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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강덕구가 저격한다

부동산도 방역도 'K-자화자찬'…대통령님, 20대는 거북합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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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K-방역의 장점이 흔들림 없이 작동되고 고위험군 백신 접종도 완료되면서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의 치명률을 보이고 있다.”

지난달 2일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한 발언이다. 코로나 신규 확진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가운데, 또다시 K-방역의 우수성을 자화자찬한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백신 보급이 다른 선진국보다도 현저히 늦어지면서, 국민은 불안해하고 있다. OECD 국가 중 백신 접종 완료율은 최하위 수준이다. 거리 두기 4단계가 장기간 지속하며 자영업자 신음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깊어지고 있다. 취업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취업 준비생은 역대 최대인 86만명에 이르고 있다. 자영업자와 20대에게 K-방역은 죽음의 계곡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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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방역 자화자찬은 마치 "남미 문명은 고구려 민족의 후손"이라는 이른바 환단고기 추종자들의 주장과 비슷한 수준으로 들린다. 둘 모두 국가적·민족적 자부심의 고양을 목적으로, 충분히 합의된 현재의 사실(common sense)을 부정하고 ‘대안적’ 현실을 구성해 낸다는 공통점이 있다. 환단고기가 일부 재야 사학자들에게 통용되는 데 반해, K-방역은 정부가 권위를 인가했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여기에 환단고기는 기본적으로 판타지 내지 희망 사항에 속하는 반면, 현재의 비극에 대한 정부의 대안적 사실 구성은 대중의 인식을 왜곡해 끼친다는 더 큰 차이도 있다. K-방역이 그렇게 잘 작동한다면, 1년 넘게 이어지는 자영업자들의 고통과 눈물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지지자들 믿음 위해 현실을 연출

K-방역 자화자찬은 사실 기반의 정보를 부정하고, 여론을 호도하는 데 활용한다. 비단 방역만이 아니다. 칭찬이 어려운 상황에서 칭찬하려다 보니 정보 자체에 착시효과를 주는 대담함으로까지 이어지는 걸 이미 목격했다. 2019년 정부 홍보 책자가 대표적이다. 2.7%의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0.9%의 일본의 경제 성장률과 비교하며 그래프 상으로 5배 이상 차이 나게 만들었다. 기초연금 인상액과 병장 봉급 인상 등, 다양한 방식으로 그래프의 크기를 조정했다.

논란이 된 왜곡 그래프. 실제 차이보다 한일간 격차를 훨씬 벌어지게 만들었다.

논란이 된 왜곡 그래프. 실제 차이보다 한일간 격차를 훨씬 벌어지게 만들었다.

최근 민주당 워크숍에서 나온 문 정부 4년 평가 자료집에선 "(한국이) 2020년 세계언론 자유지수 기준으로 아시아에서 3년 연속 1위"라는 자평을 볼 수 있었다. 이날 이호승 청와대 정책실장은 "OECD 평균 집값 상승률이 7.7%이고 한국은 5.4%에 불과한데도 국민들이 납득 못 하는 상황"이라고 최악의 부동산 정책마저도 자화자찬했다. 노골적 언론 통제 의도를 드러낸 위헌적인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통과를 앞두고 있고, 부동산 값이 폭등하는 상황 속에서 이러한 자화자찬은 국민 눈을 가리는 데 이용된다.
영화 '트루먼 쇼'(1998)나 '굿바이 레닌'(2003)처럼 허구의 작품이라면 매력적으로 비치겠지만 국민이 보는 건 스크린 속 허구가 아니라 실제 현실이다. 그런데도 이번 정권은 현실을 연출하고 허구처럼 제작한다. 탁현민 같은 공연 기획자나 김어준 같은 미디어 사업가가 제작하는 현실은 오로지 지지자들이 정권에 표하는 믿음을 반영하는 수단이 된다. 2018년 남북 정상 회담 당시 정권은 남북 정상의 관계를 화기애애한 형제처럼 꾸미는 데 전력을 다했지만 그 이후 북한은 남북 연락 사무소를 폭파했고, 북한은 보란 듯이 연락을 끊었다.

영국 철학자 줄리언 바지니는 지지자들이 표하는 정치적 믿음이 모여 ‘생각의 그물망’을 이룬다고 말한다. ‘생각의 그물망’은 거미줄처럼 엮여있어 하나의 대안적 사실이 교정된다고 해서 붕괴하지 않는다. 오히려 정치적 세계관으로 발전한다. 이를테면 나치의 유대인 혐오는 ‘게르만 우월주의’라는 세계관에서 비롯됐다. 과학적 사실이 아니더라도 상관하지 않았다. 최근 사례로는 이민자들이 국가 재정을 갉아먹는다고 믿는 미국의 트럼프 지지자들이 있다. 정권이 대안적 사실을 제공하면 지지자들은 이 사실을 의심 없이 믿는다. 그러면 다시 정권은 지지자들의 정치적 믿음에 부합하는 대안적 사실을 제시한다.

