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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보건노조 막판협상…대형병원 등 104곳 파업 동참할 듯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민주노총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가 예고한 총파업을 하루 앞둔 1일 정부와 노조가 막판 교섭에 나섰다. 이번에 합의하지 못하면 노조는 예정대로 2일 오전부터 총파업에 들어간다는 방침이라 코로나19 대응에 차질이 우려된다.

전담병원 104곳, 선별진료소 75곳 참여

총파업 강행하나…총리 “대승적 결단 요청”

보건복지부와 노조는 1일 오후 2시40분부터 서울 영등포 의료기관평가인증원에서 13차 교섭에 들어갔다. 파업 시한 하루 전인 만큼 사실상 마지막 담판이다.
김부겸 국무총리는 협의장을 방문해 “온갖 희생을 오롯이 감당하고 있다는 절규에 감사하고, 미안한 마음“이라며 “첫 답변드릴 수 있는 것부터 빨리하고 정부 의지만 갖고 못하는 부분에 대해선 면밀히 검토하고 같이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어려움을 국민이 받아낼 생각을 하면 대승적 결단을 요청한다”며 “합의해서 (파업 철회하면) 관철하면 약속을 지키겠다”고 강조했다. 권덕철 복지부 장관도 “정부 예산에 담지 못한 게 있다면 국회 (논의) 과정에서 담겠다”고 말했다.

송금희 노조 사무처장은 “오늘이 정말 마지막이라 생각한다”며 “환자를 두고 나갈 수 없도록 안을 제시해달라”고 답했다.

파업시 “중등증 병상 영향”

협상이 불발되면 2일 오전 7시부터 노조는 총파업에 돌입한다. 노조는 의사를 제외한 간호사와 임상병리사, 방사선사, 물리치료사 등 보건의료노동자로 구성된다. 5만6000명의 노조원 중 중환자실, 응급실, 수술 관련된 필수인력을 제외한 30%, 1만7000명 가량이 파업에 참여할 것으로 당국은 추산하고 있다.

노조 137개 사업장 중 참여 의료기관은 104곳으로, 대부분 대형 병원이자 감염병 전담 치료병원이다. 이기일 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중증 병상의 경우 필수 업무 유지라 해당이 없지만 중등증 병상의 경우 영향이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파업 병원의 환자 이송 대책도 검토 중이다.

파업 병원이 운영하는 선별진료소도 75개라 운영에 차질을 빚을 거로 보인다. 코로나 검사를 하는 민간 의료기관 전체의 12% 수준으로 이곳 진료소들에선 하루 평균 전체 검사의 2.6% 정도를 소화하고 있다.

12차례 교섭에도 평행선 

양측은 지난 5월부터 12차례 교섭을 통해 22개 세부 과제를 논의해왔고 이 중 17개에 대해선 의견 접근을 이뤘다. 그러나 노조의 핵심 요구사항인 ▶코로나19 치료병원 인력 기준 마련 ▶생명안전수당 제도화 ▶전국 70개 중 진료권마다 1개씩 공공의료 확충 ▶간호사 1인당 환자 수 법제화 ▶교육전담간호사 및 야간간호료 확대 등 5가지가 발목을 잡고 있다.

노조의 최우선 요구 중 하나는 코로나19 대응 인력의 기준을 마련해달라는 것이다. 감염병이 발생할 때마다 수당 논쟁을 벌일 수 없으니 전담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사와 보건의료 노동자에게 생명안전수당을 제도화하자고도 요구한다. 그간 인력을 갈아 넣다시피 해 겨우 유지해왔는데, 피로도가 극에 달한 만큼 인력 파견 등의 임시 방편이 아니라 실질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요구다.

정부는 어려움에 공감하지만 “인력 기준 시행 시점이나 인력 채용 방식에 대한 보상 수준에 대해 이견을 좁힐 필요가 있다”(이창준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관)고 주장한다. 당장 담당 환자 수를 줄이는 식으로 인력 기준을 시행했을 때 인력이 확충되지 않아 발생 환자를 커버하지 못하면 대응체계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정부는 우려한다.

