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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집 나간 아내는 쏟아진 물…세월 낚던 강태공 뒤끝 작렬?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권도영의 구비구비옛이야기(67) 

평생 밥벌이에는 관심 없이 책만 들여다보는 사람이 있다면 요즘 세상에서 이런 사람은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이 사람 혹시 은둔형 외톨이는 아닐까, 혼자 살면서 그러는 거야 상관없겠지만 혹시 부양해야 하는 가족이 있지는 않나. 젊은 나이도 아니라면. 남의 인생 책임져야 하는 상황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자신의 인생에도 무책임하다고 할 수 있지 않으려나. 책 속에서 길을 찾는 것도 숭고한 작업이 될 수는 있겠지만 그래도 제 밥벌이는 해야 하는 것 아닐까. 나중에 정신 차리고 뭐라도 해보려 해도 이력서에 쓸 한 줄 거리도 없을 테니 문제는 문제다. 진짜 문제는, 이런 사람은 대체로 누군가의 보살핌과 희생을 밟고 서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고, 그래서 이들은 이래저래 무책임한 사람, 사회부적응자라는 낙인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이건 현대사회의 현실논리이고, 한가로이(?) 책만 읽었지만 결국 성공한 사람의 이야기가 이렇게 전해진다.

옛날에 한 사람이 나이 오십이 되도록 하루 종일 글만 읽고 앉아 있었다. 부인이 밭일을 나가면서 마당에 곡식을 널어놓았으니 혹시 비 오면 얼른 잘 걷어 달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그날 낮에 한바탕 소나기가 퍼부었는데 이 사람은 책만 들여다보느라 비가 오는지 가는지 바깥 사정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집에 돌아와 곡식이 모두 비에 쓸려나간 걸 본 부인은 “너 같은 놈 믿고 살다간 굶어 죽기 제일 쉽겠다” 하고는 그 길로 집을 나가 버렸다. 이 사람은 조금만 더 참으라며 잡았지만 소용없었다.

이 사람은 계속 공부해 과거에 장원급제를 하였고, 고을 원님이 되어 돌아왔다. 이 사람이 부임 행차를 해 오던 길에 허름한 차림을 하고 물동이를 이고 가던 부인을 발견했다. 부인은 집을 나가 다른 사람과 새살림을 차렸지만 여전히 일에 부대끼는 형편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부인은 남편이 성공한 것을 보고는 다시 같이 살자며 쫓아왔다. 이 사람은 자신이 시키는 대로 해 보라면서 물동이 속의 물을 길바닥에 쏟으라고 했다. 그러고는 그 물을 물동이에 다시 주워 담으라고 하였다. 부인이 쏟아진 물을 어떻게 다시 담느냐고 하니, 이렇게 한번 쏟아진 물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는 법이라고 하면서 부인더러 그저 잘 살라고, 자기는 자기대로 그냥 간다고 했다.

이 이야기는 주인공 이름이 드러나지 않은 자료도 많지만 주매신(朱買臣)이나 강태공이라는 이름과 관련되어 전해진다. 주매신 중국 전한 때 사람이다. 집안이 가난하여 나무를 해다 팔며 생계를 연명했는데, 그 와중에도 책을 놓지 않고 부지런히 공부하여 ‘부신독서(負薪讀書)’라는 고사성어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당장 끼니 걱정을 해야 할 판에 죽어라 책만 파고 있으니 부인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그의 곁을 떠나 버렸다. 주매신은 이후 벼슬자리를 얻었고 무제에게 『춘추』를 강설하게 되면서 중대부(中大夫)가 되기도 하였으나, 무제를 분노하게 한 일이 계기가 되어 죽임을 당했다. 그의 부인은 주매신을 떠난 뒤 재가하였는데 주매신이 관직에 오른 뒤 그 가족을 돌보려 하자 수치심에 자결하였다고 한다. 부지런히 실력을 갈고닦아 드디어 때를 만나고 자신의 능력을 펼쳐 보인 인물로서 책 읽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데 쓰이는 고사성어를 낳기도 한 인물치고는 결말이 좋지 않다.

주매신과 그 아내. [그림 자료 중국인물사전]

주매신과 그 아내. [그림 자료 중국인물사전]

강태공 역시 가난한 처지에도 살림은 돌보지 않고 낚시만 하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부인이 곁을 떠났다고 한다. 부인이 어느 날 남편이 하루 종일 낚시를 하고도 늘 빈손으로 돌아오지만 그래도 고기 낚느라 고생한다 싶어(혹은 대체 낚시한다고 나가서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 건가 의심스러워) 점심을 싸 들고 강가에 갔더니 강태공이 낚시를 드리운 채 꼬박꼬박 졸고 있었다. 부인이 뭘 잡았나 보려고 낚싯대를 들어보았더니 곧은 바늘에 미끼도 끼우지 않고 있었다. 부인은 화가 나서 그를 떠나 다른 사람과 살게 되었다. 그 뒤 이야기는 동일하다. 다만, 강태공은 주나라 문왕의 초빙을 받아 그의 스승이 되었고, 무왕을 도와 천하를 평정하는 공을 세워 제나라의 시조가 되었다. 주매신과 비교하면 매우 성공적인 결말이다.