K에 집착하는 문재인 정부

이번 정권의 자화자찬은 K-방역에서처럼 ‘K’에 집착한다. 방역보다 중요한 것은 ‘K’다. 지난 7월 문화체육관광부가 공식 SNS에 게재한 문제의 게시물이 잘 보여준다. '쇠퇴하는 일본, 선진국 격상 대한민국'이라고 쓴 카드뉴스는 이번 정권의 세계관을 고스란히 보여줬다. 자화자찬을 위해 타국을 깎아내린다. 여기서 자화자찬의 정치적 기능이 드러난다. 즉 자화자찬은 나를 포장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타인을 깎아내리고 비방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시청자들은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타인을 빛내는 유머 감각을 좋아하지, 타인을 끌어내려 이끌어내는 웃음을 좋아하지 않는다. 예능 프로그램조차 이러한데 국제사회는 어떨까? 그런데도 K-자화자찬은 어느새 타국을 향한 공격무기로 돌변했다. 타자와 나를 가르는 무기가 됐다.
지난 2019년 ‘한일 무역 전쟁’에서 이를 드라마틱하게 교차하며 보여줬다. 문 대통령은 “다신 지지 않겠다” 같은 호전적인 발언을 하며, 무역 전쟁 승리를 자신했다. 일본이 무역 전쟁을 도발했으므로 이러한 적의와 분노가 유효한 전략이라는 주장도 있다. 다만, 문재인 정권은 국제 사회가 수만 개의 관계로 이뤄진 네트워크라는 점을 망각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서울 중구 문화역서울284에서 열린 제76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사전녹화 된 김원웅 광복회장의 기념사를 본 후 박수를 치고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한국일보 왕태석 2021.08.15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서울 중구 문화역서울284에서 열린 제76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사전녹화 된 김원웅 광복회장의 기념사를 본 후 박수를 치고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한국일보 왕태석 2021.08.15

문 대통령이 올해 광복절 경축사에 자랑스레 언급한 한국 문화 콘텐트만 해도 오롯이 한국의 힘만으로 탄생한 게 아니다. '기생충'으로 아카데미 작품상·감독상을 받은 후 청와대 오찬에 초대됐던 봉준호 감독 역시 그가 영향을 받은 영화 리스트에 일본 영화 이마무라 쇼헤이의 '복수는 나의 것'(박찬욱 감독은 아예 이 제목을 차용해 영화를 만들었다)과 구로사와 기요시의 '큐어' 꼽았다. 비단 봉준호만일까? K-팝이 블록버스터 팝의 문법과 일본의 아이돌 육성 제도를 절묘하게 배합해서 탄생한 것을 모르는 이는 없다. 아시아와 전 세계의 문화생산물이 한국 문화의 영광을 가능케 한 것을 잊어선 안 된다. 이날 김원웅 광복회 회장은 문 정부와 다른 정치적 성향을 가지고 있는 동료 시민을 ‘친일파’로 명명하고, 청산해야 한다고 했다. 이러한 발언이 나오는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한국 문화의 힘을 역설하며 대한민국이 이제는 국제 사회에서 우뚝 선 강국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한국의 성장을 가능하게 만든 국제사회라는 밑바탕은 사라지고 남은 건 청산해야 할 적과 무한정 뻗어 나갈 민족의 미래뿐이다.

관제 민족주의가 낳은 역사 왜곡 

‘대안적 사실 제공’과 ‘타자를 향한 독기어린 으르렁 말’. K-자화자찬의 두 가지 기능이다. 문 정부 지지기반인 민변 출신이지만 조국 사태 이후 등을 돌린 권경애 변호사는 ‘파시즘 정권’이라 명명했다. 이번 정권의 정치적 세계관은 파시즘보다는 ‘관제 민족주의’가 더 잘 어울린다. 식민지에서 독립한 신생국가에 민족주의는 달콤한 유혹이다. 민족주의는 국가에 필요한 ‘본질’을 제공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문 정권은 끊임없이 일제 강점기 시기에서 민족의 영원한 본질을 찾는다. 그들은 역사를 친일파와 독립운동가로 양분한다. 때로는 조선 영·정조 시기까지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노론이 친일파 역할을 맡기도 한다. 그러나 동학농민운동, 3·1 독립운동, 4·19혁명 등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면면히 내려온 한반도 민초들의 저항정신’은 사후적으로 구성된 또 하나의 허구에 다름 아니다. 실증적으로 관찰할 수 없는 민족정신 담론을 동원해 거대한 서사의 줄기를 만들고 ‘정통성’으로부터 비롯된 권위를 차지하려는 현 정부의 노력은 또 하나의 역사 왜곡에 가깝다. 사회에 존재하는 이념적 갈등을 관리하고 시민사회가 관련 논쟁과 다툼을 적절하게 소화할 수 있도록 돕는 장치가 제도적 민주주의라고 할 때, 오히려 갈등을 조장하고 국민 내부의 갈라치기에 몰두하는 것을 보면 문재인 행정부의 기조가 이러한 소명을 충분히 다하고 있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