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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외국기업이 잠식한 광고산업에 ‘범’ 내려오게 하려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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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낙회 한국광고총연합회 회장·전 제일기획 대표

김낙회 한국광고총연합회 회장·전 제일기획 대표

요즘 K만 붙으면 클래스가 달라지는 K시리즈 곳곳에 ‘범’이 내려오고 있다. K무비는 영화 ‘기생충’과 ‘미나리’로 2년 연속 미국 아카데미와 프랑스 칸 영화제를 들었다 놨다 했다. K팝의 BTS는 히트송 ‘버터’로 9주 연속 빌보드 정상을 점령하는 대기록을 세웠다.

K애드(광고)에도 범이 내려오고 있다. ‘범 내려온다’라는 키워드 자체를  전 세계에 유행시킨 한국관광공사의 광고가 대박을 쳤다. 유튜브·페이스북 누적 조회 수 6억 뷰 이상을 달성하며 세계인의 시선과 뜨거운 호응을 끌어냈다.

취업과 생산 유발효과 큰 광고업
게임·만화처럼 “광고진흥법” 필요

또한 지난해  코엑스의 대형 전광판에 거대한 파도(wave)가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동영상으로 전 세계 SNS와 언론들의 주목을 받았던 영상 제작사 디스트릭트는 7월 말 뉴욕에 진출했다. 우리 기술로 뉴욕 타임스퀘어의 초대형 전광판에 디지털 폭포가 쏟아지게 하고, 그 건너편 축구장 2배 크기의 초대형 스크린에는 고래가 춤을 춘다. 지구촌 광고업계의 올림픽이라고 하는 칸 국제광고제에서 국내 광고가 수상했다는 소식은 이제 너무 흔한 일이 됐다.

그러나 이러한 광경들은 K애드라는 무대의 앞에서 본 모습이고, 무대 뒤로 돌아가 보면 전혀 다른 모습이 보인다. 첫째, 외부 지원 없이는 생존이 불가능해 보이는 중소 광고사업자들의 힘겨운 사정이다. 전체 광고 사업자의 97.5%(7600여 개사)가 50인 이하의 소규모 중소 사업자다.

특히 코로나19 대유행의 직격탄을 맞은 옥외·행사, 극장광고, CF 제작사 등 전문 광고회사들은 코로나 사태 이후 여행사들이 처한 상황과 동일하다. 그뿐만 아니라 아이디어와 열정으로 시작한 광고 관련 디지털 스타트업 회사들은 이제 외부 지원 없이는 한 걸음도 더 나아갈 수 없는 상황이다.

둘째, 디지털 광고 전문 인력 양성이 시급하다. 모든 것이 새롭게 바뀐 상황인 만큼 새롭게 인력을 양성하지 않으면 업(業)의 존립이 불가능해 보인다. 셋째, 우리가 어렵게 키워온 K애드 자체가 아예 사라질 위기다. 전체 광고에서 디지털 광고가 차지하는 비중이 이미 50%를 넘었다. 그 디지털 검색 광고의 79% 이상은 구글·페이스북 등 해외 기업이 가져간다.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를 활용하는 글로벌 기업들이 속속 국내에 들어와 영토를 확장하고 있다. 발 빠르게 대응하지 않으면 광고는 성장하지만, K애드는 사라지게 될 위기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 광고단체 전체를 대변하는 한국광고총연합회가 창립 50주년을 맞아 10만 광고인의 목소리를 모아 봤다. 광고인들이 국가에 바라는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광고산업 진흥법 제정이다. 우리나라 콘텐트 산업(126조원)은 반도체 산업 규모를 넘볼 정도로 커지고 있고, 한국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영역이기도 하다.

콘텐트 산업에서 광고의 취업 유발효과는 1위, 생산 유발 효과는 2위를 차지할 정도로 경제 발전의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데도 게임·음악·만화 등 다른 콘텐트 분야에는 진흥법이 있는데, 유독 광고 분야만 산업을 진흥하고 육성하는 근거법이 없다.

다른 하나는 광고담당 정부 부처의 일원화다. 지금은 옥외 광고는 행정안전부, 인터넷 모바일 광고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인쇄 광고는 문화체육관광부, TV 광고는 방송통신위원회로 나뉘어 있다.

온·오프의 경계가 사라지고, 스피드와 통·융합이 절실한  디지털 시대에 광고 산업의 발목을 잡는 구태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광고 진흥 정책을 일관적·체계적으로 총괄하고 글로벌 시장을 잘 선도할 수 있게 일원화된 컨트롤 타워를 학수고대한다. 세계 광고 시장에 ‘K애드의 범’이 계속 내려오도록 하기 위해 광고진흥법 제정과 정부 부처 일원화를 거듭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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