사안마다 재정 등 이유로 난색

근본적으로 간호사 1인당 환자 수를 제한하자고 노조는 주장한다. 한국은 대형병원 기준 1:12~13 수준인데, 이를 미국(1:5)과 일본(1:7)처럼 간호사대 환자 비율을 법제화해 환자 보는 비율을 대폭 낮춰야 한다는 것이다. 이게 어렵다면 이미 운영 중인 간호인력등급제를 개편하자고 한다. 간호등급제는 환자 대비 간호사 비율에 따라 1~7등급을 매긴 뒤 등급이 높을수록 지원금을 주고 낮은 병원에는 감산하는 제도다. 그런데 같은 1등급이라 해도 병원마다 1:10, 1:14 식으로 비율 격차가 큰 만큼 근무조별로 담당할 수 있는 환자 수를 정하자는 것이다.

나순자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이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보건의료노조에서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 담화문 발표에 따른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뉴스1

나순자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이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보건의료노조에서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 담화문 발표에 따른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뉴스1

정부는 배치 기준을 이렇게 높일 경우 오히려 수도권 대형 병원이 인력을 대거 빨아들여 지방 중소병원이 어려워질 것이라는 논리를 편다.
이창준 국장은 “개선 필요성에 대해서도 동의는 하지만 우리나라 간호인력의 수급 문제, 쏠림의 문제를 고려하면서 방안을 마련해야 되기 때문에 이견이 남아있다”고 말했다. 노조 관계자는 “중소병원이 죽어난다고 하는데 배치 기준을 높이고 중소병원들에는 그쪽으로도 인력이 올 수 있게 재원적 여력을 마련해주면 된다. 배치 기준을 높이면서 처우 개선이 같이 가야 한다”고 반박한다.

노조는 2018년부터 정부가 밝힌 공공의료 강화도 실행된 것이 거의 없다며 구체적 로드맵을 요구하고 있다. “전체 의료기관의 10%도 안 되는 공공병원에서 코로나 환자 80%를 치료하느라 공공병원 기능과 역할이 무너졌다”며 “정부 스스로 밝힌 바대로 최소 70개 중진료권 만이라도 예비타당성조사 면제와 함께 국비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창준 국장은 “70개 중진료권에 꼭 병원 신축이 필요한지 확인하고, 해당 지자체 의견도 받아야 하기 때문에 구체인 내용을 정하기가 쉽지 않다”고 토로한다. 노조 관계자는 “지자체에서 예산을 부담스러워 한다면 중앙정부가 분담금 비율을 대폭 완화해주는 식으로 의지를 내야 한다”고 말한다.

이외에 노조는 교육전담 간호사 제도와 야간간호료 지원 확대를 주장하는데 재정 문제가 걸려있다 보니 정부가 명확한 답을 내지 않고 있다.

김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과 교수는  “공공의료는 갑자기 제기된 문제도 아니고 이번 정부 초부터 확충 얘기가 있었는데 지자체 협의나 재정당국과의 협의가 이미 이뤄졌어야 하는 것”이라며 “정부가 그걸 핑계로 대는 게 합당한 설명이냐”고 반문했다. 김 교수는 “중앙정부가 예산을 포함해 필요한 조치를 하고 지방정부가 나서라고 전향적으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 예고한 총파업이 하루 앞으로 다가온 1일 보건의료노조에 속한 서초구 서울성모병원에 의료인력들이 걸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 예고한 총파업이 하루 앞으로 다가온 1일 보건의료노조에 속한 서초구 서울성모병원에 의료인력들이 걸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최재욱 고려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선언적 의미의 논의는 가능하지만 노조가 구체적으로 실행해야 하는 지점까지 얘기하는 건 정치적 구호밖에 안 된다”고 지적했다. 다만 “인력 기준을 바꾸자는 건 운영기준, 건강보험 급여기준 등과도 맞물리다 보니 의료비 증가를 이유로 정부가 난색을 보이는 것”이라며 “정부가 공공성이 큰 감염병 관리 부분은 인력 기준을 대폭 상향하고 건보를 지급하는 식의 재정 투입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결국 재정이 가장 큰 걸림돌일 수 있는 만큼 일개 부처의 권한 밖이라면 대통령, 국무총리가 나서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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