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방위 규제에…대출 유랑민, 지방·외국계 은행 두드린다

중앙일보

입력 2021.09.03 00:04

업데이트 2021.09.05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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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가계대출 관리강화를 요구하는 금융당국의 압박이 계속되면서 시중은행 대출이 줄고 있다. 돈이 필요한 사람은 새 대출처를 찾아 나선다. 사진은 2일 서울의 한 은행 에 붙은 대출상담 안내문. [뉴스1]

가계대출 관리강화를 요구하는 금융당국의 압박이 계속되면서 시중은행 대출이 줄고 있다. 돈이 필요한 사람은 새 대출처를 찾아 나선다. 사진은 2일 서울의 한 은행 에 붙은 대출상담 안내문. [뉴스1]

직장인 김모(29)씨는 최근 씨티은행에서 4000만원의 신용대출을 받았다. 앞서 주거래은행에서 대출 상담을 받았지만 한도가 예상만큼 나오지 않자 한 번도 거래한 적 없었던 외국계 은행을 찾은 것이다. 김씨는 “꼭 필요한 자금인데 시중은행들이 갑자기 대출한도를 줄이는 바람에 당황스러웠다”며 “결국 대출상담사를 통해 지방은행과 외국계 은행까지 알아본 뒤 가장 한도가 많이 나오는 곳을 골랐다”고 말했다.

금융감독원의 ‘창구 지도’에 주요 시중은행들이 신용대출 한도를 연 소득 이하로 일제히 축소하자 지방은행과 외국계 은행들에 대출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 2일 기준으로 지방·외국계 은행 중 신용대출 한도를 줄이지 않은 곳은 SC제일은행, 씨티은행, 대구은행, 제주은행 등이다. 주요 시중은행에 비해 가계대출 규모가 작은 데다, 외국계는 당국의 입김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영향이다. 시중은행을 누르니 외국계와 지방은행 대출이 늘어나는 ‘풍선효과’도 나타나고 있다.

은행권 관계자는 “외국계는 일반 시중은행만큼 돈을 싸게 조달할 수 없어 상대적으로 금리 경쟁력은 낮지만 한도는 더 잘 나오는 편”이라며 “최근 시중은행이 빠르게 대출 한도를 조이자 외국계로 대출자가 몰리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방은행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경남은행의 올 상반기 가계 대출 증가율은 11.8%로 1금융권에서 카카오뱅크(13.8%)에 이어 증가율이 두 번째로 높았다. 이어 또 다른 지방은행인 부산은행(9.9%), 대구은행(6.6%)이 증가율 순위 3, 4위를 기록했다. 5대 시중은행(1.5~3.4%)의 증가율을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문제는 시중은행보다 외국계·지방은행의 신용대출 금리 수준이 높다는 사실이다. 은행연합회 공시에 따르면 지난달 신용등급 1~2등급 고객 기준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일반신용대출 평균 금리는 2.88%지만 외국계 은행은 3.3%로 0.42%포인트 차이가 났다. 지방은행(부산·대구·경남·광주·전북·제주)의 1~2등급 고객 신용 대출 평균 금리는 3.5%로 더 비쌌다.

이 때문에 대출 한도를 확보하기 위해 지방은행과 외국계 은행을 찾은 이들은 “대출 유랑민이 된 것도 모자라 더 비싼 이자를 부담하게 됐다”며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내년 초 이사를 앞두고 지방은행에 마이너스 통장 개설을 신청한 직장인 신모(30)씨는 “신용대출 한도를 조이면 카드론을 써서라도 돈을 마련해야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결국 이자 부담만 키우는 꼴”이라며 “실수요 여부나 상환 능력을 고려하지 않고 일괄적으로 대출 한도를 줄이는 게 말이 되느냐”고 울상을 지었다.

그나마 외국계와 지방은행도 이달 중으로 신용대출 한도를 축소할 예정이라고 밝혀 대출 문이 더 좁아지는 건 시간문제다. 은행권에서도 우려가 나온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대출자마다 부실 위험을 평가해 한도와 금리를 정하는 것이 금융사의 핵심 역량”이라며 “일괄적인 대출 제한은 실수요자들의 피해뿐 아니라 금융산업의 경쟁력도 훼손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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