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의 5선 중진 이상민(대전 유성을) 의원은 31일 여당 추진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지혜롭지 못한 법안”이라고 불렀다. 법안 실효성과 정무 측면에서 모두 득보다 실이 크다는 판단 때문이다. 대선 경선이 진행 중인 민주당에서 이 의원은 중앙당 선거관리위원장 직도 맡고 있다. 그런만큼 이날 인터뷰에서 그는 대선에 미칠 악영향에 대해 먼저 우려했다.
- 언론중재법을 일방 처리했을 때 대선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 “정무적으로 대선을 앞두고 슬기로운 행동이 아니다. 국민들은 힘 자랑 하는 거 좋아하지 않는다. 열혈 지지자들로부터 ‘다수 의석 있을 때 하고 싶은 거 빨리 하라’는 압박이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논의가 숙성되지 않고, 합리적 안도 안 나온 상태에서 밀어붙이는 건 국민들이 좋게 볼리가 없다. 오만하다, 독선적이다라는 시각으로 바라볼 가능성이 크다.”
- 강행파는 숙성 기간을 충분히 거쳤다는 입장이었는데
- “일방적이고 자기중심적 주장이다. 야당 뿐 아니라 시민·사회단체가 다 반발하는 건 그 자체로 충분히 논의가 안 됐음을 증빙하는 것이다. 최소한 상대방이 ‘공론화 과정을 충분히 거쳤고 결론 단계에 이르렀다’ 수긍할 정도가 돼야한다. 일방 주도하는 쪽에서 논의를 했다고 숙성이 끝난 게 아니다.”
- 여당 대선주자들은 대체로 통과에 찬성 입장이었다
- “당내 열혈 지지자 의식하고 그랬을 가능성이 높다. 경선을 앞둔 입장에서 표를 염두에 두고 그러지 않았을까 짐작한다.”
“고의·중과실 추정규정 굉장히 불투명”
이 의원은 “이 법으로 언론개혁이 될까. 절대 그렇지 않다. 본질적 문제들이 있는데 징벌적 손배제 하나에 사활을 거는 것은 매우 지혜롭지 않다”며 법안의 구체적 내용도 문제 삼았다. 법률가 출신인 이 의원은 ‘가장 문제가 되는 조항이 뭐냐’는 질문이 채 끝나기도 전에 “법률상 (고의·중과실) 추정규정”이라고 지적했다.
예상보다 강한 어조였다. “법률상 추정은 한쪽에 손을 완전히 들어주는 아주 예외적인 제도다. 경험칙상 A사실과 B사실의 개연성이 거의 인정될 때 입증의 곤란함을 덜어주기 위해 법률상 추정을 하는 거다. 아무 때나 입법적으로 추정을 넣으면 안 된다”고 이 의원은 목소리를 높였다.
- 언론중재법 고의·중과실 추정 규정의 구체적 문제는?
- “보복적·반복적 허위·조작 보도를 추정 대상으로 삼고 있는데, 보복적이라는 건 법률용어도 아니고 주관적이다. 반복적이라는 건 2회냐, 3회냐. 그것 만으로 고의 또는 중과실이 추정된다는 게 개연성이 없다. 연속 추적보도를 하면 반복적·보복적이라고 고의 또는 중과실이 있다고 추정할 건가. 앞으로 보도·취재에 크나큰 제약으로 작용할 것으로 본다. 조작보도 역시 굉장히 불투명한 개념이다”
- 열람차단청구권도 논란이 되고 있다
- “사전 차단보다는 사후 삭제 개념으로 바꾸는 게 옳다고 본다. 불법 허위 보도로 결론이 나고 인격권·사생활 침해로 인정됐을 때 기사가 돌아다니지 못하게 조치하는 식이다.”
-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에 대해선 어떻게 보나
- “우리나라 같은 대륙법계에선 명예훼손도 형사 책임을 묻는다. 손해배상(민사)은 일반 법리에 따른다. 반면 영·미법계에선 인격권 침해, 명예훼손 등을 민사상 손배로만 해결한다. 우리나라는 사실 적시 명예훼손까지 범죄로 보는데, 징벌적 손배까지 하는 건 과중한 책임일 가능성이 높다. 징벌 손배를 하지 않더라도 법원 재량으로 양형 기준을 마련하는 방법으로 해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 사실상 반대 입장 같다
-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법제화해야 피해자 구제가 두텁게 된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징벌적 손해배상액 상한이 대체로 3배인 걸 감안하면, 피해액의 5배 규정도 과하다. 변호사비용이 승소액수보다 더 큰 게 문제라면 700~1000만원 정도로 하한선을 두는 건 어떨까 하는 게 내 생각이다.”
당내 강경파 향해 “조급한 개혁 실패한다” 쓴소리
언론중재법 반대 입장 때문에 이 의원은 최근 민주당 강성지지층의 문자 폭탄에도 시달렸다. 이 의원은 “하루 수백통에서 1000여 통 이상이지만, 이제 내성이 생기고 무뎌져서 충격은 덜하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대신 이들을 의식해 이른바 ‘개혁정치’에 드라이브를 거는 원내 강성 그룹을 향해 “지금이 아니면 어렵다는 조급증에 빠져있다”고 쓴소리를 했다.
- 강경파의 조급증은 뭐가 문제인가
- “조급한 개혁은 반드시 실패한다. 지난 번엔 검찰개혁, 이번엔 언론개혁 유행 따라 가듯이 이렇게 하는 건 옳지 않다. 만주벌판에서 말 타고 다니면서 ‘내땅이다’ 소리 지르고 다니면 내 땅이 되나. 경계지표도 세우고 관리도 하고 누가 봐도 내땅이라고 인정도 하고 등기도 하고 그래야 한다. 법 하나 만들고 제도 하나 만들고 끝났다고 하는 건 단견이다.”
- 검수완박(검찰수사권 완전박탈)의 정기국회 처리 주장도 나온다
- “그렇게 해선 안 된다. 수사권 조정하고 공수처 생긴게 불과 지난해다. 아직 시행도 잘 안 되고 있다. 지금은 거름 주고 물 주며, 제도가 착근하는지 살펴볼 때다. 다시 뿌리를 들어서 새로 심자고 할 때가 아니다.”
이 의원은 27일 처리를 합의한 언론중재법에 대해서도 “언론 및 시민단체 참여 통한 집단지성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사회적 논의 기구를 마련해서 언론 신뢰를 높이고 자유 보장하는 방안, 피해자 구제를 두텁게 하는 논의기구를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또 “1인 미디어, 유튜브에 대한 규제는 누락돼 있는 등 미비점을 보완하는 것도 필수”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