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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새가 쉬어가는 곳, 한국 갯벌 절반이 세계자연유산

중앙일보

입력 2021.09.03 00:03

업데이트 2021.09.03 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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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드론으로 촬영한 전남 신안 압해도 대천리 갯벌. 진흙 갯벌에 모래가 쌓였다. 갯벌이 건강하다는 뜻이다. 물골 너머로 김 양식장이, 양식장 너머로 압해도와 암태도를 잇는 천사대교가 보인다. 갯벌은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손민호 기자

드론으로 촬영한 전남 신안 압해도 대천리 갯벌. 진흙 갯벌에 모래가 쌓였다. 갯벌이 건강하다는 뜻이다. 물골 너머로 김 양식장이, 양식장 너머로 압해도와 암태도를 잇는 천사대교가 보인다. 갯벌은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손민호 기자

갯벌이 세계유산이 됐다. 흔해 빠진 갯벌이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오르다니. 놀랍고 반가운 소식이다. 아울러 궁금증도 인다. 이를테면 다음의 의문이다. 7월 26일 세계유산에 등재된 ‘한국의 갯벌(Getbol, Korean Tidal Flats)’은 모두 네 곳이다. 전남 신안, 전북 고창, 충남 서천, 전남 보성·순천. 우리나라 해안엔 이들 네 개 지역 말고도 갯벌이 널렸다. 그런데 왜 이 네 개 갯벌만 “생물 다양성 보전을 위해 세계적으로 가장 중요하고 의미 있는 서식지(세계유산위원회 선정 이유)”로서 가치를 인정받았을까. 다른 지역의 갯벌은 왜 세계유산이 못 됐을까.

남한 영토의 1.2%

신안 증도 갯벌에서 촬영한 짱뚱어. [중앙포토]

신안 증도 갯벌에서 촬영한 짱뚱어.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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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갯벌의 면적은 2489.4㎢이다. 우리나라 전체 면적의 약 2.4%를 갯벌이 차지한다. 우리나라 갯벌은 모두 서남해안에 있다. 전체 갯벌 면적의 약 83%인 1980㎢가 서해안에 있고, 나머지 409.4㎢가 남해안에 있다. 세계유산에 오른 네 개 갯벌 중 보성·순천 갯벌만 남해안 갯벌이고 나머지 세 개 갯벌은 서해안 갯벌이다.

이번에 세계유산에 오른 갯벌 면적은 1284.11㎢이다. 놀라운 성과다. 우리나라 갯벌의 절반 이상(51.58%)이 세계유산이라는 뜻이자, 남한 영토의 1.2% 이상이 유네스코가 인정한 세계자연유산이란 뜻이어서다. 긴 세월 찬밥 신세였던 갯벌 덕분에 대한민국은 세계적인 자연환경 국가 지위에 올랐다.

드론으로 촬영한 신안 갯벌. 물이 빠지자 물골이 갯벌에 기하학적 문양을 그렸다.

드론으로 촬영한 신안 갯벌. 물이 빠지자 물골이 갯벌에 기하학적 문양을 그렸다.

갯벌 세계유산은 더 넓어지고 커질 참이다. 세계유산위원회는 한국의 갯벌을 세계유산에 등재하면서 “유산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강화하기 위해 2025년 제48차 세계유산위원회까지 유산 구역을 확대하라”고 권고했다. 재단법인 ‘한국의 갯벌 세계유산 등재추진단(이하 갯벌 추진단)’ 관계자에 따르면 이미 서너 개 자치단체가 유산 추가 등재를 신청했다. 2025년이면 전국 갯벌의 70%가, 남한 영토의 2%가 세계유산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혹여 오해가 있을까 싶어 밝힌다. 갯벌이 세계유산이 돼도 갯벌에 기대어 사는 주민의 일상은 달라지는 게 없다. 타격을 입는다면 개발 업자고, 불편해진다면 행정 당국이다.

세계유산의 85.7%를 거느린 고장

암태도와 추포도 사이 갯벌. 오른쪽 다리가 물이 차면 잠기는 노둣길이다.

암태도와 추포도 사이 갯벌. 오른쪽 다리가 물이 차면 잠기는 노둣길이다.

이번에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갯벌 중에서 85.7%에 달하는 1100.86㎢가 전남 신안군에 있다. 신안군에는 모두 14개 읍·면이 있는데, 이 중에서 13개 읍·면의 갯벌이 세계유산으로 지정됐다. 육지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흑산면만 세계유산에서 빠졌다. 지정 면적만 보면 한국의 갯벌 유산은 ‘신안 갯벌과 기타 갯벌’로 명명해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 신안군은 갯벌 유산 등재 추진사업을 가장 먼저 시작했고, 가장 주도적으로 벌인 자치단체다.

“갯벌 연구를 시작한 건 2003년 5월입니다. 신안군 차원에서 갯벌 사업을 추진한 건 2007년이고요. 처음엔 신안 갯벌만 등재를 추진했었는데, 문화재청이 다른 갯벌도 포함하는 게 좋겠다고 해 대상을 확장했습니다. 2010년 다른 5개 지역과 함께 잠재목록에 등재됐고, 2015년 지금의 네 개 지역으로 확정됐습니다. 전국 자치단체 중에 세계유산과가 있는 건 신안군이 유일합니다.”

