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이주호의 퍼스펙티브

“대학을 숨쉬게 하라” 총리실로 편제해 자율성 키워야

중앙일보

입력 2021.09.02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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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미래 혁신 국가 만들기

이주호 케이정책플랫폼 이사장·아시아교육협회 이사장·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이주호 케이정책플랫폼 이사장·아시아교육협회 이사장·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내년 3월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 상대방 흠집 내기와 여론몰이에만 힘을 쏟으면서 미래 비전 경쟁이 보이지 않는다. 대한민국은 광복 후 건국·산업화· 민주화 등을 이루었지만, 지금은 분열과 불안의 먹구름이 한반도를 짙게 뒤덮고 있다. 강대국 간 패권 경쟁, 기후 변화에 따른 위기, 변종 바이러스 확산, 세계 최하위 수준의 출산율, 확대되는 빈부 격차 등 대한민국은 대내외적으로 흔들리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지도자들과 지식인들은 시야를 멀리 두고 국력을 모아 모두 함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국가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광복 후 100년 대한민국은 어떤 나라가 되어야 할까. 필자는 2045년 대한민국을 세계 최고의 혁신 국가로 만드는 비전을 함께 디자인할 것을 제안한다. 혁신 국가가 되려면 무엇보다 건강한 혁신 생태계를 조성하여야 한다. 혁신 생태계란 창업가·기업가·연구자·투자가·공무원·시민·정책 전문가 등이 지속해서 협력하고 또 경쟁하면서 고위험·고가치의 연구·개발을 바탕으로 새로운 사업 모델, 플랫폼, 상품, 산업을 만들어내면서 사회 혁신과 정부 규제 혁신도 끊임없이 일어나도록 진화하는 체계다. 만약 대한민국을 세계 최고의 혁신 국가로 만드는 데 국력을 모을 수 있다면 한반도를 뒤덮었던 먹구름을 말끔하게 걷어낼 수 있다.

실리콘밸리엔 스탠퍼드대 같은 허브 역할 맡은 대학 있어
한국은 교육부 통제로 대학이 산업 생태계 이끌지 못해
자유로운 두뇌집단이 핵심, 연구자·기업가 등 협력 절실
국방개혁도 필수 … 군과 스타트업 공조하는 미국 배워야

소외계층 해소하는 포용적 사회

이주호의 퍼스펙티브

이주호의 퍼스펙티브

혁신 국가의 비전으로 오랫동안 국론을 분열시키고 갈등을 증폭시켰던 이분법적 이념 갈등을 극복하고 국가 통합을 강화할 수 있다. 혁신 국가에서는 성장과 분배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기 때문에 이분법에 근거한 낡은 이념들은 설 땅을 잃게 된다. 경제성장은 더는 노동과 자본을 많이 투입하는 것보다 새로운 상품을 새로운 방식으로 만들어 내는 혁신에서 동력을 찾아야 한다. 형평성의 제고를 위해서도 교육·복지·노동·보건 분야에서 소외계층을 위하여 새로운 방식으로 더 나은 서비스를 가능하게 하는 혁신보다 더 좋은 수단이 없다.

주요 사회 분야의 혁신은 이미 포용적 사회로 가는 핵심 수단으로 등장하고 있다. 최근 아시아교육협회는 우리나라 탈북학교·애육원·다문화센터 등 소외 계층 학생 1200명에게 AI(인공지능) 개인 교사를 활용한 하이터치 하이테크 교육을 시행하여 큰 성과를 보았다. 이처럼 신기술을 활용하여 소외계층의 문제를 해소하는 포용적 혁신이야말로 사회 난제를 하나하나 해결할 것이다. 대한민국이 어느 나라보다도 앞서서 첨단 교육공학과 교수·학습 방식의 혁신을 결합하여 건강하고 창의적이고 열정적인 인재를 길러낼 수 있는 나라로 만드는 비전은 그동안 희망을 잃어가던 교육자들과 학부모들의 가슴을 다시 뛰게 할 것이다.

군림하는 정부는 이제 의미 없어

또한 혁신 국가의 비전은 우리 사회의 국가주의적 요소를 해소하고 자유·정의·평등·평화 등의 보편적 기본 가치를 더욱 신장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정부가 권위와 통제의 힘과 하향식 운영 방식에만 계속 의존해서는 혁신뿐만 아니라 기본 가치도 더 신장할 수 없다. 따라서 정부는 모든 것을 통제하고 규제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혁신 생태계를 조성하는 데 집중하여야 한다. 언제 어디서나 군림하려 들었던 정부를 대체하여 혁신 생태계의 새로운 허브들이 자율적으로 커나가도록 하여야 한다. 다음 정부에서는 특히 대학과 정부 출연 연구기관, 지역과 도시, 국방 기관 등이 혁신 생태계의 허브가 되도록 해야 한다.

실리콘밸리와 같은 세계적인 혁신 생태계에서는 스탠퍼드대학과 같이 허브 역할을 하는 대학이 있다. 그러나 우리 대학들은 오랫동안 교육부의 관료적 통제에 길들어 혁신 생태계의 허브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대학은 더는 교육만 하는 기관이 아니다. 대학이 교육에 더하여 연구·개발 기능, 더 나아가 혁신 생태계의 허브 역할까지 하여야 하는 상황에서 교육부 통제 아래 두어서는 세계 최고의 혁신 국가가 될 수 없다는 걸 인식해야 한다.

