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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철호 칼럼

대한민국 사법을 향한 조국 일가의 무모한 도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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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이철호
이철호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철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철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조국 전 장관 일가에게 올해 8월은 잔인한 계절이다. 정경심 교수가 징역 4년, 동생 역시 항소심에서 징역 3년에 법정 구속됐다. 딸은 부산대 의전원 합격 취소 예정 처분을 받았다. 좌파 진영은 조 전 장관 일가에게 피해자 코스프레를 넘어 순교자 코스프레까지 펼치고 있다. “꼴통 보수 판사와 검사들이 사법개혁·검찰개혁에 앙심을 품고 온 가족을 인질 삼아 잔인한 사법 폭력을 휘두른다”는 것이다.

그러나 검찰 측은 형량이 과도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숙명여고 쌍둥이 아빠와 최순실의 이화여대 입시 부정도 3년 실형이 나왔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자본시장법 위반은 1년 이상의 실형을 선고하도록 양형이 강화됐다”는 설명도 잊지 않는다. 최근 고등법원 부장판사를 마치고 나온 2명의 변호사는 의견이 달랐다. 형량이 예상보다 높다는 쪽이었다. 이들은 2년 6개월 정도의 실형이 선고될 것으로 보았다. 입시 비리라 해도 내신 성적이나 수능 점수 조작, 시험지 빼돌리기, 채점자 매수 같이 직접적이고도 악질적인 범죄가 아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범죄가 입시 때 첨부하는 표창장이나 인턴 경력 등 스펙 조작이란 점에서다.

파렴치한 범죄도 프레임 따라
거룩한 정치적 순교로 둔갑
사법마저 정치로 오염되는
우리 사회의 뒤틀린 현주소

하지만 이들도 1심·2심 판결문을 보고 나서는 생각을 바꾸었다. “조국·정경심 두 사람은 바보가 아니면 진짜 독한 사람”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이들 판사 출신은 판결문에 나온 “진실을 이야기하는 사람에게 정신적 고통을 주었다” “단 한 번도 자신의 잘못에 대해 반성한 사실이 없다” “입시 제도의 공정성에 대한 우리 사회의 믿음을 심각하게 훼손해 죄질이 나쁘다”는 표현에 주목한다. 작심하고 최고 양형을 선고한 배경이란 것이다.

“판사들은 양형을 정할 때 정상(情狀)을 살핀다. 피고가 잘못한 부분을 인정하고 진실로 반성하는지 따진다. 피해자와 합의하거나 피해 회복에 얼마나 노력했는지도 감안한다. 이른바 정상 참작이다. 하지만 조 전 장관 일가에는 이런 정상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분명하게 드러난 증거마저 외면한 채 법정에서 부인·묵비·음해에 치중했다. 판사들이 변소·반박할 기회를 충분히 주었는데도 작은 꼬투리를 잡아 법정 바깥에서 여론 싸움에 열중한 것으로 비쳤다. 판사들이 곱게 볼 리 만무하다.”

이들은 서울대 로스쿨 형사법 교수인 조 전 장관이 왜 정경심 교수 2심에서 세미나 동영상 속 인물이 딸이라는 것에 집착했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재판 실무에선 진술 증거보다 객관적인 비진술 증거가 압도적으로 중요하다. 사람의 기억은 오락가락하지만 구체적인 팩트와 물적 증거에 입각한 사실은 흔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재판 과정을 보면 위조된 인턴 확인서와 공익인권법센터 관계자들로부터 입수한 명백한 비진술 증거들이 차고 넘쳤다. 그런데도 정 교수 측은 딸 친구가 번복한 진술 증거에만 매달린 것이다. 지엽적인 사안으로 전체 판결을 뒤집어 보겠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패착이다.”

1심에서 동양대 PC가 오염된 증거라는 주장도 마찬가지다. 재판부는 판결문 중 40여쪽에 걸쳐 꼼꼼하게 PC에 관련된 사실관계를 적시했다. PC를 넘긴 조교가 제출을 강요받은 사실이 없을 뿐 아니라 “설령 위법수집 증거가 인정되더라도 표창장을 위조한 것은 명백하다”고 판시했다. 사소한 꼬투리로 본질을 흐리지 말라는 것이다.

보통 고법 부장판사들은 대법원에서 다툴 여지가 있으면 피고인들이 자유로운 상태에서 다툴 수 있도록 풀어주는 게 일반적이다. 이번에 2심 재판부들이 정 교수와 조 전 장관 동생을 법정 구속한 것은 더 이상 사실을 놓고 다툴 여지는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법조계에서도 고법 대등재판부가 내린 판결을 대법원이 뒤집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게 중론이다.

팩트는 신성하다. 아무리 좌·우로 갈라져도 법률가라면 팩트 자체를 부인할 수는 없다. 이미 진보 쪽 법조계부터 서서히 조 전 장관 일가를 손절하려는 분위기다. 부산대가 대표적이다. 부산대는 조민씨의 의전원 입학 취소에 대해 “최종 결정은 차정인 총장이 했다”고 밝혔다. 차 총장은 민변 출신으로 노무현 재단 경남지역 대표를 지냈다. 그의 총장 취임식 때 김경수 경남지사가 축사를 한 대표적인 친노·친문 성골이다. 그런 차 총장마저 1심·2심 판결문을 본 뒤 더 이상 보호막을 치기 어렵다고 판단한 셈이다.

그럼에도 조 전 장관 일가는 대한민국 사법을 향한 무모한 도전을 멈추지 않고 있다. 실제로 중형이 선고될수록 그의 지지층은 더 똘똘 뭉치는 분위기다. 여론조사에서 부산대 입학 취소에 응답자의 55.9%가 “잘한 일”이라고 했다. 같은 날 청와대 게시판의 “부산대 입학 취소는 인권 탄압이자 헌법 위반”이라는 청원에도 34만명 이상이 동의했다. 김어준씨는 “내년 대선에서 이기면 조국의 시간은 반드시 다시 온다”고 했다. 사태의 본질이 법적 다툼이 아니라 정치 투쟁이라는 의미다. 아무리 파렴치한 범죄도 그럴듯한 프레임을 씌우면 언제든지 거룩한 정치적 순교로 둔갑시킬 수 있는 세상이 된 것이다. 사법마저 정치에 오염되고 있는 우리 사회의 현주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