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언의 '더 모닝']게임·사교육 금지한 중국, 우리는 많이 다른가요?

중앙일보

입력 2021.09.01 08:27

업데이트 2021.09.01 09:07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연합뉴스]

안녕하세요? 오늘은 중국의 전체주의적 통제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빅 브라더는 살아 있나요?”
“물론이지. 그는 존재해. 당도 존재하고. 빅 브라더는 당의 화신(化身)이야.”
“그도 제가 존재하는 것과 똑같이 존재하나요?”
“자네는 존재하지 않아.”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서 주인공 윈스턴이 질문하고 오세아니아의 고위 당원 오브라이언이 답합니다. 멀쩡히 살아 있는 윈스턴의 실존을 부인합니다. 당이 모든 시민의 삶을 통제하는 곳에서는 사람이 더 이상 ‘고유한 특성과 취향을 가진 개별적 존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중국 청소년이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는 온라인 게임을 할 수 없게 됐습니다.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는 오후 8시부터 9시까지 한 시간 동안만 할 수 있습니다. 청소년 개인의 상황이나 흥미는 고려사항이 아닙니다. 최근 중국 언론에 ‘게임은 아편’ ‘게임은 정신을 병들게 하는 마약’ 등의 표현이 여러 차례 등장했습니다. 아편이고, 마약인데 잠깐은 허용하는 게 신기합니다.

중국 정부는 사교육도 금지했습니다. 학원이 문을 닫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학교에서 시험을 치르는 것도 불법이 됐습니다. 학교에서 가급적 숙제를 내주지 말라고 합니다. 사교육을 부추기는 요인이라는 것입니다. 다 같이 부자가 되자(‘공동부유’)는 시진핑 국가주석의 ‘교시’가 내려진 뒤에 생긴 일입니다.

마치 한국의 과거를 ‘벤치마킹’한 것 같습니다. 지난 7월까지 한국에도 ‘게임 셧다운’ 제도가 있었습니다. 자정부터 오전 6시까지 청소년은 PC로 게임을 할 수 없었습니다. 사교육 금지는 1980년 7월에 전격적으로 실시돼 91년까지 이어졌습니다. 문재인 정부 초기에 초등학교 1, 2학년 방과 후 영어 수업과 유치원 영어 교육을 금한다는 발표가 있었습니다. 논란이 일자 시행을 1년 유예하겠다더니 교육부 장관이 교체되면서 없던 일이 됐습니다.

중국이 우리가 하다가 만 일들을 고강도로 ‘업그레이드’해 실시합니다. 역시 스케일은 남다릅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우리도 중국을 따라갑니다. 새로 지명된 한국 금융당국 수장이 가계부채 문제를 걱정하는 발언을 하자 은행들이 앞다퉈 개인 대출을 줄입니다. 경제적 원리나 합의된 규칙이 아닌, 임의적 권력이 시장을 움직입니다. 시중에 돈이 너무 많아서 문제면 기준금리 인상이나 긴축 재정으로 해결하는 게 정상적 자유민주주의 국가입니다. 어제 국회에서는 사립학교가 교원을 뽑을 때 관할 교육청에 1차 선발을 맡기도록 강제하는 법이 생겨났습니다. ‘사립’과 ‘공립’의 경계가 계속 허물어집니다.

9월 27일로 국회 본회의 상정이 미뤄진 언론법도 유사한 맥락 안에 놓여 있습니다. 이 법이 생기면 우리의 언론 환경도 중국과 비슷해질지 모릅니다. 언론이 정부의 스피커 역할에 충실한 나라, 그래서 ‘가짜뉴스’ 시비도 없는 나라로 말입니다. 이래저래 한국과 중국이 닮아갑니다.

중국의 게임 셧다운, 사교육 금지 소식을 전하는 기사가 중앙일보에 실려 있습니다. 파이낸셜 타임스(FT)는 중국이 ‘보모 국가’(nanny state)로 간다고 했습니다. 동의하기 어려운 해석입니다. 보모 국가는 정부가 선의의 과보호를 하려들 때 붙이는 명칭입니다. 전체주의적 통제와는 거리가 있습니다.