대학과 과학기술정통부 출연 연구기관들을 총리실 산하에 있는 인문사회과학 출연 연구기관들과 함께 총리실 산하로 편제해 근본적으로 정부 통제로부터 벗어나도록 하고 대학과 정부 출연 연구기관이 두뇌 집단으로서 혁신 생태계의 허브 역할을 하도록 자유롭게 하여야 한다.

지역과 도시에 많은 권한 넘겨야

혁신 생태계의 허브로 반드시 주목해야 할 또 다른 부분은 지역과 도시이다. 인구가 작은 도시 국가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혁신 국가들은 중앙 정부가 아니라 지방자치단체가 혁신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한다. 지금 우리처럼 산업자원부와 중소벤처부 같은 중앙 정부가 지방정부와 중복하여 혁신 정책을 관장해나가는 것은 한계가 있다. 도시와 지역이 혁신 생태계를 키워나가는 중심 역할을 맡아야 한다. 다음 정부에서는 산업자원부와 중소벤처부에 집중된 권한을 지방에 이양하는 혁신 정책의 분권화를 강하게 추진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국방을 혁신 생태계의 핵심 분야로 전환해야 한다. 미국 국방부 산하의 국방고등과학연구원(DARPA)은 인터넷에서부터 무인 자동차와 로봇에 이르기까지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과학기술을 개발하였다. 최근 미국 공군은 우주항공 분야를 비롯해 AI와 로봇 등 최첨단 기술 분야에서 스타트업과 혁신 파트너십을 구축하기 위하여 스타트업들이 가장 선호하는 투자자가 되겠다는 비전을 밝히고 에어포스벤처스(Air Force Ventures)라는 투자회사까지 만들었다.

우리도 북한의 핵 위협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면서 오랜 역사에 걸쳐 어려움을 겪어온 지정학적 도전을 극복하려면 국방 기관들을 혁신 생태계의 허브로 키워가는 전략을 깊이 고민할 때가 되었다.

미·중 기술 패권전쟁은 우리에게도 기회
세계지적재산기구(WIPO)에 따르면 2020년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열 번째로 혁신적인 국가이다. 한국이 국내총생산(GDP)에서도 세계 10위권이지만 앞으로 GDP 순위가 올라가기는 쉽지 않다. 인도·브라질·멕시코 등 젊은 인구가 빠르게 증가하는 국가들의 경제 팽창 속도를 따라잡기 힘들 것이다.

그렇다고 2045년 한국이 세계 최고의 혁신 국가가 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이지 않는다. 세계 최고의 혁신 국가는 10년째 스위스이다. 스위스의 1인당 GDP가 세계 2위인 것에 비추어 놀랍지 않다. 한국도 2020년 아시아 국가로는 싱가포르에 이어서 두 번째로 톱10에 진입했다.

세계지적재산기구의 세계혁신지수는 투입 부문에서는 대학 제도, 규제 환경, 무형자산, 기업가 정신, 연구·개발 투자와 연구원, 벤처 투자 등을, 산출 부문에서는 특허, 과학 논문, 창조적 상품과 서비스, 하이테크 제조업, 엔터테인먼트와 미디어 등으로 측정한다. 투입만을 볼 때 싱가포르가 세계 1위이며 산출만을 보면 중국이 세계 6위로 아시아에서 우리보다 앞선다. 반면에 우리는 산출과 투입에서 각각 10위를 유지하고 있다. 아시아에서는 혁신의 잠재력을 가장 균형 있게 보유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특히 미·중 기술 패권 전쟁의 전개 과정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세계혁신지수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지만, 중국 디지털 경제의 혁신은 놀랍다. 중국에는 기업가치 100억 달러를 넘긴 디지털 기업이 73개나 되며, 160개의 유니콘 중에서 절반이 AI·빅데이터·로봇 분야이다.

중국의 엄청난 혁신 드라이브는 미국도 위협하고 있다. 중국의 도전에 대응하기 위하여 미국 상원은 지난 6월 혁신경쟁법안을 통과시켰다. 기술, 국방, 인프라, 공급망 등 분야에서 동맹국과 파트너 국가와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반도체 산업에 520억 달러를, AI 및 양자역학 등 전략 분야 연구·개발에 1200억 달러를 지원하며 초중고와 대학에 컴퓨터 공학 및 과학·기술·공학·수학(STEM) 교육을 강화하는 방안까지 담고 있다.

미·중간 치열한 기술 패권 전쟁은 우리나라에는 기회의 창이 될 수 있다. 그렇게 하려면 우리가 미·중을 질적으로 능가하는 혁신 생태계를 구축하여 한국의 인재들이 세계 최고의 혁신가들과 협력하여 기후 변화나 변종 바이러스의 확산과 같은 글로벌 위기의 해법들을 만들어내는 세계 최고의 혁신 국가를 지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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