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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언론법' 비판 이전…文정부에 23차례 인권 서한 보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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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유엔의 인권 주무조직인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가 문재인 정부 들어 23차례 한국에 인권 관련 조치를 주문하거나 질의하는 서한을 전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앞선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와 비교해도 각각 약 두 배정도 많은 수치다.

이명박ㆍ박근혜 정부 대비 '2배' #대북 정책 연관 인권 서한만 4건

아이린 칸 유엔 인권 특별보고관이 지난달 27일 정부에 보낸 언론중재법 개정안 관련 우려를 담은 서한.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 홈페이지. 서한 캡쳐.

아이린 칸 유엔 인권 특별보고관이 지난달 27일 정부에 보낸 언론중재법 개정안 관련 우려를 담은 서한.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 홈페이지. 서한 캡쳐.

文정부 앞 인권 관련 서한 23건 

1일 OHCHR 홈페이지와 외교부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난 2017년 5월 10일부터 2021년 9월 1일 현재까지 OHCHR의 유엔 인권특별보고관이 한국 정부에 보낸 서한은 총 23건이다. 가장 최근의 서한은 언론중재법 개정안 관련(2021년 8월 27일)으로 서한을 작성한 아이린 칸 유엔 보고관은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그대로 채택될 경우 의도와는 정반대 결과를 낳을 것"이라며 법안의 자의적 해석과 표현의 자유 침해 우려를 A4 용지 4장에 걸쳐 구체적으로 지적했다.

유엔 인권 보고관들은 유엔 회원국 내 개인·단체로부터 진정을 접수하거나 자체 조사를 거쳐 각국에 인권 침해가 우려되거나 인권 관련 제언을 할 경우 서한을 보내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한다. 유엔의 서한을 받으면 각 정부는 입장을 담아 회신해야 하고, 서한과 정부의 답변 모두 홈페이지를 통해 일반에 공개된다.

문재인 정부는 2017년(6월~12월) 3건, 2018년 5건, 2019년 3건의 서한을 받았고, 지난해는 7건, 올해는 이달 1일까지 5건을 받았다. 앞서 이명박 정부에선 12건, 박근혜 정부에선 13건의 서한을 받았다.

역대 정부별 유엔 인권 특별보고관 서한 건수.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역대 정부별 유엔 인권 특별보고관 서한 건수.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대북 정책 관련 인권 우려 서한 늘어 

문재인 정부에서 받은 인권 관련 서한엔 ‘양심적 병역거부 처벌’ ‘가습기 살균제 피해 지원’ 등 유엔이 그간 한국 정부를 상대로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해 왔던 사안도 있고, ‘문화계 블랙리스트’, ‘법관 사찰’ 등 박근혜 정부에서 불거진 문제에 대해 문재인 정부의 대책을 묻는 서한도 있다.

그럼에도 유엔의 인권 관련 서한이 현 정부에서 증가한 건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과 연계된 이슈에 대한 인권 우려 서한이 늘었기 때문이다. 2020년 이후 한국 정부를 향한 인권 관련 서한엔 탈북 선원 2명 강제북송 우려(2020년 1월 28일), 통일부의 북한 인권 및 탈북민 단체 25곳 감사 관련 우려(2020년 9월 30일), 해수부 공무원 피살 사건 관련 정부의 정보 제공 및 진상 규명 요청(2020년 11월 17일), 대북전단금지법 관련 표현의 자유 침해 우려(2021년 4월 19일) 등 4건이 포함됐다. 모두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 추진 과정에서 빚어진 인권 침해 우려에 관한 지적이다.

정부가 국제사회의 상궤를 무시한 채 남북 관계 개선에만 집착하면서 보편적 인권을 도외시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 이유다.

언론중재법 개정안의 문제점을 유엔에 알렸던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의 신희석 박사는 "문재인 정부가 지난해에는 북한 인권 문제를 묵살한 사실상의 공범으로 지적받다가, 올해 들어선 국내 이슈에서도 시민단체와 언론의 자유를 탄압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유엔, 문재인 정부에 23차례 인권 관련 서한.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유엔, 문재인 정부에 23차례 인권 관련 서한.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유엔 우려에 '동문서답' 답변 지적도   

유엔의 인권 관련 서한이 현 정부 들어 급격히 늘어난 데 대해 정부는 국내 개인과 단체가 과거보다 더 적극적으로 유엔에 한국의 인권 실상을 알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외교부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 시기(2017년 5월 10일~2021년 9월 1일)에 한국이 23건의 서한을 받을 동안, 미국은 110건, 영국은 41건, 프랑스는 31건, 호주는 26건의 서한을 받았다. 반면 같은 기간 북한이 받은 서한은 6건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보다 더 많은 서한을 받은 선진국이 있다고 해서 문재인 정부의 인권 감수성이 인정받는 것은 아니다. 

정부를 향해선 유엔의 인권 우려 제기에 동문서답식 답변만 반복한다는 비판이 잇따른다. 정부는 지난 7월 대북전단금지법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유엔 측의 우려에 약 석달 만에 답장을 보내면서 "대북전단금지법은 표현의 '수단'(means)을 제한하는 것이지 '내용'(content)을 제한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논리를 폈다. 이에 유엔 측은 "잘못된 해명"이라고 반박했고, 국제 인권단체는 "터무니없고 비논리적"이라고 비판했다.

지난해 11월 해수부 공무원 피살 사건과 관련한 유엔의 우려에 대해서도 정부는 약 두 달 만에 답변하면서 "진상 규명을 위해선 남북 간 합동 조사가 필요하다"며 "한국은 이를 위해 북한에 군 통신선 복구를 요청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정작 지난 7월 27일 남북 통신선을 개통하면서 ‘합동 조사’에 대한 정부의 언급은 없었다.

정부는 언론중재법 개정안과 관련한 유엔의 지적에 대해선 국회 논의 과정을 지켜본 뒤 오는 27일 본회의 이후 관련 부처의 입장을 종합해 유엔에 답변서를 보낸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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