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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도 외면한 세 아이 아버지, 노조 괴롭힘에 삶을 등지다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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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택배 대리점주가 민주노총 노조로부터 당했던 괴롭힘을 견디지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그는 유서에서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다″고 했다. CJ대한통운 택배대리점연합회 제공

택배 대리점주가 민주노총 노조로부터 당했던 괴롭힘을 견디지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그는 유서에서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다″고 했다. CJ대한통운 택배대리점연합회 제공

그는 세 아이의 아버지였다. 12년 동안 택배 일을 했다. 처음엔 택배기사로, 나중엔 택배 대리점을 맡았다. 택배 기사 10여 명과 함께 일했다. 택배 기사 출신이었기에 그들의 처지를 잘 알았다. 가족같이 지냈다. 그러다 한순간에 파탄이 났다. 노조가 생긴 뒤 배달 거부에 욕설이 날아들었다. 본인이 직접 배달에 나섰지만 역부족이었다. 지난달 30일 그는 숨진 채 발견됐다. 유서를 써놓고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현장에서]

그는 세 아이에게 "너희 때문에 여기까지 버텨왔는데 아빠가 너무 힘들어. 이기적인 결정 너무도 미안하다. 학교 입학식, 졸업식, 남자친구, 여자친구, 군대, 시집, 장가 옆에서 지켜보고 싶은 게 너무 많은데 아빠는 마지막까지 부족하구나. 사랑한다. 미안하다"고 했다.

택배 대리점주 이모(40)씨는 그렇게 짧은 생을 마감했다. 그가 택배 대리점주로 일하는 동안 관심을 갖는 이는 없었다. 국가는 오히려 그를 유령 사업자 취급을 했다. 노조에 치이고, 국가로부터 외면받으며, 그는 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다.

왜 이런 상황까지 왔을까. 법도 그를 외면했다. 유서에 따르면 이씨는 노조로부터 심한 괴롭힘을 당했다. '나이 쳐 드셔서 좋겠습니다' '죽이고 싶다. 쳐 나와봐'. 조롱과 폭언, 태업까지 택배 시장에서 벌어질 수 있는 괴롭힘의 종합 선물 세트를 겪었다.

하지만 그는 괴롭힘 방지법(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지 못했다. 개인사업자여서 근로기준법의 대상이 아니어서다. 혹여 근로기준법을 준용한다고 해도 괴롭힘을 당하는 피해자로 분류되지 않는다. 괴롭힘 방지법은 상사에 의한 하위 직급 직원에 대한 괴롭힘을 갑질로 볼 뿐이다. 우월적 지위에 의한 괴롭힘만 인정한다. 택배사 대리점주로서의 이씨는 법상으로는 사업주로서 우월적 지위지만 실제는 노조가 우월적 지위의 위치에 있었음이 유서에서 드러났다. 꼼짝없이 당할 뿐이었다. 누구도 그가 겪은 괴롭힘을 돌 볼 수 없었던 셈이다.

그렇다면 그와 그의 가족은 어떻게 될까. 보상을 받을 수 있을까. 근로자는 괴롭힘에 의한 자살도 산재로 인정받는다. 재해사망으로 분류돼 유족에게 산재연금, 장례비 등 보상금이 지급된다. 그러나 택배 대리점주는 위탁계약을 한 개인 사업자여서 산재보험 가입 대상에서 제외돼 있다. 자영업자에게 산재보험 가입 문호가 열려있으나 인력을 고용하지 않는 1인 사업주에게만 적용될 뿐이다. 택배기사를 고용한 이씨는 산재보험 대상이 아니라는 얘기다.

더욱이 괴롭힘에 의한 사망은 중대재해에 해당한다. 중대재해법에 따르면 재해 사업장의 책임자가 사법처리 된다. 그렇다면 민주노총이나 택배노조가 책임을 져야 하는데, 중대재해법상 노조는 처벌 대상이 아니다. 경영책임자로 국한돼 있다. 누구도 이씨의 죽음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 셈이다.

결국 이씨는 소위 약자를 위한 수많은 법이 만들어졌지만, 어느 법으로도 보호막을 가지지 못했다. 택배 기사는 근로자성을 인정받아 노조를 설립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지만, 그가 기댈 곳은 없었다. 어디에도 하소연하지 못하는 완벽한 노동법의 소외 계층이자 피해 계층으로 전락했다.

심지어 국가 기관은 그를 유령으로 취급했다. 중앙노동위원회는 지난 6월 택배 노조의 단체교섭 요구에 응하지 않는 CJ대한통운에 대해 부당노동행위라고 판정했다. 택배노조와 원청인 CJ대한통운이 협상하고 교섭하라는 것이다. 정작 그들을 고용한 대리점주는 중앙노동위의 판정에 따르면 아무런 법적 지위도 없이 공중 분해된 셈이다. 고용주로서 인정도 못 받는 상황이니 노조가 택배 대리점주를 대접이나 했겠는가. 이씨가 몸담은 택배 대리점도 CJ대한통운 소속이다.

근로기준법이나 산재보상법으로는 사업주, 중앙노동위 판정으로는 사업주도 근로자도 아닌 희한한 법 체계와 법 해석에 이씨와 같은 또다른 아버지가 괴롭힘을 당하고 있지는 않은지, 지금이라도 살피고 바로잡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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