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밀레니얼 트렌드 사전

고독방

중앙일보

입력 2021.09.02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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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서정민 기자 중앙일보 부데스크
서정민 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차장

서정민 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차장

드라마 ‘응답하라 1997’ 속 여주인공은 좋아하는 스타를 만나기 위해 그의 집 담장을 넘는다. 아이돌의 사생활을 죽자 살자 쫓아다니는 ‘사생팬(私生 fan)’의 단면이다. 그런데 요즘은 스타가 팬들이 노는 곳을 기웃거리다 쫓겨나는 일도 벌어진다. 일명 ‘고독방 강퇴(강제퇴장) 사건’이다.

‘고독방’이란 카카오톡 등 SNS에서 아이돌 덕후들이 스타를 응원하기 위해 만든 오픈 채팅방이다. 예를 들어 오픈 채팅 검색창에 ‘고독한 안산’을 치면 양궁스타 안산 선수 팬들이 수십~수천 명 모인 고독방 여러 개를 찾을 수 있다. ‘고독방’이란 이름은 텍스트, 즉 대화 없이 사진으로만 소통하기 때문에 붙여졌다. 잡담 없이 좋아하는 스타의 사진만 고독하게 즐기자는 의미. 때문에 일부 팬들은 간단한 질문·답 정도의 대화는 주고받을 수 있는 ‘안고독방’을 만들기도 한다.

넷플릭스 드라마 'D.P.'에서 '한호열 상병'으로 분해 맛깔스러운 연기로 호평받은 배우 구교환의 고독방 엽기사진. 사진 온라인 캡처

넷플릭스 드라마 'D.P.'에서 '한호열 상병'으로 분해 맛깔스러운 연기로 호평받은 배우 구교환의 고독방 엽기사진. 사진 온라인 캡처

흥미로운 건 진짜 스타가 고독방에서 강퇴당하는 경우다. 자신의 고독방을 찾은 스타들은 언론이나 SNS에 노출되지 않은 사진들을 올리거나 질문에 답하는 것으로 팬 서비스를 한다. 그런데 넷플릭스 드라마 ‘D.P.’에서 맛깔스러운 연기로 호평받은 배우 구교환(사진)이나 배구선수 김희진처럼 엽기적인 사진들을 올리며 팬들에게 장난을 치는 스타들도 있다. 그러면 팬들은 스타를 채팅방에서 강퇴시킨다. 사진 한 장 때문에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당연히 안 변한다. 더욱 더 지능적인 사랑을 할 뿐. 이 일화는 다음날 연예기사로 등장하면서 스타를 또 한 번 띄우게 되니 이 얼마나 지혜로운 팬덤 전략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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