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언의 '더 모닝'] 부산대의 거짓 발표, 정말 '착오'이길 바랍니다

중앙일보

입력 2021.09.02 08:06

업데이트 2021.09.02 08:21

안녕하세요? 오늘은 지식인의 책무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박홍원 부산대 교육부총장이 24일 부산대학교 본관 3층 대회의실에서 조민 부산대의료전문대학원 졸업생에 대한 입학 취소를 발표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박홍원 부산대 교육부총장이 24일 부산대학교 본관 3층 대회의실에서 조민 부산대의료전문대학원 졸업생에 대한 입학 취소를 발표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지식인은 정부나 기업에 쉽게 포섭되지 않으며, 일상적으로 망각되거나 은폐되는 모든 사람과 쟁점들을 대변하는 것을 자신의 존재 이유로 삼습니다. 지식인은 보편적인 원칙을 기초로 하여 이런 일들을 해냅니다.’ -에드워드 사이드의 『지식인의 표상』(Representations of Intellectual)에서.

‘‘지식인의 책무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지식인의 책무는 진실을 말하는 것이다!”라고 간단하게 대답할 수 있다. (중략) 도덕적 행위자로서 지식인이 갖는 책무는 ‘인간사에 중대한 의미를 갖는 문제’에 대한 진실을 ‘그 문제에 대해 뭔가 해낼 수 있는 대중’에게 알리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 뻔한 소리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아 문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가 속한 지식인 계급의 기본적인 실천 원리가 이 기초적인 도덕률조차 거부하기 때문이다.’ -노엄 촘스키의 『지식인의 책무』에서.

인류 대표 지식인이 교수입니다. 그들이 모여 활동하는 곳이 대학입니다. 시민은 교수와 대학의 진실성을 믿습니다. 성직자ㆍ법관과 더불어 그들을 시비(是非)와 선악(善惡)의 판단자로 여깁니다. 매일 아침 신문을 펼치면 교수님 수십 명의 글과 코멘트가 보입니다.

부산대 부총장은 지난달 24일 조민씨 의학전문대학원 입학 취소 결정(예비 처분)을 발표하면서 크게 두 가지 ‘거짓’을 말했습니다. 학부 성적 기준으로 최종 경쟁자 30명 중 3등이었다는 것과 지금까지 허위로 드러난 ‘스펙’과 관련한 내용이 자기소개서에 기재돼 있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경심씨에 대한 판결문을 근거로 한 언론 보도로 그 말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3등이 아니라 24등이었습니다. 자기소개서에 허위 스펙 관련 기술이 상당 부분 포함돼 있었습니다. 부산대도 인정했습니다.

부산대는 입학전형공정관리위원회의 ‘착오’라고 해명했습니다. 정말 착오가 일으킨 단순한 실수였으면 좋겠습니다. 조씨가 가짜 표창과 인턴 경력을 제시하지 않았어도 15명의 최종 합격자에 너끈히 포함될 만한 응시자였다는 것을 강변하려고 날조한 거짓이 아니기를 바랍니다. 대학이 그 정도로 타락하지는 않았다고 믿고 싶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의심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법원 판결의 기초가 된 자료를 보낸 곳이 부산대입니다. 온 나라가 주목한 일인데 실무자가 24등을 3등으로 착각했다는 것도 이상합니다. 판결문만 봐도 훤히 알 수 있는 일인데 그런 ‘오류’가 발생했다는 것도 상식적이지 않습니다. 판결문을 입수하지 못했을 수도 있겠지만, 만약 그랬다면 그것도 정상은 아닙니다. 판결문은 일반인에도 공개됩니다. 법원에서 열람과 사본 출력이 가능합니다. 사정이 이러니 대학본부의 입학 취소 결정을 막으려고 입학전형공정관리위원회가 '허위조작정보'를 보고서에 넣은 것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누가 어떤 과정에서 착오를 일으켰는지, 왜 그 오류가 발표 때까지 걸러지지 않았는지를 소상히 설명하지 않으면 부산대가 이런 의혹에서 벗어나기가 어려울 듯합니다. 지식인이, 그들의 공동체인 대학이 진실성을 의심받는다면 존재의 기반이 흔들리는 것입니다. 촘스키가 ‘지식인의 책무는 진실을 말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원칙을 지키는 것은 때로 매우 고통스럽습니다.

부산대의 설명이 기사에 담겨 있습니다. 이 정도로 끝낼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조민 성적 3등이라더니 24등…부산대 “내부 착오” 해명
 부산대가 지난달 24일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딸 조민씨의 의학전문대학원(의전원) 입학 취소 결정을 내리면서 “조씨의 대학성적이 3위였다”고 설명한 것은 착오였다는 해명이 나왔다.

1일 부산대에 따르면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의 1심 판결문에 조씨의 대학성적은 부산대 의전원 1단계 전형 합격자 30명 중 24등으로 명시돼 있다. 입학원서와 자기소개서로 평가하는 서류평가에선 19등을 했다. 부산대 관계자는 “입학전형공정관리위원회(공정위)가 지난달 19일 대학본부 측에 제출한 보고서 내용을 박홍원 부총장이 인용해 발표했는데, 공정위에서 뭔가 착오를 일으켜 잘못 보고한 것으로 보인다”고 해명했다.

박 부총장이 “조씨가 자기소개서에 허위 경력과 동양대 표창장 내용을 거의 인용하지 않았다”고 말한 것 또한 사실이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

정 전 교수 1심 판결문에 따르면 조씨는 자기소개서 4번 문항인 ‘수상 및 표창 실적’란에 동양대 총장 표창장 수상 이력을 기재했다. 또 조씨는 입학원서 경력란과 자기소개서 중 ‘의전원 지원을 위한 준비활동’란에 다양한 인턴 경력을 적었다.

1심 재판부는 “만약 조씨가 입학원서와 자기소개서에 동양대 총장 표창장 수상 사실을 기재하지 않고 위조된 표창장을 제출하지 않았다면 서류평가에서 더 낮은 점수를 받아 1단계 전형에서 탈락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조씨의 서류평가 15.5점을 포함한 1단계 총점(63.75점)은 1단계 탈락 1번 점수(61.82점)와 1.93점 차이밖에 나지 않아서다.

부산대 관계자는 “공정위의 잘못된 조사로 대학 신뢰도 하락을 자초한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부산=이은지 기자 lee.eunji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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