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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전력증강비 줄었는데 +2%? 기막힌 '항목 이전' 꼼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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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국방부가 31일 내년도 국방예산을 공개하면서 사실상 전년보다 줄어든 방위력개선비를 2% 올린 것으로 발표해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해 6월 22일 공군 F-35A 스텔스 전투기 6대가 청주 공군기지에서 이륙을 준비하고 있다. 김성태 프리랜서

지난해 6월 22일 공군 F-35A 스텔스 전투기 6대가 청주 공군기지에서 이륙을 준비하고 있다. 김성태 프리랜서

국방예산의 약 32%(올해 기준)를 차지하는 방위력개선비는 F-35 스텔스 전투기 도입이나 경항공모함 건조와 같은 군의 전력 증강에 쓰이는 돈이다. 국방예산에서 방위력개선비를 제외한 나머지는 인건비, 급식ㆍ피복비, 군수지원, 군사시설 건설·운영비 등의 전력운영비로 구성돼 있다.

국방부는 이날 내년도 방위력개선비가 올해보다 2%(3401억원) 늘어난 17조3365억원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방위사업청이 한기호 국민의힘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이중 7365억원은 올해까지 전력운영비로 책정됐던 항목이다. 올해 예산 기준대로 재산정하면 내년도 방위력개선비는 전년 대비 -2.3%(-3964억원)인 16조6000억원으로 줄어든다는 얘기다. 국방부가 국민을 상대로 숫자놀음을 하고 있다는 비판을 자초했다.

이와 관련 국방부와 방사청은 내년도 예산을 짜면서 그간 군수지원에 해당하는 ▶성능개량 창정비(3177억원) ▶유도탄 수명연장(485억원) ▶전력화 초기 안정화(3703억원) 등을 방위력개선비 항목으로 옮겼다. 국방부 관계자는 “방위력개선비로 전환한 예산의 경우 방위사업법에 관련 근거가 마련돼 있다”고 말했다.

"항목 옮겨 숫자 부풀린 사기극" 

하지만 이런 국방부의 해명은 예산 이관을 계획할 당시 내부 회의 결과와 상충한다. 국방부가 한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2월 17일 국방부ㆍ방사청ㆍ각 군 본부 간 실무회의에선 주요 안건으로 ‘창정비’와 ‘수명연장’ 등을 방위력 개선사업에 포함시키는 “방위사업법 개정 추진”이 논의됐다.

한 의원은 “지난 수십 년 동안 방위력개선비에 포함하지 않던 항목을 뜬금없이 이관하는 건 견강부회”라며 “실무자들이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문제점을 지적했는데도 항목을 바꿔 숫자를 부풀려 발표한 것은 대국민 사기극”이라고 비판했다.

이명박 정부 이후 방위력개선비 추이.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이명박 정부 이후 방위력개선비 추이.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방위력개선비 감액 편성은 매우 이례적이다. 예산 사정에 밝은 정부 관계자는 "자료들을 다시 봐야겠지만, 내가 알기로는 정부 수립 이래 '마이너스 편성'은 없었다"고 말했다.

외환위기 영향으로 마이너스 국방예산(-0.4%)을 편성했던 1999년도(김대중 정부)에도 방위력개선비만큼은 0.5% 증액했다.

이 때문에 정부 안팎에선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등을 배경으로 군사력 강화를 내세운 청와대의 기조에 맞춰 국방부가 숫자를 부풀리는 꼼수를 구사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전작권 전환을 위해선 전력 증강이 필수적이다. 그간 전력 증강을 강조해오다가 내년엔 해당 예산이 줄었다고 발표하기 곤란해 항목을 이관하는 방식의 예산 증액으로 숫자를 맞추려 했다는 의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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