덕분에 강태공도 고사성어의 주인공이 되었는데, 강태공이 부인 마씨에게 “한번 엎지른 물은 다시 그릇에 담을 수 없고, 한번 나간 아내는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것이다”라고 했다는 데서 ‘복수불반분(覆水不返盆)’이 관용적으로 쓰이게 되었다. 말 그대로 한번 저질러진 일은 되풀이하지 못한다는 뜻을 갖는다. 다만 강태공의 낚시질은 정말 낚시를 좋아해서라기보다 조용히 때를 기다리는 일로서 의미를 갖는다. 곧은 바늘에 미끼도 끼우지 않은 상태였다는 데에서 물고기를 낚는 것에는 아예 관심도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언젠가 반드시 때가 온다는 것을 믿고, 그때 자신이 반드시 크게 쓰일 것임을 믿었다는 것, 그때를 기다리며 충분히 세상의 변화를 사유하고 전략을 세웠다는 것에서 강태공의 진가가 확인되기도 한다.

그런데 이쯤에서 그 부인의 입장에 서 본다. 이 이야기의 변이형 중에 꽤 많은 서사가 부인의 불행한 죽음을 매미와 연관지어 전한다. 그중 한 가지를 소개하면 벼슬을 얻어 내려오던 남편을 본 부인이 막 따라갔지만 남편이 한번 돌아보지도 않고 가버리자 부인은 엎어져 죽어 매미가 되어서는 “먐,먐.먐. 경상감사 매암스럽고 매암 매암” 하면서 울었다고 한다. 이 버전은 꽤 얌전한 편이고, 다른 버전은 그렇게 죽어 매미가 된 부인이 새장가 들어 잘살고 있는 남편 집을 찾아갔다. 그러고는 맴맴 하며 “꽃이 떨어지면 네 벼슬도 떨어지고 네 신세나 내 신세나 마찬가지”라며 울어댔다. 남편이 매미를 잡아 죽이려고 했지만 매미는 남편 얼굴에 오줌을 찔끔 싸고는 도망가 버렸다. 결국 남편은 벼슬을 잃고 새 부인도 떠나가고 각설이 타령이나 하면서 불쌍하게 살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마도 주매신 쪽의 이야기가 민간에서는 이런 식으로 전승된 것이지 싶다.

쏟아진 물을 어떻게 다시 담느냐고 하니, 그는 이렇게 한번 쏟아진 물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는 법이라고 하면서 부인더러 그저 잘 살라고, 자기는 자기대로 그냥 간다고 했다. [사진 pixnio]

쏟아진 물을 어떻게 다시 담느냐고 하니, 그는 이렇게 한번 쏟아진 물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는 법이라고 하면서 부인더러 그저 잘 살라고, 자기는 자기대로 그냥 간다고 했다. [사진 pixnio]

부인 입장에서는 앞날이 보이지 않는 남편을 믿고 함께 때를 기다리기도 쉽지만은 않은 일일 것이다. 자신의 판단이 잘못되었음을 알고 후회해 보아야 소용없고, 다만 원망하는 마음만 커져 매미 울음소리에 그런 마음이 투영되었던 것 같다. 하필 많고 많은 것 중에 죽어 매미가 되었다는 것은 그렇게 크게 목놓아 울 만큼 한이 서린 일이 된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그로 인해 남편에게 저주를 내리고 결국 그것이 실행되기도 하는 걸 보면, 이 역시 남자 잘되고 못되는 것은 다 여자 하기 나름이라는 결론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크다. 그래서 구연자도 여자가 마음을 단단히 잘 먹어야 한다는 말을 덧붙이기도 하고, 이야기의 또 다른 버전에서는 부인이 죽은 자리에 여자들은 불쌍하다고 돌을 갖다 놓고, 남자들은 산 사람 두고서 재가했다며 침을 뱉었다는 내용이 덧붙기도 한다.

때를 기다리며 세월을 낚는 것도 좋지만, 그런 큰 뜻이 있었다면 부인에게 상황과 생각을 설명하며 함께 어려운 시기를 잘 헤쳐나가자고 동의를 구하고 서로 협조하고 의지하는 모습을 보여줬어도 좋았을 것이다. 품삯을 벌기 위해 남의 밭에서 피를 훑거나 물동이를 지어 나르는 험한 일을 하면서도 밥을 해주고 보살펴주던 부인이 있었기에 한가로이 세월을 낚는 일도 가능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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