신안군청 고경남(56) 세계유산과장의 설명이다. 고 과장은 갯벌 유산 등재 사업의 산증인이다. 24년 공무원 생활 중 18년을 갯벌 등재 추진 업무를 맡았다. 고 과장은 “세계유산위원회가 가장 높이 평가한 갯벌의 가치가 생물 다양성”이라며 “가령 우리 갯벌이 없으면 수많은 철새가 중간 기착지를 잃어 멸종될 것”이라고 말했다. 신안 갯벌에는 김·미역·다시마 같은 해조류 144종, 조개·새우·게 같은 대형저서동물 568종이 서식한다. 신안 갯벌에 사는 해조류와 대형저서동물의 종 다양성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철새 낙원

충남 서천 유부도에서 촬영한 넓적부리도요. 멸종위급종 동물이다. [중앙포토]

충남 서천 유부도에서 촬영한 넓적부리도요. 멸종위급종 동물이다. [중앙포토]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한국의 갯벌은 하나같이 ‘국제적으로 중요한 철새 중간 기착지’다. 특히 서천 갯벌에선 세계적인 희귀종 넓적부리도요가 관찰된다. 넓적부리도요는 IUCN(국제자연보전연맹)이 지정한 적색목록 멸종위급종(CR 등급) 동물이다. 넓적부리도요는 전 세계에서 300여 쌍만 생존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넓적부리도요의 국내 최대 서식지가 서천 갯벌의 중심을 이루는 유부도다.

유부도는 여의도 4분의 1 크기의 작은 섬이다. 정기 여객선이 없어 어선을 얻어 타야 들어갈 수 있다. 유부도는 진즉부터 국내 탐조 관광의 성지와 같은 곳이었다. 2013년 환경부가 전국 12대 생태관광지로 지정했고, 이듬해엔 유부도를 포함한 서천 갯벌이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됐다. 중앙일보는 2014년 11월 유부도에서 닷새를 머무르며 겨울 철새를 관찰했고, 끝내 넓적부리도요 촬영에 성공했다.

갯벌은 야생동물의 천국이다. 전남 순천만에서 촬영한 흑두루미. [중앙포토]

갯벌은 야생동물의 천국이다. 전남 순천만에서 촬영한 흑두루미. [중앙포토]

보성·순천 갯벌은 그 유명한 순천만 갯벌을 아우른다. 순천만 갈대밭 어귀 여자만 일대 갯벌이 세계유산으로 지정됐는데, 이 갯벌에서 벌교 꼬막이 올라온다. 익히 알려졌듯이 순천만은 흑두루미의 국내 최대 월동지다. 한해에 4596마리나 관찰된 적도 있다. 흑두루미는 IUCN 적색목록 취약종(VU 등급)에 속한다. 고창 갯벌은 IUCN 적색목록 멸종위기종(EN 등급) 황새의 국내 최대 월동지다.

전북 고창 갯벌은 멸종위기종 황새의 국내 최대 월동지다. [중앙포토]

전북 고창 갯벌은 멸종위기종 황새의 국내 최대 월동지다. [중앙포토]

서천 갯벌과 보성·순천 갯벌은 개발 위기를 극복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서천 갯벌은 장항 국가산업단지 건설사업이 추진되면 매립될 예정이었으며, 순천만 갯벌도 주변 농지 홍수 피해를 막는다는 이유로 매립될 뻔했다.

세계유산에서 빠진 세계 5대 갯벌

전남 순천만 갈대밭 갯벌. 누렇게 익은 갈대와 물 빠진 진흙 뻘이 강렬한 대비를 이룬다.

전남 순천만 갈대밭 갯벌. 누렇게 익은 갈대와 물 빠진 진흙 뻘이 강렬한 대비를 이룬다.

생태 관광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인천 강화도 동막 갯벌이 세계 5대 갯벌로 불렸던 걸 기억할 테다. 이어 동막 갯벌이 세계유산 목록에서 빠진 사연이 궁금했을 테다. 익명을 요구한 갯벌 추진단 간부는 “인천시와 강화군이 갯벌 보전으로 인한 이익보다 개발로 인한 이익이 더 크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인천시와 경기도의 갯벌 면적은 838.5㎢로 우리나라 갯벌 면적의 35%를 차지한다.

동막 갯벌 말고도 세계유산에서 빠진 갯벌이 눈에 밟힌다. 신안 갯벌 북쪽은 무안 갯벌과 닿아있으며 영광 갯벌까지 이어진다. 보성·순천 갯벌도 고흥 동쪽 갯벌과 연결되고, 서천 갯벌의 중심 유부도는 서천항보다 군산항이 훨씬 가깝다. 그러나 무안, 영광, 고흥, 군산 모두 이번 목록에서 빠졌다.

신안·고창

신안·고창

전북 부안이 안 보이는 것도 아쉽다. 고창 갯벌은 곰소만 남쪽 해안을 따라 이어지는데, 곰소만 북쪽 해안이 부안 땅이다. 곰소염전, 곰소젓갈, 줄포생태공원 등 곰소만의 관광 브랜드는 오히려 부안이 우세하다. 무안과 부안 모두 2010년 잠재목록에는 들어가 있었다. 갯벌 추진단 유창형 팀장은 “지역마다 사정이 복잡하다”며 “이번에 빠진 갯벌들이 추가 등재할 때 참여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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