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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실로 드러난 여론조사 조작, 샅샅이 파헤쳐 엄벌해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특정 대선후보 응답 유도한 업체 적발돼

76개 업체 전수조사해 ‘편파’ 근절 시급

내년 3월 대선을 앞두고 쏟아지고 있는 여론조사에 대한 여론이 악화일로다. 대선후보 지지율이 조사 업체마다 워낙 들쭉날쭉하게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같은 날 조사한 대선주자 지지율이 심하게는 20%포인트 넘게 차이가 나고, 같은 업체 조사도 며칠 만에 수치나 순위가 급변하곤 한다.

이러면 자연히 민심은 혼란에 빠지고 선거 프로세스에 대한 불신은 커질 수밖에 없다. 우리 정당들은 공직 선거 후보를 경선으로 공천할 때 여론조사를 핵심 잣대로 삼는다. 여론조사가 왜곡되면 당심·민의와 동떨어진 인물이 공당의 후보가 될 우려가 커지는 것이다. 그런 데다 국내 여론조사 업체들은 상당수가 친여 또는 친야 성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내 여론조사의 생명인 중립성을 포기했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이에 따라 특정 정당이나 후보에게 유리한 질문을 던지거나 모집단을 조작해 여론조사 업체의 입맛에 맞는 결과를 ‘생산’해 내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이런 우려를 뒷받침하는 사례가 실제로 드러났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여심위)는 여론조사 업체 글로벌리서치가 대선 여론조사 과정에서 특정 응답을 유도하거나 응답 내용과 다른 결과를 입력한 혐의를 적발했다. 이에 따르면 글로벌리서치는 7월 4일 공개된 ‘20대 대선후보 지지도’ 조사에서 “지지 후보가 누구냐”는 질문에 답변을 망설이는 응답자에게 “이재명?” “윤석열?” 같은 식의 유도 질문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지 정당이 없다고 답하자 “더불어(민주당)요?”라고 물은 사례도 적발됐다. 30대라고 답한 응답자의 연령대를 20대나 40대로 입력한 사례도 있었다고 한다.

소문으로만 떠돌던 조사 업체의 ‘편파 조사’ 의혹이 실제로 확인됐으니 경악을 금할 수 없다. 이런 식으로 조사 결과를 왜곡한 업체가 글로벌리서치 한 곳뿐일지 의문이다. 게다가 여심위가 이 업체에 내린 벌은 과태료 3000만원이 전부다. 대선까지 남은 6개월 동안 여론조사가 폭증할 텐데 이렇게 솜방망이 처벌로 끝나면 편파성이 의심되는 여론조사가 기승을 부릴 우려가 많다. 당장 2017년 조사 기준 위반 사실이 중앙선관위에 적발돼 과태료 3000만원을 부과받았던 한 여론조사 업체는 지금도 버젓이 영업하고 있다.

왜곡된 여론조사는 정치 불신과 선거 불복의 온상이다. 왜곡된 조사를 한 업체에 대해서는 여심위에 영업정지 등 강력한 제재 권한을 줘야 한다. 또 여심위는 등록 76개 업체 전체를 대상으로 편파적 질문을 던지거나 모집단을 왜곡한 경우가 있는지 샅샅이 파헤치고, 적발된 업체는 형사고발 등 강력한 조처를 해야 한다. 여심위는 날림 여론조사 업체의 난립을 막기 위해 업체 등록 기준을 강화하고, 부실 업체를 걸러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