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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간호사 파업 철회 다행이지만, 의사 반발 새 불씨 남겨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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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나순자 보건의료노조 위원장과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이 2일 새벽 13차 노-정 실무교섭이 타결되자 인사를 나누고 있다. 코로나 19 대응의 핵심 역량인 간호사들의 파업을 막은 것은 다행이고 간호사들의 처우 개선도 환영할 일이지만, 이번 합의에 대해 의사단체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어 후유증이 우려된다. 연합뉴스

나순자 보건의료노조 위원장과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이 2일 새벽 13차 노-정 실무교섭이 타결되자 인사를 나누고 있다. 코로나 19 대응의 핵심 역량인 간호사들의 파업을 막은 것은 다행이고 간호사들의 처우 개선도 환영할 일이지만, 이번 합의에 대해 의사단체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어 후유증이 우려된다. 연합뉴스

코로나와 사투 간호사 지원은 환영할 만    

의료인력 등 의사 관련 합의는 논란 소지

코로나19 위기 상황에서 간호 인력의 집단 공백을 걱정했는데 민주노총 보건의료노조 파업이 어제 새벽 정부와의 막판 합의로 철회돼 다행이다. 1년8개월간 코로나와 사투를 벌여 온 간호사들이 소진(번아웃)되지 않도록 인력을 확충하고 수당을 증액한 것은 충분히 납득할 만하다.

하지만 환자를 볼모로 한 민주노총 세력의 파업 협박에 정부가 너무 쉽게 굴복해 막대한 청구서가 발생함에 따라 국민의 세금 부담을 키웠다는 지적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무엇보다 지난해 전공의 파업의 빌미가 됐던 의사 인력 증원은 물론 공공병원 확충에 합의한 데 대해서는 의사 단체들이 반발하고 있어 새로운 갈등의 불씨로 작용할 우려가 있다. 간호사들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한 정부의 졸속 합의가 의사들의 파업을 자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와 노조는 5월 31일부터 어제까지 모두 13차례 노·정 협의를 진행해 22개 협상 과제를 두고 논의하면서 이견을 보였으나 코로나 치료 병원 인력 기준 마련, 간호사 생명안전수당 제도화, 간호사 대비 환자 비율 법제화, 교육 전담 간호사 지원제도 확대, 야간 간호료 지원 확대 등 주요 쟁점 현안에 합의했다.

간호 인력 처우 개선 대책이 눈에 띈다. 복지부는 코로나 중증도별 근무 간호사 배치 기준을 이달까지 마련하고, 세부 실행 방안도 다음 달까지 별도로 마련하기로 했다. 감염병 상황에서 환자를 돌보는 보건의료 인력에게 지급하는 ‘생명안전수당’을 내년부터 국고로 지원하도록 제도화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복지부는 하반기에 관련 법률 개정을 추진하고 예산을 확보해야 하는 부담이 커졌다.

문제는 복지부와 노조가 울산·광주·대구·인천 공공병원 설립 추진, 공공의료 인력 확충을 위한 추진협의체 구성, 국가의료전달체계 개혁, 국립대병원 소관 부처를 교육부에서 복지부로 이관하는 내용 등에 합의한 점이다.

합의 사실이 알려지자 당장 대한의사협회와 전국의사총연합 등 의사 단체들은 정부가 직접 이해당사자도 아닌 보건의료노조와 월권적 합의를 했다며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정부가 지난해 전공의 파업 당시 체결한 ‘9·4 의·정 합의’를 위반했다며 강력히 대응할 움직임을 보인다. 실제로 당시 전공의들은 파업을 중단하면서 의사 인력 증원, 공공의대 설립, 공공병원 확충 등에 관한 논의는 코로나 종식 이후 재개하기로 합의했었다.

일각에서는 김부겸 총리가 권력집단이 된 민주노총 산하 노조의 파업 압력에 너무 쉽게 양보 카드를 내미는 바람에 노조는 기대 이상으로 실속을 챙겼지만, 국민 부담을 키우고 의사 반발이란 후환을 남겼다는 지적이 나온다. 코로나가 장기화하는 가운데 이번 합의로 인해 의사 집단이 또다시 집단행동에 나서지 않도록 정부는 위기관리에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