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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플] 시총 4조 증발했다는데…‘엔씨 불패’ 왜 깨졌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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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블레이드 & 소울 2에 등장하는 염환 캐릭터. [사진 블레이드 & 소울 2 캡처]

블레이드 & 소울 2에 등장하는 염환 캐릭터. [사진 블레이드 & 소울 2 캡처]

‘린저씨’ 버프는 여기까지인가. 지난달 26일 엔씨소프트가 신작 게임 ‘블레이드 & 소울 2’(이하 블소2)를 출시한 뒤 일주일 새 시가 총액이 4조 7000억원 가량 증발했다.

무슨 일이야

엔씨소프트의 기업가치가 최근 큰 폭으로 하락했다. 지난달 25일 18조 3755억원이었던 시총은 7거래일째인 지난 3일 13조 6554억원으로 4조 7201억원(25.9%) 줄었다. 역대 최고가를 기록했던 지난 2월(22조원)과 비교하면 8조 3000억원 이상 쪼그라든 상황. 창업자 김택진 대표의 보유 지분(262만8000주) 가치도 최근 한 주 사이 2조 1996억원에서 1조 6346억원으로 5600억 이상 줄었다.

이게 왜 중요해

엔씨 기업가치 하락의 직접적 원인은 지난달 26일 출시한 블소 2. 엔씨가 2012년 선보인 동양 무협풍 다중 접속 역할수행게임(MMORPG) 블레이드 & 소울의 후속작이다.
● 블소 2는 올해 게임업계 최대 기대작이었다. 사전예약자만 국내 최대인 746만명을 모았다. 팬층이 탄탄한 유력 지식재산(IP)의 후속작이고 리니지M(2017년)과 리니지2M(2019년)을 연달아 히트시킨 엔씨가 힘 준 신작이라 시장의 기대감 컸다.
● 사실 출시 후 성과도 썩 나쁘지는 않다. 구글플레이 최고 매출 순위 11위로 데뷔한 뒤 7→5→4위(1일 현재)로 오름세다. 다른 게임사였다면 ‘흥행’ 소릴 들었을 성적. 1일 기준으로 보면 블소 2 보다 매출 순위가 높은 게임 셋 중 둘은 엔씨 게임(리니지M·리니지2M)이다. 1위는 카카오게임즈의 히트작 ‘오딘 : 발할라라이징’.(※ 5일 기준 미호요 게임 '원신:1주년'이 매출 3위에 오르면서 리니지2M은 5위로 하락했다.)
● 그런데도, 시장의 평가는 박했다. 통상 게임사 주가는 신작 발표 전 기대감과 함께 최고치를 찍고 이후 하락하는 편이지만, 이 정도의 주가 급락은 이례적이다. 엔씨의 경쟁력에 근본적인 의구심을 표하는 이들이 늘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리니지M과 리니지2M의 연타석 홈런으로 잘나가던 엔씨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기에.

9월 5일 기준 구글플레이 게임 매출 순위에서 엔씨소프트는 2위 리니지M, 4위 블레이드&소울2, 5위 리니지2M를 기록했다. 중국 미호요의 모바일 게임 '원신'이 3위로 약진했다. [사진 구글플레이 캡쳐]

9월 1일 기준 엔씨소프트의 블레이드 앤& 소울 2는 구글플레이 매출 순위 4위다. 1위(카카오게임즈)를 제외한 2~4위가 모두 엔씨소프트 게임이다. [사진 구글플레이 캡처]

위기의 원인 ① : 무늬만 바뀐 ‘리니지’

블소 2를 직접 해본 이용자들은 ‘게임이 신선하지 않다’고 평가한다. 리니지M 에서 확립한 게임 디자인 및 사용자 환경, 과금 모델을 유사하게 적용한 탓이다. 회사 측이 차별화 포인트로 내세웠던 액션은 ‘자동 전투’를 많이 하는 최근 트렌드에선 눈에 띄는 수준이 아니다. 더구나 '완벽한 게임'을 고집해온 엔씨답지 않게 초반엔 자잘한 버그도 많았다. 국내 한 중견게임사 관계자는 “리니지M으로 큰 성공을 거둔 게 지금은 독이 된 것 같다”며 “엔씨 정도라면 완전히 새로운 게임, 혁신적인 게임을 만들어야 한다는 기대가 있는데, 블소2는 그런 면에서 아쉽다”고 말했다.

