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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부모 돈 빌려 집 산 청년 비중, 文정부서 2배 늘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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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에 다니는 강모(31)씨는 지난해 서울 강서구에 작은 아파트(전용면적 46㎡) 한 채를 샀다. 아직 결혼 계획이 없어 집이 필요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집값이 너무 올라 더 미루다가는 영영 살 수 없을 거 같아서다.

강씨는 시세 5억원인 아파트 매매를 위해 시쳇말로 '영혼'까지 끌어모았다. 우선 6억원 이하면 집값 60%까지 빌릴 수 있는 한국주택금융공사(HF) 보금자리 대출로 3억원을 마련했다. 여기에 그동안 모은 돈을 보탰다. 부족한 8000만원은 아버지에게 차용증을 쓰고 빌렸다. 강씨는 “집값이 너무 오른 데다 은행 대출은 막혀 아버지 돈까지 빌렸다”면서 “부모에게 빌리면 시중 대출 금리보다 높게 줘야 하지만, 용돈을 드린다고 생각하니 오히려 아깝지가 않았다”고 했다.

부모 돈 빌려 집 구매 2배 늘어

문재인 정부 들어서 부모 돈을 빌려 서울 주택을 구매한 비중이 2배 이상 늘었다. 사진은 서울 송파구 미성아파트, 진주아파트 재건축 부지의 모습. 연합뉴스

문재인 정부 들어서 부모 돈을 빌려 서울 주택을 구매한 비중이 2배 이상 늘었다. 사진은 서울 송파구 미성아파트, 진주아파트 재건축 부지의 모습. 연합뉴스

문재인 정부 들어 부모에게 돈을 빌려 집을 산 청년층 비중이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2일 김상훈 국민의힘 의원실이 국토교통부에 받은 서울 주택취득자금 조달 및 입주계획서(자금조달계획서)를 전수 분석한 결과다.

김 의원실에 따르면 서울에서 집을 산 10~30대 청년층 중 자금조달계획서의 ‘그 밖에 차입금’을 기재한 비중은 문 정부 초기인 2018년(13.14%)보다 올해(27.24%, 7월까지 기준) 2배 넘게 커졌다. ‘그 밖에 차입금’은 부모나 친인척·지인 등에게 주택 구매 자금을 빌렸을 때 쓰는 항목인데, 통상 부모 차입금이 대다수다.

‘그 밖에 차입금’으로 집 산 청년층 비중.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그 밖에 차입금’으로 집 산 청년층 비중.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2018년(13.14%)과 2019년(15.06%)만 해도 10~30대 서울 주택 거래 중 ‘그 밖의 차입금’ 비중은 10% 초·중반에 머물렀다. 하지만 이 비율이 급증한 것은 지난해(20.19%)다. 집값 폭등에 젊은 층이 ‘패닉바잉(가격이 더 오를 거란 두려움에 사는 것)’에 나섰던 시기와 일치한다. 올해(7월까지)는 이 비중이 27.24%로 30%에 육박할 정도로 많아졌다.

상속·증여로 집을 마련한 10~30대 비중은 2018년(0.041%)·2019년(0.115%)까지는 전체 주택 거래의 1% 미만에 머물렀다. 하지만 이 비율도 지난해(19.54%)와 올해(27.42%) 급증했다. 부모에게 돈을 빌리거나 상속·증여를 받아 집을 마련한 청년층 사례를 모두 합하면 올해 기준 절반에 육박할 것으로 추정한다.

부동산 ‘부모 찬스’, 부 대물림 심화

‘상속·증여’로 집 산 청년층 비중.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상속·증여’로 집 산 청년층 비중.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이렇게 속칭 ‘부모 찬스’로 서울 집을 산 청년층 비중이 크게 는 것은 정부 부동산 규제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문 정부 들어 집값이 크게 올라 자기 자금만으로 구매가 불가능해졌는데, 정부 대출 규제 등은 더 강화돼 어쩔 수 없이 부모에게까지 손을 내밀었다는 얘기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현재 부동산 가격과 제도에서는 청년층이 자력으로 구매할 수 없는 데다, 정부의 양도세 강화 정책으로 부모 세대는 집을 팔 수 없게 되면서 다양한 방식으로 자식에게 부동산을 물려주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계층 간 부의 대물림 심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정부가 집값을 잡기 위해 청년층 주택 구매를 더 어렵게 만들면서, 부모에게서라도 돈을 빌릴 수 있는 사람만 주택 구매에 뛰어들고 있어서다.

김상훈 의원은 “집값이 잡히지 않고 계속 오른다면, 부모 도움을 받아서 집을 산 계층과 그러지 못한 계층의 격차가 계속 더 벌어질 수밖에 없다”면서 “부모 도움 없이도 집을 살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다만, 청년층 주택 거래 중 부모 도움 비중이 증가한 것에 대해 국토부는 “원래 규제지역 3억원 이상 주택만 내는 자금조달계획서를 지난해부터 금액에 상관없이 제출하도록 확대해 부모 차입금과 상속·증여 비중이 늘어난 것으로 추정한다”면서 “여기에 상속·증여와 관련해 기재 항목이 지난해 더 세밀화된 것도 영향을 미쳤다”고 해명했다.

부모 차입금, “편법 증여 우려”

부모 차입금이 편법 증여의 방식으로 쓰일 수 있는 점도 우려스럽다. 국세청은 부모에게 돈을 빌려 집을 산 경우 증여세 탈루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최근 사후 검증을 강화하고 있다. 현행 증여·상속법상 부모에게 돈을 빌렸다면, 반드시 차용증을 쓰고 당좌대출이자율(올해 연 4.6%) 이상의 이자를 제때 지급해야 한다.

세무조사를 통해 이자 지급 등을 확인할 수는 있지만, 모두 검증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설사 법을 지켰다고 하더라도 나중에 이 돈을 다시 상속 증여할 수 있기 때문에 채무 비용을 치렀다기 보다 ‘유사 증여’에 가깝다는 지적도 나온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지금은 세무 당국이 엄격하게 보고 있지만, 관심이 떨어지면 결국 편법 증여 형태로 악용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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