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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몰래 추진’ 1년뒤 알았다…학부모 뒤통수 친 ‘미래학교’

중앙일보

입력

지난달 31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촌동에 위치한 신용산초등학교의 정문 앞에 '그린스마트 미래학교' 사업 선정 철회를 요구하는 조화가 세워져있다. 이가람 기자

지난달 31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촌동에 위치한 신용산초등학교의 정문 앞에 '그린스마트 미래학교' 사업 선정 철회를 요구하는 조화가 세워져있다. 이가람 기자

‘제2의 혁신학교’라는 비판을 받으며 학부모들의 거센 반발에 직면한 ‘그린스마트 미래학교’(미래학교) 사업이 이번엔 졸속 추진 논란에 휩싸였다. 미래학교 사업은 문재인 정부의 역점 사업인 ‘한국판 뉴딜’의 대표 과제 중 하나다. 절차상의 하자 등을 이유로 학부모들의 철회 요구가 빗발치지만, 교육 당국은 필요에 따라 사업을 강행한다는 방침이어서 논란은 더 확산할 전망이다.

사업철회 요청에도 市교육청 “강행 가능”

1일 중앙일보 취재에 따르면 이날까지 미래학교 사업에서 개축 대상으로 선정된 서울 소재 학교 93개교 중 5곳이 서울시교육청에 사업 철회를 요청했다. 그러나 아직 철회가 승인된 학교는 없다. 건물을 새로 짓는 대신 부분적으로 고치는 리모델링 대상 학교 중 6곳은 학부모들의 반발로 이미 사업이 철회됐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리모델링과 달리 개축 대상에 선정된 학교는 학교 시설의 전반적인 노후화로 인해 사업의 필요성이 크다고 판단된다”며 “종합적인 검토가 이뤄지겠지만 개축이 아니고선 시설 안전성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철회 요청에도 사업은 계속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제2혁신학교 우려에 학부모들 집단 반발

지난달 31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촌동에 위치한 용강중학교의 정문 인근에 '그린스마트 미래학교' 사업 선정 철회를 요구하는 조화가 세워져있다. 이가람 기자

지난달 31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촌동에 위치한 용강중학교의 정문 인근에 '그린스마트 미래학교' 사업 선정 철회를 요구하는 조화가 세워져있다. 이가람 기자

미래학교 사업에 선정된 일부 학교의 학부모들은 이 사업이 ‘노후학교 개선사업’이 아닌 사실상의 ‘제2의 혁신학교 추진’이라며 반발하는 상황이다. 지난 2월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그린스마트 미래학교 종합 추진계획’을 발표하며 “이 사업은 2020 교육과정 개정과 고교학점제, 교육청의 혁신사업과 적극적으로 연계 추진될 것이다”고 밝혔다. 학부모들은 학생 선택형 학습·맞춤형 개별학습·체험형 환경교육 등을 목표로 내세운 미래학교가 학생들의 학업능력 저하를 가져올 것으로 우려한다. 혁산학교 추진 때와 비슷한 반발이다.

아울러 최장 3년이 예상되는 공사 기간 학생들이 ‘임대형 이동식 교실’(모듈러 교실)에서 수업을 받고 학교생활을 해야 하는 점에 대해서도 학부모들은 학습 환경에 차질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한다. 미래 학교는 학교 시설을 개방해 지역주민들과 공유하는 ‘학교 복합화’를 추구하는데, 이에 대해서는 교내 치안 문제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의견수렴 과정 없이 신청, 학부모들 “뒤통수 맞았다”

지난달 31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촌동의 한 카페에선 신용산초등학교와 용강중학교 학부모들이 '그린스마트 미래학교' 사업 선정 철회를 촉구하며 서명운동을 진행했다. 이가람 기자

지난달 31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촌동의 한 카페에선 신용산초등학교와 용강중학교 학부모들이 '그린스마트 미래학교' 사업 선정 철회를 촉구하며 서명운동을 진행했다. 이가람 기자

학부모들은 학교 측이 학부모들의 의견 수렴 없이 일방적으로 미래학교 사업을 추진했다며 절차상의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일례로 서울 용산구 이촌동에 위치한 신용산초등학교와 용강중학교의 학부모들은 지난달 24일 자녀가 다니는 학교가 미래학교 개축사업 대상으로 선정됐다는 소식을 통보받았다.

중앙일보가 입수한 공문에 따르면 두 학교는 지난해 9월 말 관할 교육청으로부터 ‘그린스마트스쿨 사업 수요조사 관련 학교 의견 요청’ 공문을 받았고, 일주일 뒤 두 학교 모두 “개축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회신했다. 이후 이듬해 6월 미래학교 개축사업 대상학교로 선정됐다는 공문이 학교에 발송됐다. 약 1년 전부터 학교가 미래학교 사업에 참여하고 선정되는 과정 내내 학부모들은 관련 사실을 전혀 몰랐던 셈이다.

학부모들은 사업의 원칙과 절차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교육부가 발표한 추진계획에 나오는 학생·교직원·학부모·지역주민이 참여하는 ‘사용자 참여 원칙’이 무시됐다는 것이다. 또 서울시 학생인권조례에 명시된 “학생이 정책 결정에 참여할 권리”를 학교 관계자들이 위반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학부모들은 교장 등을 대상으로 교육청에 인권 침해 신고서를 접수하기도 했다. 그러나 미래학교 사업을 신청할 당시의 교장은 모두 지난달 31일 자로 전근을 가거나 정년퇴임을 한 상황이다.

‘입안’ 교육부와 ‘실행’ 시교육청 입장 엇갈려

미래학교 신청을 둘러싼 절차상의 문제가 불거지자 교육부 관계자는 “미래학교 신청 과정에서 학부모들의 의견 수렴이 필수라는 내용이 법령이나 규정에 명시된 것은 아니지만, 이 사업 자체가 여러 학교 구성원의 참여를 바탕으로 하는 정책방향성을 지니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교육부가 발표한 종합 추진계획에도 사업 신청 과정에서 학교운영위원회 등을 거쳐 추진 여부를 결정하거나 학생과 학부모 등이 참여하는 의견수렴체제를 마련해야 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고 덧붙였다.

반면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교육청은 학교를 대상으로 수요조사를 진행했고 그 결과에 따라 사업을 진행한 만큼 절차상의 하자가 있다고 보지 않는다”며 “사업에 대한 홍보가 부족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일부 학교가 학운위나 학부모 의견 수렴을 거치지 않고 사업을 신청했다고 해서 사업을 철회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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