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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배달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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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현예 기자 중앙일보 도쿄 특파원
김현예 P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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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추속대를 썰어 넣고, 콩나물과 송이버섯·표고버섯까지 푸짐히 넣는다. 소갈비에 해삼·전복까지 더한 뒤 종일 끓여, 이 국을 항아리에 담는다. 솜으로 잘 싼 뒤 인편에 서울로 보내는데, 도착할 때쯤 ‘새벽종(曉鍾)’이 울렸다. 사대문 안 고래등 같은 양반 집에 그렇게 도착한 음식은 바로 효종갱(曉鍾羹). 이 음식은 지금으로 치면 속풀이 해장국이다. 조선 후기 시인인 최영년이 『해동죽지』에 배달해 먹는 이 음식을 기록해놨는데, 경기도 광주 사람들이 잘하는 음식이라고 썼다.

배달 이야기를 하자면 냉면을 빼놓을 수 없다. 원로 사진작가 김석배씨가 지난 2011년 한 언론사에 기고한 이야기는 지금 봐도 놀라울 정도다. 그의 회고다. 1938년 14살 때였다. 서울 을지로입구에 있는 삼촌 집에서 인천 경인관이란 냉면집에 전화를 걸어 열다섯 그릇을 야참으로 배달시켜 먹었다. 육수를 주전자에 담아 면과 따로 배달하는데, 배달원은 택시로 동인천역까지 가서 기차로 서울역까지 간다. 이후에 다시 택시를 타고 찾아와 냉면 배달을 마치는데, 배달부는 그릇이 비워질 때까지 문밖에서 기다렸다는 내용이다.

당시 부자들 사이에선 음식 배달이 얼마나 보편적이었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이야기는 또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 『비밀가정탐방기』(1932년)엔 배달부로 변장한 한 기자의 이야기가 실려있다. 한겨울 밤, 냉면 두 그릇을 자전거로 배달하는데 목판에 냉면 그릇과 육수가 담긴 주전자, 김치가 담긴 접시를 얹고 달렸다. 한손으론 목판을, 한손으론 자전거 핸들을 움직이다 아뿔싸, 삐끗했는데 김치 그릇을 그만 뒤엎어버렸다. 우여곡절 끝 배달은 했지만, 냉면을 받은 손님이 30분을 기다려도 그릇을 내주지 않아 추위에 떨던 이야기, 야식 배달을 하다 ‘배달부 X의 자식’ 소리를 들은 설움까지 담겨있다.

양경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통계청에서 받은 자료에 의하면, 지난해 하반기 기준 배달원 수가 39만 명을 기록했다고 한다. 조사를 시작한 2013년 이후 최대치인데, 1년 사이 11.8%가 증가했다. 코로나19를 계기로, 확 퍼진 배달문화 영향이다. 세도가나 누렸던 배달 편의를 누구나 누리는 세상이지만 마냥 좋지만은 않다. 잊을 만하면 불거지는 배달원을 향한 폭언, 교통사고, 과로사 소식은 이제 그만 뉴스에서 사라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