갯벌 흙탑의 비밀, 농게도 집이 좋아야 장가 잘 간다

중앙일보

입력 2021.09.03 00:03

업데이트 2021.09.03 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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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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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종위기종 2급 흰발농게.

멸종위기종 2급 흰발농게.

8월 하순 어느 날 오후 전남 신안군 압해도 대천리 갯벌. 까마득하게 펼쳐진 갯벌을 노둣길을 따라 걸어 들어갔다. 노둣길은 갯벌이 드러나야 비로소 길이 된다. 갯벌에 기대어 사는 사람들이 갯벌에 하나둘 돌멩이를 던져 넣어 이렇게 길을 냈다.

노둣길을 걷다 보니 사방에서 부산한 움직임이 감지됐다. 인기척을 느낀 칠게들이 후다닥 구멍 안으로 숨고 있었다. 칠게. 남도 밥상에 반찬으로 흔히 오르는 갯것이다. 갯벌에 칠게가 많다는 건, 낙지도 많다는 뜻이다. 칠게는 낙지 먹이다. 하여 인간은, 낙지를 잡을 때 칠게를 미끼로 쓴다.

갯벌은 죄 구멍 천지였다. 구멍마다 화들짝 놀란 칠게들이 숨죽이고 있을 터였다. 쪼그리고 앉아 칠게가 다시 나타나길 기다렸다. 검은 갯벌에 오후 햇볕이 내리쬐자 밤하늘의 별처럼 칠게 집이 반짝거렸다. 얼마나 앉아 있었을까. 멀리서부터 갯벌이 꼼지락거렸다. 다리에 쥐가 날 즈음 발아래에서도 칠게가 기어 다녔다. 그들이 곁을 내준 것 같아 내심 기뻤다.

흰발농게 수컷의 집. 집이 커야 암컷이 잘 들어온다.

흰발농게 수컷의 집. 집이 커야 암컷이 잘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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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발농게는 칠게보다도 조심성이 많았다.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종 2급 동물답게 관찰이 쉽지 않았다. 갯벌 멀리서 이빨 같은 게 돌아다니는 것 같았다. 흰발농게였다. 하얀 집게발이 하도 커 몸집을 가렸다. 농게가 사는 갯벌은 화장실 휴지처럼 올록볼록했다. “갯벌에 작은 흙탑이 돋아 있으면 농게 갯벌”이라고 신안군청 주성영 주무관이 알려줬다. 흙을 공처럼 만들어 차곡차곡 탑을 쌓았는데, 탑 꼭대기에 구멍이 나 있다. 집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주 주무관이 흥미로운 얘기를 들려줬다.

“농게 수컷만 구멍 주위에 탑을 쌓아요. 암컷은 구멍만 내고요. 암컷이 수컷 집에 들어가면 짝짓기가 이뤄지는데, 수컷 집이 크고 화려할수록 암컷이 잘 들어가요. 인간이랑 비슷하죠?”

갯벌이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오른 건, 바다가 들고나는 모래와 진흙이 귀해서가 아니다. 이 모래와 진흙이 수많은 생명을 보듬고 있어서다. 물론 이 생명엔 인간도 들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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