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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w & Review] 좋은 집 사려면 발품 팔아라? 요즘엔 터치가 대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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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30대 직장인 A씨는 출근길에 아파트 실거래가 정보 등을 알려주는 ‘아실’ 앱을 켜고 부동산 정보를 확인한다. 내년 결혼을 앞두고 있는 그는 경기도에 신혼살림을 차릴 계획이다. 점찍어 놓은 신혼집 후보 아파트들의 시세 변동을 확인하고, 여러 아파트 정보를 비교해보기도 한다.  ‘호갱노노’ ‘직방’ 등도 차례로 확인한다. 그 지역의 매물 증감, 향후 공급 물량, 인구, 학군, 주변 시설, 교통망 정보 등을 한눈에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관심 있는 아파트의 입체 평면도를 보고, 시간대별 일조량도 체크해본다. ‘VR(가상현실)홈투어’를 통해 아파트 내부 구조가 촬영된 영상을 보면서 발품 파는 시간을 줄이고 있다.

부동산 시장에 변혁의 바람이 불고 있다. 프롭테크(proptech)라 통칭하는, 빅데이터·AI(인공지능)·VR(가상현실) 등 첨단 정보기술(IT)로 무장한 새로운 서비스가 기존 부동산 시장의 판도를 바꾸고 있다. 프롭테크는 부동산(property)과 기술(tech)을 합친 말이다.

프롭테크(proptech)

부동산(property)과 기술(tech)을 결합한 용어. 빅데이터·AI(인공지능)·VR(가상현실), 블록체인 등 첨단 정보기술(IT)을 결합한 부동산 관련 서비스를 말한다.

집값 고공행진이 수년째 이어지면서 부동산 시장 규모가 커졌고, 부동산이 자산 증식 수단으로 주목받으면서 업계에선 새로운 서비스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한국프롭테크포럼에 따르면 2018년 20개였던 회원사가 현재 278개로 늘었다. 프롭테크 기업 투자금액은 2016년 472억원에서 올해 2조2158억원 50배 급증했고, 프롭테크 스타트업의 매출액은 2019년 7026억원에서 지난해 1조8억원으로 42.4% 뛰었다. 안성우 프롭테크포럼 의장(직방 대표)은 “최근 흐름만 보면 프롭테크 시장이 향후 3~4년 안에 지금보다 10배 이상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연도별 프롭테크 스타트업 투자 유치 금액 현황.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연도별 프롭테크 스타트업 투자 유치 금액 현황.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프롭테크가 인기를 끄는 것은 소비자에게 여러 가지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아파트 등 부동산 실수요자 맞춤형 서비스가 대거 등장하면서 직접 발품을 팔지 않아도, 스마트폰 앱으로 다양한 정보를 손쉽게 얻을 수 있게 됐다. 부동산 매수에 드는 시간과 비용이 줄면서 소비자 편익이 크게 향상된 것이다.

빅데이터를 활용한 부동산 정보 제공 플랫폼인 ‘직방’, ‘호갱노노’, ‘아실’, ‘다방’ 등은 이미 ‘국민 필수 앱’으로 자리 잡았다. 이들 서비스는 전국의 부동산 시세는 물론, 주변 개발 정보, 공급량, 학업성취도 등을 거주지 선택에 필수적인 정보를 제공한다. 공시지가, 각종 세금, 대출 한도 등도 미리 파악할 수 있다. 심지어 이런 데이터를 AI 알고리즘으로 분석해 3~4년 이후 가격을 예측하는 ‘부동산 리치고’와 같은 서비스도 등장했다.

아파트 매수 주기로 본 프롭테크 업체.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아파트 매수 주기로 본 프롭테크 업체.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집닥’ ‘렛츠홈’ 등을 통해 인테리어 업체의 공사 견적을 비교하고, 3D 공간데이터 플랫폼 ‘어반베이스’를 통해서는 원하는 인테리어를 3D로 시뮬레이션 해볼 수도 있다. ‘오늘의집’ ‘집꾸미기’ 등을 보면서 다른 집의 인테리어 사례와 소품 정보 등도 알아볼 수 있다.

