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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대교만 뻥 뚫렸다…서부간선은 여전히 '거북이운행' [르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월드컵대교 개통 이틀째인 2일 오후 2시30분쯤. 기자가 택시를 타고 지난 월드컵대교는 양방향 모두 시원하게 뚫린 모양새였다. 대교 북단에서 남단까지를 2~3분만에 통행했지만, 램프를 빠져나오자 상황이 달라졌다. 성산대교를 통과한 차량과 합쳐지는 서부간선지하도로 램프 진입로부터 차량행렬이 길게 이어져서다.

개통 이틀째, 월드컵대교 건너보니

총 10.33㎞ 지하도로 구간 중 2㎞ 지점부터 속도가 시속 20㎞대로 줄어들었고 가다서다를 반복했다. 오후 2시40분에 지하도로를 진입해 터널을 빠져나와 서해안고속도로 진입하기 전 독산동에 이를 때까지만 총 28분이 걸렸다. 서울시가 당초 기대한 통행시간 단축에는 아직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당초 서울시는 “월드컵대교 개통으로 인근 성산대교 교통량이 일평균 15만대→12만대로 약 21% 감소한다”고 예측했다. 주변 교통 정체 해소로 출퇴근 시간대 성산대교 남단에서 서해안고속도로 진입로까지의 통행시간이 30분대에서 10분대로 줄어든다는 전망도 나왔다.

2일 개통 이틀째를 맞은 서울 서부간선도로 하행선 모습. 오후 2~3시 사이 차량 운행 속도가 20km대로 더디다. 허정원 기자.

2일 개통 이틀째를 맞은 서울 서부간선도로 하행선 모습. 오후 2~3시 사이 차량 운행 속도가 20km대로 더디다. 허정원 기자.

서울 마포구 상암동 증산로와 영등포구 양평동 서부간선도로를 잇는 월드컵대교가 지난 1일 개통했다. 착공 11년만에 개통한 월드컵대교는 인근 성산대교 남단 일대 교통체증을 해소해줄 것으로 기대를 모아왔다.

하지만 개통 이틀째까지는 체감효과가 크지 않았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서울시에 따르면 개통 당일인 지난 1일 월드컵대교 통행량은 총 1만8609대(북단 유입·남단 유출 기준)로 당초 예정했던 8만대 수준에 못 미쳤다.

반면 월드컵대교로의 교통 분산을 기대했던 성산대교 통행량은 1일 기준 총 14만6604대로 전날(13만7627대)보다 오히려 8977대(6.5%) 늘었다. 이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개통 초기는 인지도가 낮은 데다 첫날은 12시에 개통해서 수치에 크게 의미를 부여할 상황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31번째 한강다리, 최고·최대·최장 기록

월드컵대교는 한강의 31번째 다리다. 길이 1980m, 왕복 6차로(너비 31.4m)로 만들어졌다. 다리 한가운데는 남쪽으로 기운(경사각 78도) 주탑이 100m 높이로 우뚝 서 있는데, 한강 다리 중 가장 높다.

비대칭 주탑 양쪽으로 축구 선수 11명을 상징하는 11개의 케이블이 연결돼 다리를 지탱한다. 주탑 아래 가장 긴 교각 간 거리는 225m에 달하는데, 한강 다리 중 가장 넓다. 크루즈선도 지날 수 있도록 설계됐다.

2일 서울 마포구 하늘공원에서 바라본 서울 월드컵대교 모습. 김성룡 기자

2일 서울 마포구 하늘공원에서 바라본 서울 월드컵대교 모습. 김성룡 기자

최고(높이)와 최대(교각 거리) 기록만 있는 것은 아니다. 착공부터 완공까지 걸린 11년은 국내 다리 공사 역사상 최장 기간이다. 당초 오세훈 시장이 2010년 재임할 당시 계획을 세웠고, 2015년 완공이 목표였다.

하지만 2011년 고(故) 박원순 전 시장이 취임하면서 예산이 삭감됐고, 사업은 속도를 내지 못했다. 우여곡절 끝에 개통한 월드컵 대교를 두고 지난 29일 현장을 찾은 오 시장은 "좀더 과감한 투자가 이뤄져야 했다. 불편을 감수한 시민 여러분께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주민들 "10년째 한강 흉물, 앓던 이 빠졌다"

인근 지역 주민들은 10년 넘게 공사를 했던 도심 흉물이 제 기능을 하는 것만으로도 '앓던 이가 빠진 것 같다'고 반기는 분위기다. 강서구 염창동 주민 김모(39)씨는 "월드컵이 끝나지 20년이 지났는데, 정작 월드컵 대교는 10년 넘게 공사를 하는둥 마는둥 했다"면서 "출·퇴근 길에 인근을 지날 때면 공사 차량이나 차선 통제로 불편이 컸다"고 말했다.

교통체증을 가장 많이 겪는 택시기사들의 입장은 엇갈렸다. 서울 동작구에 차고지를 둔 택시기사 이모씨는 “서울시 계획대로 지상의 자동차전용도로를 일반도로로 바꾸면 지하 교통체증이 더 심해지는 것 아니겠느냐”며 “편도 2500원의 통행료(서부간선지하도로)를 내고 또 차가 밀리는 것보다는 지상을 그대로 둬야 차량 분산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택시기사 박모(49)씨는 "초기 차량이 몰릴 수는 있겠지만 독산동에서 상암동까지 종전보다 배이상은 빠르게 이동하지 않겠냐"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서울시 "램프 구간 정체 등 지속 모니터링 할 것"

새로운 도로가 뚫리면 초기 효과가 미미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월드컵대교와 이어진 서부간선지하도로의 경우 유료지만 15일까지는 무료로 이용이 가능한 것도 차량이 몰리는 이유로 꼽힌다. 강경우 한양대 교통물류학과 교수는 “단기적으론 새로운 도로의 수요가 늘어나 차량정체가 더 심해지는 ‘브래스의 역설’ 현상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도 서부간선도로 지상과 지하, 월드컵대교와 성산대교의 교통 분산효과를 판단하기는 시기상조라는 입장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차후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통해 인근 도로의 교통량을 면밀히 살필 계획”이라며 “일부 램프 구간 정체와 지하도로가 유료화되는 15일 이후 추이를 좀 더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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