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민사소송 이겼다, 상대에 변호사비 몽땅 씌울 수 있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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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김용우의 갑을전쟁(40)

살다 보면 억울한 일이 생겨 소송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민사 소송은 공짜가 아닙니다. 소송하려면 소가에 따른 인지대, 송달료를 납부해야 법원에서 사건 번호를 내어줍니다. 변호사를 선임했다면 선임비도 내야겠지요. 소송 중 감정이 필요하면 미리 수백만 원의 감정료를 법원에 납부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신체 감정을 위해 지정된 병원에 가야 할 때도 마찬가지이고요. 입증에 필요한 증인들의 여비도 법원에 미리 줘야 합니다. 그렇게까지 비용을 들여 소송했는데 졌다면요. 상소하면서 인지대를 또 내야 합니다. 2심의 인지대는 1심의 1.5배입니다. 3심은 2배입니다. 심급마다 따로 변호사를 선임하는 것도 물론이고요.

그렇게 최종 승소했다고 칩시다. 당장 기분은 좋겠지만, 지금껏 들인 비용 생각이 날 것입니다. 법상 당연히 인정받을 수 있는 권리를 확인받기 위해 왜 내가 아까운 돈을 들였나 하는 생각이 드는 건 인지상정이겠지요. 그래서 우리 법은 소송 비용에 대해 패소자 부담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민사소송법 제98조). A가 B에게 1억 원을 달라는 소송을 해서 전부 승소했다면, 법원은 B가 A에게 지급하라는 판결을 하면서 소송 비용은 B가 부담한다고 덧붙입니다. 그러면 A는 소송에 이기기 위해 들어간 비용을 산정해 B에게 청구할 수 있는데요. 이것을 ‘소송비용확정절차’라고 합니다. 소송비용확정절차에서는 소송하면서 들인 인지대, 변호사 보수, 감정료를 모두 산정해서 정산한 후 바로 패소자에게 집행할 수 있습니다.

소송에 이기기 위해 들어간 비용을 산정해 청구할 수 있는데 이를 '소송비용확정절차'라 한다. 소송하면서 들인 인지대, 변호사 보수, 감정료를 모두 산정해서 정산한 후 패소자에게 집행할 수 있다. [시진 Maxpixel]

소송에 이기기 위해 들어간 비용을 산정해 청구할 수 있는데 이를 '소송비용확정절차'라 한다. 소송하면서 들인 인지대, 변호사 보수, 감정료를 모두 산정해서 정산한 후 패소자에게 집행할 수 있다. [시진 Maxpixel]

재판하다 보면 몇 년은 금방 흘러가고 일련의 송사를 겪게 되면 이제 소송은 지긋지긋해진다고들 합니다. 그래서인지 소가가 큰 사건이 아니라면 소송에서 이겨도 개인들은 소송 비용 청구까지는 잘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잠자고 있는 소송 비용도 상당히 많습니다. 물론 최근에는 불경기 속에 소송 비용이라도 회수하려는 신청 역시 꾸준히 늘고 있지만 그래도 전체 소송 건수보다는 미미한 수준이라고 합니다.

소송 비용에는 변호사 보수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유명한 변호사에게 거액의 변호사 보수를 지급해서 승소했다 해도 변호사 보수 전액을 상대방에게 청구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변호사마다 보수를 책정하는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지급한 변호사 비용 전부를 상대방에게 달라고 요구하지는 못합니다. 이때는 법원에서 미리 산정한 기준인 ‘변호사 보수의 소송비용 산입에 관한 규칙’의 기준에 따라 변호사 보수를 상대방에게 청구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A가 B에게 1억 원을 청구해서 100% 승소하면 심급당 740만원의 변호사 보수를 한도로 청구할 수 있습니다. B가 상소하고 A가 3번의 재판에서 모두 이겼다면 A는 B에게 2220만 원의 변호사 보수를 상대방에게 청구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재판에서 무조건 한쪽이 이기는 경우가 있는 건 아닙니다. A는 B에게 받을 돈이 1억 원이라고 주장하며 소송을 했는데, 재판을 해보니 5000만 원은 소멸시효가 지나서 결국 B가 A에게 5000만 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확정했다면 결과적으로 A, B는 절반씩 이긴 셈입니다. 이때 법원은 소송비용 중 A, B가 절반씩 부담한다고 할 겁니다. 이때 A가 소송비용확정절차를 신청했다면, A, B가 들인 모든 소송 비용을 절반으로 나누고 이 비용보다 더 많이 지출했다면 잉여분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보통 법원에서 소송 비용을 아주 정교하게 정하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어 A가 B에게 1억을 청구해서 100만원을 승소했다고 해서 A가 99%, B가 1%의 소송 비용을 부담한다고 판단하지는 않습니다. A가 전액 부담하거나 아니면 B가 10% 정도 부담한다고 판단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소송비용확정은 일반적으로 소송비용부담을 정하는 재판이 확정된 날부터 10년 안에는 청구해야 한다. 10년 안에 승소한 재판이 있었다면 지금이라도 잠자는 권리를 찾을 수 있다는 말이다. [사진 pxhere]

소송비용확정은 일반적으로 소송비용부담을 정하는 재판이 확정된 날부터 10년 안에는 청구해야 한다. 10년 안에 승소한 재판이 있었다면 지금이라도 잠자는 권리를 찾을 수 있다는 말이다. [사진 pxhere]

소송의 상대방이 많아지면 소송 비율을 정하기가 어려운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A가 B를 상대로 9000만원을, C를 상대로 1000만원을 청구하는 하나의 소를 제기해서 전부 승소했다고 칩시다. 보통 판결문에의 소송 비용은 피고들(B, C)이 부담한다고만 기재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민사소송법상 공동소송인은 균등하게 소송비용을 부담하는 것이 원칙이므로 결국 소송 비용은 B, C가 절반씩 부담해야 합니다(민사소송법 제102조 제1항). 하지만 자기보다 9배나 많이 진 B와 동등하게 소송 비용을 부담해야 C의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도 있습니다. 이럴 때를 대비해 법원에서 판결할 때 소송 비용은 B가 90%, C가 10% 부담한다고 C를 배려해주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법원에서 그렇게까지는 잘 해주지 않습니다.

만약 법원의 화해 권고 결정이나 조정을 받아들였다면 어떨까요. 보통 법원이 쌍방이 원만하게 조정을 하게 되면 쌍방에게 소송 비용을 청구할 수 없도록 ‘소송비용은 각자 부담한다’라는 문구를 조정 조항에 넣습니다. 이때는 상대방에게 더는 소송 비용을 청구할 수 없습니다.

소송비용확정은 일반적으로 소송비용부담을 정하는 재판이 확정된 날부터 10년 안에는 청구해야 합니다. 따라서 10년 안에 승소한 재판이 있었다면 지금이라도 잠자는 권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10년 안에 진 재판이 있었다면 소송 비용을 물어줘야 할 수도 있음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국가는 다릅니다. 대법원은 최근 국가가 청구할 수 있는 소송비용청구권의 소멸시효는 10년이 아니라 5년의 소멸시효가 적용된다고 판단했습니다(대법원 2021. 7. 29. 선고 2019머6152). 이 사건에서 담당 공무원은 국가가 당사자가 된 사건도 일반적인 경우와 마찬가지로 10년 안에만 소송비용청구를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가, 5년이 지나서야 소송 비용을 청구했는데, 법원에서는 받아주지 않은 것입니다. 따라서 대한민국과 민사 소송을 했다가 졌다고 하더라도 이미 5년이 지났다면 이제는 소송 비용까지 물어줄 걱정은 한시름 놓아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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