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시조가 있는 아침

(87) 까마귀 검다하고

중앙일보

입력 2021.09.02 00:18

업데이트 2021.09.02 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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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유자효 시인

유자효 시인

까마귀 검다하고

무명씨
까마귀 검다하고 백로(白鷺)야 웃지마라
겉이 검은들 속조차 검을소냐
겉 희고 속 검은 것은 너뿐인가 하노라

-병와가곡집

위선을 비웃는 풍자

까마귀가 검다고 해오라기더러 웃지 말아라 한다. 겉이 검다고 속조차 검으리라고 속단하지 말라는 것이다. 오히려 겉이 흰 해오라기가 속은 검을 수도 있다는 풍자 시조다.

이 시조는 이조년(李兆年)의 증손자인 이직(李稷)이 지었다는 설도 있다. 그는 1392년에 이성계 추대에 참여해 개국공신이 되고 성산군(星山君)에 봉해졌다. 1400년 제2차 왕자의 난에는 이방원을 도와 좌명공신이 되고, 1422년 세종 때 영의정에 올랐다. 고려 공양왕 때 예문제학까지 지내고, 나라가 망하자 두문동에서 순절한 유신(遺臣)들 마저 나오는 판에 그의 변신과 너무도 어울려 나온 설인 듯하다. 특히 포은 정몽주의 어머니 영천 이씨가 지었다는 ‘까마귀 싸우는 골에 백로야 가지마라…’와 대척점에 서 있는 노래라는 점에서 그런 프레임이 짜여진 것이 아닐까?

오히려 이 시조는 시대를 넘어 위선을 비웃는 풍자시로 널리 불렸다. 그런 상황은 현대라 해도 다르지 않다. 모두들 자신은 백로라 하고, 경쟁 상대는 까마귀라고 비웃지만 겉을 보고 속까지 알 수 있을까? 탄압받을 때는 언론자유를 금과옥조처럼 외치던 이들이 막상 권력을 잡자 국내외 언론이 한결같이 반대하는 징벌법을 밀어붙이려 한다. 왜 이렇게 무리하는 것일까? 그 속은 그들밖에 알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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