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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세주를 기다리는 마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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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장강명 소설가

장강명 소설가

지난달 경향신문에 김택근 시인이 ‘좋은 정치인은 갑자기 솟아날 수 없다’는 제목의 칼럼을 썼다. 정치 신인들이 대선판을 움직이는 요즘 정국을 비판하고, 우리가 정치 혐오를 극복해야 더 좋은 지도자를 얻을 거라고 주장하는 내용이다. 구구절절 공감하며 읽었다.

얼마 뒤에 나온 성한용 선임기자의 한겨레신문 칼럼도 고개를 끄덕이며 정독했다. ‘정치 문외한을 정치 지도자로 받드는 기괴함’이라는 제목이다. 마지막 문단에 ‘최근 김택근 시인의 칼럼에 전적으로 공감한다’는 말이 있어서 읽다가 미소를 짓기도 했다.

거듭해서 실패하는 한국 정치
외부의 초인을 바라는 사람들
세상을 구할 상상력은 어디에

두 칼럼의 논의를 이어보려 한다. 어쩌다 우리는 정치 신인들을 구세주로 떠받들게 됐을까? 앞으로도 선거 때마다 계속해서 이런 현상이 벌어질까?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답이 잘 안 나올 질문들이지만, 어수선한 대로 적어보려 한다.

정치인은 원래도 그다지 사랑받는 직업은 아니다. 왕좌를 거부한 백이와 숙제, 관직을 맡아달라는 요청을 받고 귀를 물로 씻은 허유의 고사를 보면 아주 옛날부터 사람들은 정치인을 미워한 것 같다.

게다가 한국 정치는 거듭해서 실패하는 중이라, 많은 이들이 이른바 ‘여의도 정치’에 환멸을 느낀다. 가끔은 정치인들이 가엾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고대인들은 특정한 날 양 한 마리를 죽이며 일종의 사회적 살풀이를 했다. 우리는 1년 내내 직업 정치인을 욕한다.

앞으로도 그런 심리는 더 강해질 것 같다. 중산층 일자리 감소에서부터 기후 변화까지, 초국가적인 위기가 닥쳤으며, 한국을 포함한 국민국가들은 이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다. 사람들은 좌절이 쌓이면서 조급해지고, 정치인들이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은 더 줄어든다.

그 사이 상당수 정치꾼이 대통령제와 소선거구제를 해킹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갈등을 조정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유발시켜서 이름을 알리고, 막판에 중도를 공략해 51%만 확보하면 된다는 전략이다.

개헌이나 선거제도 개편이 답이 될까. 전국 단위 선거의 주기를 일치시키면 정당들의 전면전 기간이 좀 줄 것 같다. 하지만 내각제와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해도 제도의 약점을 노리는 정치 해커들이 사라지지는 않으리라.

이런 현상들이 서로가 서로의 원인이 되어 양의 되먹임 고리를 완성한 것 같다. 사람들은 지쳐서 그 매듭을 푸는 방법을 궁리하는 대신 그걸 단칼에 끊어줄 초인을 꿈꾸기에 이르렀다. 정당들도 동조한다. 대선에서도, 총선에서도 외부 명망가를 모시기 바쁘다.

하지만 그런 꿈은 이루어질 리 없고, 악몽으로 변질되기 쉽다. 우리는 안철수 현상이 어떻게 끝났는지 봤다. 더 섬뜩한 사례를 들자면, 히틀러가 그런 초인 행세를 했었다. 잠언의 저자가 가르친 대로, 새가 그물에서 벗어나듯이, 스스로 구원해야 한다.

그러려면 21세기의 가장 중요한 자원부터 확보해야 한다. 공동체의 미래를 기획하는 능력 말이다. 한국은 추격의 시대를 마감했고, 이제 미국부터 북유럽까지 어떤 나라도 우리의 모델이 되지 못한다. 자영업자가 이렇게 많은 선진국은 없다.

내일에 대한 믿음이 있으면 오늘의 힘겨움을 이겨낼 수 있다. 때로 기적도 일으킨다. 하지만 전망과 의미가 보이지 않으면 사람들은 금세 무너진다. 한국이 그런 상황에 빠진 것 같다. 사회 전체가 중년 위기를 겪는 듯하다.

한국 정치가 암울해 뵈는 근본 이유가 이거다. 꿈의 공장이 돼야 할 정치권이 최근 10여년간 낸 아이디어들을 보라. 갈수록 억지스러워졌다. 낙수 효과. 증세 없는 복지. 소득 주도 성장. 이젠 고작 상식·공정, 도깨비방망이 같은 기본소득, 뭐 그런 소리를 한다.

세상을 구할 상상력은 아직 굳지 않은, 싱싱한 머리에서 나올 테지. 그런 면에서 나는 한국 정치가 청년 세대를 대하는 태도가 못마땅하다. ‘여러분 힘든 거 압니다. 복지서비스를 드릴 테니 저희 좀 찍어주세요’ 하는 그 태도. 그런 말을 자꾸 들으면 정치 영역을 쇼핑센터나 하청업체 정도로 여기게 된다.

나는 한국 사회가 청년들에게 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버지들을 너무 미워하지 말라고, 우리를 구해 달라고 말이다. 부디 이 혼미를 뚫을 방안을 연구해달라고. 공부하고 조사해서 제대로 발표해 달라고. 논쟁을 걸어 달라고.

미국은 얼마 전 연방거래위원회 위원장에 32세 여성 법학자인 리나 칸을 임명했다. 플랫폼 기업의 영향력을 통제하기 위해, 그 이론적 근거를 제시한 젊은 학자를 파격 발탁한 것이다. 이것이 미국의 힘이구나, 생각했다. 정말 부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