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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미군 떠나자 탈레반 축포, 남은 시민 현금인출 줄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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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미국이 가장 오랫동안 치른 전쟁이 막을 내렸다.

미군 완전 철수 시한인 31일(현지시간) 직전인 30일 오후 11시59분 카불 국제공항에서 미군의 마지막 C-17 수송기가 이륙하자 탈레반이 승리의 축포를 터뜨렸다. AP통신은 “공항 주변 도로 곳곳에서 자동차 경적, 휘파람 소리, 축포가 울렸다”고 전했다.

탈레반 깃발을 꽂고 헤드라이트를 밝힌 자동차들이 거리로 쏟아졌다. 31일 오전 1시 자비훌라 무자히드 탈레반 대변인이 소셜미디어에서 “완전한 독립을 달성했다”고 선포하자 탈레반 무장대원들은 카불 시내 곳곳에서 예포를 발사했다. 폭발음은 한 시간가량 이어졌다.

2021년 4월까지 아프간 희생자.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2021년 4월까지 아프간 희생자.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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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스(NYT)는 “환호하는 탈레반과 대조적으로 카불 일대는 체념 분위기로 뒤덮였다”고 보도했다. 남은 시민들은 날이 밝자 은행으로 몰려가 현금 인출을 위해 길게 줄을 섰다. 아프간 중앙은행은 지난달 28일 민간 은행의 영업 재개를 명령하고 1인당 현금 인출 한도를 일주일에 200달러 수준으로 제한했다. 식료품 등 생필품 물가는 치솟고 있다.

여성권리 및 교육 수준.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여성권리 및 교육 수준.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카불에서 11년째 철물상을 해온 누룰라는 AP통신에 “탈레반의 입성 뒤 단 한 명의 손님도 없었다”며 “돈 있는 사람은 모두 외국으로 탈출했고 가난한 사람만 남았다”고 토로했다. 국제신용평가기관 피치는 앞으로 2년간 아프간 경제 규모가 10~20%가량 축소될 것으로 전망했다. 국가 위기를 겪은 시리아·레바논·미얀마와 비슷한 수준이다.

아프간 통신사용.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아프간 통신사용.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남은 미국 국적자와 현지 조력자들은 불안한 상황이다. 탈레반의 보복 대상이 될 수 있어서다. 로이터통신은 전시동맹협회(AWA) 자료를 인용해 지난달 25일 기준 미국 특별이민비자(SIV) 신청자와 그 가족 6만5000명, 제2 우선순위(P-2) 자격자와 그 가족 19만8000여 명이 아프간에 남았다고 전했다. P-2 자격은 미 언론사나 비정부기구(NGO) 등에서 일한 사람에게 주어진다.

아프간 은행 계좌.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아프간 은행 계좌.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SIV 소지자지만 미군 수송기를 타지 못한 하마윤은 NYT에 “미국이 나를 배신했다”며 “이웃들이 탈레반에 내가 미국인과 일했다는 사실을 알려줘 비참한 상태에 놓였다”고 울분을 터뜨렸다. 미국 국제개발처(USAID) 지원으로 설립된 카불 아메리칸대학의 학생과 가족 등 6만 명도 남겨졌다.

아프간 경제.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아프간 경제.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이날 미 중부사령부의 케네스 매켄지 사령관은 언론 브리핑에서 “미군 역사상 최대의 민간인 대피 작전”이라고 자평하면서도 “탈출을 원하는 모든 사람을 이송하지는 못했다”며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미국을 도운 아프간인을 대피시키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그들에 대해 우리의 (구출) 약속에는 데드라인이 없다”고 말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미군이 수많은 사람을 남기고 철수한 것은 “도덕적 재앙”이라고 비판했다. 정치 전문 매체 더힐도 “‘모든 미국인을 대피시키겠다’고 약속했던 바이든 대통령이 비난에 직면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WP는 지난달 15일 아슈라프 가니 전 아프간 대통령이 해외로 도피하자 탈레반 2인자 압둘 가니 바라다르가 미 중부사령부의 매켄지 사령관에게 “카불의 치안을 미군이 책임지든지, 아니면 우리가 맡도록 허용하라”고 제안했으나 미군은 카불 장악 기회를 포기했다고 보도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8월 말 철군 방침을 굳힌 상황에서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는 것이다. WP의 마크 티센 칼럼니스트는 “우리 지도자들은 미군보다 테러리스트의 손에 미국인과 동맹국의 안전을 맡겼다”며 “이는 직무유기”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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