'유모 국가' 중국…"게임말라, 성적 공개말라" 시시콜콜 간섭
 중국이 18세 미만 청소년의 온라인 게임 규제안을 발표한 가운데 31일 베이징의 한 PC방에서 한 남성이 게임을 즐기고 있다. [AFP=연합뉴스]

중국이 18세 미만 청소년의 온라인 게임 규제안을 발표한 가운데 31일 베이징의 한 PC방에서 한 남성이 게임을 즐기고 있다. [AFP=연합뉴스]

중국 정부가 국민의 ‘유모(Nanny)’를 자처하고 나섰다. 게임 시간제한에다 학교 시험과 사교육 금지까지 국민의 사생활에까지 깊숙이 발을 디디고 일거수일투족에 간섭하기 시작한 것이다. 시진핑 국가 주석이 내건 ‘공동부유(共同富裕)’ 기치에 발맞추기 위해서다.

신화통신에 따르면 지난 30일 게임 부문을 총괄하는 중국 국가신문출판서는 청소년 게임 규제안을 발표했다. 18세 미만은 월~목요일에 온라인 게임을 아예 못하는 게 골자다. 금~일요일과 휴일에도 오후 8~9시까지 1시간만 게임을 할 수 있다. 중국 당국은 지난 3일 관영언론 경제참고보에서 “온라인 게임은 정신적 아편”이라며 게임 중독 해결을 위해 목소리를 높였다.

교육 분야에선 ‘학교 시험 금지’ 조치를 도입했다. 이날 중국 교육부는 초등학교 1~2학년은 지필고사를 볼 수 없도록 했다. 주간·월간 단위 시험뿐 아니라 비정기적 테스트·시간제한 연습 등 변칙적 형식도 금지했다. ‘쪽지시험’ 도 못 본다는 얘기다.

초등학교 고학년이나 중학생은 시험을 볼 수 있지만, 등수를 매기거나 성적을 공개해선 안 된다. 공부 잘하는 아이만 모으는 우등반 편성도 금지했다. 학생에게 반복·징벌적 숙제를 내서는 안 되고 학부모에게 숙제 검사 등을 부탁해선 안 된다. 이는 공산당 중앙판공청과 국무원 판공청이 지난달 말 과도한 숙제와 사교육 부담을 줄이겠다며 내놓은 ‘쌍감(雙減) 정책’의 일환이다. 당시 공산당은 학교 수업 관련 사교육 기업의 활동과 초·중등생의 사교육을 금지했다. 이런 강공책에 연 1200억 달러(약 138조 원) 규모의 중국 사교육 시장은 얼어붙었다.

중국이 사교육과 게임에 철퇴를 내리치는 건 시 주석이 강조하는 ‘공동부유’ 때문이다. 부(富)를 공정하게 나누자는 ‘공동부유’의 시각에서 사교육과 게임은 가장 눈엣가시 같은 영역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국 공산당이 해결책으로 꺼낸 것이 ‘유모 국가(Nanny State)’ 전략이란 게 파이낸셜타임스(FT)의 분석이다. 유모국가는 유모가 어린아이를 돌보듯 국민의 세세한 부분까지 간섭하고 통제하는 국가를 뜻한다. 공공질서 유지를 위해 촘촘한 규제를 펼쳤던 싱가포르가 대표적인 ‘유모 국가’다.

FT는 “(공동부유) 실현을 위해 중국이 택한 것은 규제”라며 “시 주석과 공산당은 전체 산업을 뒤엎고 자녀 교육과 게임 등 인민의 사적인 생활을 규제하는 등 (개혁개방 이후) 40년 동안 꾸준히 줄여오던 개인에 대한 간섭을 다시 늘리고 있다”고 평가했다.

문제는 강력한 규제 전략을 택한 중국의 행보가 중국 기업에 큰 타격을 주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 컨설팅업체 플레넘의 천룽 애널리스트는 “중국은 정치적으로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산업 전반의 환경을 변화시키는데 주저하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이미 철퇴를 맞은 사교육 시장뿐만 아니라 정부 정책의 희생양이 된 대표적 분야가 부동산이다. 중국 최대 부동산 기업 헝다(恒大) 그룹의 주가와 회사채 가격은 지난 6월부터 하락하며 유동성 위기다.

헝다 그룹 주가 추이.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헝다 그룹 주가 추이.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의약·바이오 기업에도 된서리가 내릴 확률이 높다. 중국 국무원이 지난 6월 약값 인하와 의료체계 정비를 주요 정책 목표로 제시했기 때문이다. 헤지펀드 대부 조지 소로스 소로스펀드 및 오픈소사이어티 회장은 FT 기고문에서 “시 주석은 시장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해하지 못한 채 기업을 과도하게 규제하고 있다”며 “이 조치가 중국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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