최근 집값 급등으로 이와 연동된 중개수수료도 큰 폭으로 올랐다. 10억원짜리 집의 중개수수료는 최대 900만원(세전, 최고요율 0.9% 적용 시)에 달한다. 정부는 소비자 불만을 고려해 다음 달부터 중개수수료를 대폭 낮출 예정이다. 이런 가운데 ‘반값 수수료’를 내건 ‘다윈중개’, ‘우대빵부동산’ 등 중개 플랫폼도 대거 등장했다. 부동산 매수 시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매물 관련 정보에 손쉽게 접근할 수 있어 불필요한 시간을 단축하고, 중개사무소 설치 등에 따른 비용을 줄여 수수료 절감이 가능하다는 것이 이들 업체의 설명이다.

아파트 계약을 앞둔 C씨는 ‘부동산거래 전자계약시스템’을 통해 아파트 매수 계약을 체결했다. 주택담보대출은 금리 비교 사이트를 통해 저렴한 금융회사를 선택했다. 취득세 등은 ‘호갱노노’의 세금 시뮬레이션을 확인해 미리 준비했고, 등기 업무를 대리하는 법무사는 ‘법무통’ 앱에서 수수료를 비교한 뒤 선택했다.

국내 프롭테크 생태계.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국내 프롭테크 생태계.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국토교통부는 2016년 8월 176억원을 들여 전자계약시스템을 도입했다. 전자계약시스템은 복잡한 서류를 발급받는 번거로움을 덜고, 온라인 인증을 통해 거래 사고의 위험도 줄이는 역할을 한다. 다만 이 서비스의 이용률은 지난해 기준 전체 거래의 2.1%에 불과한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프롭테크 업체들도 전자계약시스템 구축에 나서고 있다. ‘집토스’는 전자문서 보관에 유리한 대면형 전자계약 서비스를 직접 개발해 2017년부터 사용하고 있다. 프롭테크 스타트업 ‘탱커’가 지난달 부동산중개서류 사무자동화 프로그램 ‘닥집’도 서비스 중이다. 부동산 임대차 거래 중개 플랫폼 ‘다방’은 비대면 전자계약 서비스 ‘다방싸인’을 다음달 출시할 계획이다.

사이버 모델하우스, 이젠 분양시장 필수항목

프롭테크의 영역은 아파트 등 주택 시장에 국한되지 않는다. 토지, 상업용 부동산 등 시장에도 프롭테크가 가세했다. ‘밸류맵’ ‘디스코’ ‘빅밸류’ 등이 대표적이다. 거래 이력 및 시세 확인이 어렵고, 지목, 용도지역 등 법적 기준이 복잡한 토지, 빌라, 상업용 부동산 등의 정보를 손쉽게 얻을 수 있게 해준다. ‘빅밸류’는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해 빌라 등의 적정 시세를 평가하는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투자·핀테크, 부동산 관리 등의 분야에도 프롭테크의 진입이 활발하다.

프롭테크에 눈을 돌리는 건설사도 많다. 사이버 모델하우스는 코로나19 시대와 맞물려 분양 시장의 필수 항목이 됐다. 최근에는 메타버스 기술로 모델하우스 자체를 온라인 공간으로 옮긴 곳도 있다.

오프라인 모델하우스 설치로 인한 비용을 절감하는 효과도 있다. 아파트 설계와 시공에 가상현실(VR) 등을 활용하고, 빅데이터로 분양 입지 선정, 손익 분석을 하는 건설사도 늘고 있다. 아파트 고급화 추세로 로봇·드론 등 기술을 접목한 생활 편의 서비스를 준비 중인 건설사도 있다. 메타버스 홍보관을 운영 중인 롯데건설 관계자는 “메타버스와 같이 시공간적 제약을 극복할 수 있는 첨단 기술이 업계의 하나의 문화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정부의 제도적 뒷받침이 미흡해 프롭테크의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진유 한국주택학회 프롭테크빅데이터연구소장(경기대 교수)은 “핀테크 분야의 경우 금융감독원에 별도 지원 조직이 있지만, 국토부에는 1~2명의 담당자가 프롭테크 지원 및 정책 수립을 맡고 있다”며 “공공 데이터 개방 수준도 미국, 영국 등 선진국보다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프롭테크가 급성장하면서 기존 산업과의 마찰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중개플랫폼(직방, 다윈중개 등)과 공인중개사, 자동 시세 산정 서비스(빅밸류)와 감정평가사 등의 마찰이 대표적이다. 전문가들은 이들의 갈등의 골이 더 깊어지기 전에 역할 분담을 명확하게 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서진형 대한부동산학회장(경인여대 교수)은 “프롭테크 기업과 일반 소상공인들이 상호 공존할 수 있도록 정부가 나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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