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출 전 집행' 영장으로 무장한 경찰,'2013년 악몽' 피했다

중앙일보

입력 2021.09.02 16:40

업데이트 2021.09.02 17:24

2일 오전 5시 28분 구속영장을 들고 서울 중구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사무실에 들어선 경찰관들의 표정은 비장했다. 이른 새벽 시간이었지만, 노조원들과의 물리적 충돌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경우 코로나19 감염 확산에 대한 사회적 논란도 우려됐다. 기동대원 일부가 방호복을 착용한 이유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집행은 큰 충돌 없이 40여 분만에 마무리됐다. 이날 작전은 경찰 내부에서도 극도의 보안이 유지됐다고 한다. 핵심 관계자를 제외한 인력들은 영장 집행 2시간 전쯤에야 계획을 전달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내부에서는 ‘2013년의 악몽’을 막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었다고 한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이 2일 오전 중구 민주노총 사무실에서 경찰에 연행되고 있다. 양 위원장은 올해 5~7월 서울 도심에서 여러 차례 불법시위를 주도한 혐의(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감염병예방법 위반 등)로 지난달 13일 구속영장이 발부됐다. 연합뉴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이 2일 오전 중구 민주노총 사무실에서 경찰에 연행되고 있다. 양 위원장은 올해 5~7월 서울 도심에서 여러 차례 불법시위를 주도한 혐의(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감염병예방법 위반 등)로 지난달 13일 구속영장이 발부됐다. 연합뉴스

쓰레기통과 의자가 날아다닌 2013년의 악몽  

구속영장 집행에 관여한 한 경찰관은 “‘어게인(Again) 2013년’이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있었던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지난 2013년의 사건은 철도 민영화 반대 파업 때의 일을 말한다. 김명환 전 철도노조 위원장(전 민주노총 위원장)을 체포하기 위해 민주노총 건물에 경찰이 진입하면서 조합원들과 대치했다. 이 과정에서 수십 명이 다쳤다. 당시 현장에 투입됐던 한 경찰관은 “쓰레기통과 의자가 날아다녔다. 우유 팩을 던져서 곳곳에서 터졌다. 난리도 아니었다”고 말했다.

김명환 전 철도노조 위원장(전 민주노총 위원장) 등 철도노조 집행부에 대한 경찰의 체포영장이 강제 집행된 2013년 12월 22일 오전 서울 정동 민주노총 건물 1층에서 민주노총 노조원들이 팔짱을 끼고 경찰 진입에 대비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명환 전 철도노조 위원장(전 민주노총 위원장) 등 철도노조 집행부에 대한 경찰의 체포영장이 강제 집행된 2013년 12월 22일 오전 서울 정동 민주노총 건물 1층에서 민주노총 노조원들이 팔짱을 끼고 경찰 진입에 대비하고 있다. 연합뉴스

헌재 위헌 결정으로 경찰 ‘판정패’

당시 사건이 경찰에게 더 ‘아픈 기억’인 이유는 ‘법리적 판정패’를 당했기 때문이다. 2013년 사건을 계기로 지난 2018년 헌법재판소가 압수수색 영장 없이 타인의 주거 등을 수색할 수 있도록 한 형사소송법 조항은 헌법에 어긋난다는 판단을 내렸다.

보름 전 1차 영장 집행 시도가 ‘조심스러웠던’ 이유도 그런 이유라는 게 경찰 측의 설명이다. 그러나, 당시 경찰의 수사 태도에 대해서는 비난 여론이 높았다. “정권 창출에 기여한 민주노총의 눈치를 보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경찰 안팎에서도 “민주노총보단 청와대의 눈치를 보는 게 아니겠나” “쓰라린 과거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꼼꼼히 준비하느라 시간이 걸리는 것” 등 의견이 분분했다.

양경수 민주노총 양경수 위원장에 대한 구속영장 집행에 나선 경찰이 2일 오전 중구 민주노총 사무실로 진입하고 있다. 연합뉴스

양경수 민주노총 양경수 위원장에 대한 구속영장 집행에 나선 경찰이 2일 오전 중구 민주노총 사무실로 진입하고 있다. 연합뉴스

법원에 새벽 영장 집행 가능성 소명  

1차 영장 집행 때도 민주노총 측은 ‘수색영장’이 있어야 한다는 문제를 제기했다. 경찰은 이날 집행을 위해 수색영장을 준비했다. 특히, 구속영장에 ‘일출 전 일몰 후’에도 집행할 수 있도록 영장 신청 단계에서 긴급성 등의 사유를 소명했다. 법조계 관계자는 “‘일출 전 일몰 후’엔 영장 집행을 되도록 지양하지만, 이를 강제할 법적 장치는 없다”며 “경찰이 민주노총에 ‘물 먹은’ 적이 있으니 자체적 판단과 의지에 따라 제대로 준비한 것 같다. 보통 이례적 집행 시간대일 경우 신청할 때 별지를 첨부한다”고 말했다.

2일 오전 서울 중구 민주노총 사무실에서 경찰들이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 구속영장 집행을 위해 준비하고 있다. 뉴스1

2일 오전 서울 중구 민주노총 사무실에서 경찰들이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 구속영장 집행을 위해 준비하고 있다. 뉴스1

이날 오전 4시 48분쯤 서울 종로경찰서 수사과장 등은 현장에 도착해 건물 진입로와 내부 구조 등을 꼼꼼히 살폈다. 서울경찰청 7·3 불법시위 수사본부는 오전 5시 28분쯤 영장 집행을 위해 민주노총 사무실이 입주한 경향신문 사옥에 경력을 투입했다. 수사 인력 100여명을 비롯해 41개 부대가 동원되는 등 1000명 안팎의 인원이 투입된 것으로 추산된다. 경찰은 건물 진입 40여분 만인 오전 6시 9분쯤 양 위원장의 신병을 확보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조합원들이 2일 오전 서울 종로경찰서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양경수 위원장 강제 구인 규탄 행동을 하고 있다. 뉴시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조합원들이 2일 오전 서울 종로경찰서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양경수 위원장 강제 구인 규탄 행동을 하고 있다. 뉴시스

삭발식으로 항의한 민주노총 

양 위원장은 오전 6시 30분쯤 호송차에 탑승했다. 양 위원장은 차에 타기 전 민주노총 관계자들을 향해 “10월 총파업 준비 열심히 해달라”고 말했다. 사옥 입구에서 경찰과 민주노총 관계자 간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지만, 8년 전처럼 물건이 날아다니지는 않았다.

민주노총 측은 양 위원장 구속에 대해 “문재인 정권과의 전쟁을 선포한다”면서 “민주노총 죽이기의 결정판인 위원장 강제구인을 강력히 규탄하며 강력한 총파업으로 대응하며 갚아줄 것”이라고 밝혔다. 오후 3시에는 항의의 뜻으로 삭발식과 기자회견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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