한 지역 안에도 수많은 구멍이 있어 항상 위험에 직면해야 했다. 깊은 정글·땅굴 속에 있는 게릴라를 잡지 못해 패배한 베트남 악몽의 재현인 셈이다. 국토 대부분이 사막과 평원인 이라크에 육상군을 거의 투입하지 않고도 어렵지 않게 장악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스토리다.

종교적 극단주의는 또 다른 반발 불러

지난달 31일 미군이 철수한 이후 아프간 카불 공항을 접수한 탈레반군. [EPA=연합뉴스]

지난달 31일 미군이 철수한 이후 아프간 카불 공항을 접수한 탈레반군. [EPA=연합뉴스]

미국의 오산도 컸다. 근대적 군대와 경찰, 공정한 선거, 합리적 행정을 이루면 아프간인이 자발적으로 따를 것으로 생각했다. 중앙집권적 전통이 강한 한국에서는 미국의 전후 처리 방식이 통했지만, 그런 역사적 경험이 부재한 아프간에서는 기대하기 힘든 일이었다. 과거 이곳을 통치한 세력들은 스위스 치즈와 같은 아프간의 구멍을 온존시키면서 자신들은 상위의 포식자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서구제국들은 그렇게 하지 못하고 ‘허수아비’ 정권을 내세우는 편법을 쓸 수밖에 없었다. 외세의 주구(走狗)라는 손가락질을 받는, 결국 정통성을 확보하지 못한 정권에 기댄 셈이다.

미국이 떠난다고 해도 상황이 크게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탈레반이 외세의 앞잡이는 아닐지라도 아프간의 구조적 할거성(割據性)을 극복할 묘안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슬람 종교를 통합 이념으로 내세우겠지만 그것이 과연 성공할지는 미지수다. 과거 바미안 대불(大佛)을 폭파했던 맹신적 극단주의를 되풀이한다면 국제사회가 등을 돌릴 것은 물론 대다수 아프간인도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정권의 정당성을 확보하려고 다소 온건한 정책을 표방할 수 있지만, 오랜 내전 동안 ‘과잉무장’된 집단들이 반발할 경우 탈레반 정권이 과연 중도적 노선을 유지할지도 회의적이다.

오늘날 아프간에는 그리스 비극처럼 파국의 클라이맥스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출구가 보이지 않는 터널 속에서 앞으로도 상당 기간 헤맬지도 모른다. 실크로드의 십자로로서 화려한 문명을 피웠던 땅이 이제는 여러 제국의 무덤이 됐지만, 다가올 미래에는 잔혹한 킬링필드의 현장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다.

아프가니스탄

아프가니스탄

20년 전 탈레반이 파괴한 바미안 대불
카불 서북방 130㎞ 지점에 있는 바미안에는 두 개의 거대한 불상이 새겨져 있었다. 6세기 무렵 암벽을 깎아서 감실(龕室)을 만들고 그 안에 불상을 조각했다. 서대불(西大佛)은 높이 38m, 동대불(東大佛)은 55m에 이른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바미안 석불을 예부터 유명했다. 7세기에 이곳을 들른 현장 법사와 신라 고승 혜초의 글에도 이에 관한 언급이 보인다. 하지만 소련군이 철수한 뒤 이곳을 장악한 탈레반은 자제를 호소하는 국제여론에도 불구하고 2001년 3월 2일 대포를 쏘아 대불을 모두 파괴했다. ‘신은 하나뿐이므로 조각상을 숭배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모비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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