위기의 원인 ② :  ‘페이 투 윈·확률형’ 피로감

엔씨는 최근 5년 새 두 번의 ‘실적 퀀텀 점프’를 기록했다. 2017년 리니지M 출시 후 매출 1조원을 돌파했고, 2년 후 리니지2M으로 2조원을 넘겼다. 도약의 핵심 비결은 ‘페이 투 윈’(Pay to Win·돈을 쓰면 이기는 모델) 방식의 게임 디자인에 있다. 여기에 확률형 아이템을 적절히 섞어 수익을 극대화했다. 즉, 게임 사용자가 무기 아이템을 구입하고 능력치를 강화하는 과정에서 적절한 확률을 적용해 재미를 더하고, 돈도 더 많이 쓰도록 하는 경로를 세련되게 잘 만들었다는 의미. 게임 사용자 간에 경쟁이 붙다 보면, 값비싼 아이템도 구매하게 되는 심리를 적절히 과금 구조에 반영했다.

하지만 황금알을 낳는 거위 같던 이 시스템이 한계에 이르렀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나치게 돈을 많이 쓰게 하는 구조에 누적된 부정적인 여론이 임계치를 넘어선 것. 일부 이용자들은 올 상반기 경기도 판교테크노밸리에 위치한 엔씨 본사에 트럭을 보내 항의했으며 불매 운동까지 벌였다. 기존 게임은 관성대로 매출이 나왔지만, 문제는 새 게임이다. 지난 5월 출시된 트릭스터M은 초기에 반짝 인기를 끌었지만 “과금 구조가 과하다”는 비판이 커지면서 매출 상위 40위권 밖으로 추락했다.

블소 2도 초기부터 과도한 과금구조를 비판하는 이들이 많다. 구글플레이 리뷰에는 “현질게임”이라는 비판이 줄을 잇는다. PC게임 시절부터 리니지를 즐긴 회사원 최모(39)씨는 “애정을 갖고 돈 쓰고 게임하는 ‘린저씨’지만 이것도 몇 년 계속하다 보니, '내가 지금 뭐하는 짓인가' 싶더라”며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엔씨가)가르고 있는 것 아닌가 싶을 정도”라고 지적했다.

엔씨소프트 실적 추이.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엔씨소프트 실적 추이.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위기의 원인 ③ : 돌아오지 않는 ‘핵고래’

리니지M의 성공 이후 국내엔 리니지M을 벤치마킹한 MMORPG 게임이 다수 나왔다. 3년 이상 시간이 지나면서 게임간 수준차가 크게 좁혀졌다. 즉 처음에는 리니지M만의 재미가 있었지만 이젠 다른 게임에서도 유사한 재미를 느낄 수 있다는 것. 게임에 많은 돈을 쓰는 이용자, 일명 ‘핵고래’들이 리니지M 아닌 '대안 게임'을 택하는 경우가 늘고있다. 카카오게임즈의 오딘 : 발하라 라이징이 지난 7월 리니지M을 제치고 구글 매출 순위 1위를 차지한 것을 게임업계가 '사건'으로 보는 배경이다. 엔씨는 또 지난 6월 웹젠의 게임 ‘R2M’이 리니지M을 따라했다며 저작권 침해 소송도 냈다. 리니지M 스타일이 그만큼 흔해졌다는 반증.

엔씨는 어떻게?

위기 극복을 위해 발빠르게 대처 중이다. 블소 2에서 유효기간 한달짜리 시즌패스(3만 3000원)를 사지 않으면 캐릭터 경험치와 아이템 획득에 불이익을 주는 시스템(영기 시스템)에 사용자 불만이 커지자, 게임 출시 하루 만에 공식 사과했다. 해당 시스템을 불이익이 없게 바꾸기도. 또 1일에는 블소2에서 보상을 더 빨리 많이 얻을 수 있게 조정하는 업데이트를 진행했다. 회사 관계자는 “이용자 불편사항에 대해 꾸준히 경청하고 개선해 나가겠다”고 설명했다.

엔씨소프트가 하반기 출시할 신작 리니지W. [사진 엔씨소프트]

엔씨소프트가 하반기 출시할 신작 리니지W. [사진 엔씨소프트]

앞으로는?

올 하반기 출시 예정인 ‘리니지W’에 관심이 집중된다. 지나친 과금을 줄이고도 재미있는 새 게임을 엔씨가 내놓을 것이냐가 관건. 김창권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블소 2는 새로운 이용자를 가져올 참신함이 부족해 흥행이 다소 부진했다”며 “그럼에도 엔씨소프트에는 3500명 이상의 유능한 개발자가 있고 이들이 100명 단위로 진행하는 수많은 프로젝트가 돌아가고 있기 때문에 언제든 다시 치고 올라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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