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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수·조국 판결에 보복? 김명수 대법 '숙원 법안' 무산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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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루킹 댓글 여론조작' 사건에 연루된 혐의로 기소된 김경수 경남지사의 대법원 선고가 예정된 7월 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김명수 대법원장이 출근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드루킹 댓글 여론조작' 사건에 연루된 혐의로 기소된 김경수 경남지사의 대법원 선고가 예정된 7월 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김명수 대법원장이 출근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31일 국회 본회의에서 법원조직법 개정안이 이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반란으로 찬성 111명, 반대 72명, 기권 46명으로 부결됐다. 개정안은 판사 임용 요건인 최소 법조 경력을 10년에서 5년으로 줄이는 내용으로 김명수 대법원의 숙원 과제였다.

법원은 여당 의원들의 반란표로 찬성 4표가 부족해 개정이 무산되자 당황한 분위기가 역력했다. 대법원은 부결 직후 "국회의 결정을 존중하고 현행법에 따라 법조일원화를 추진하겠다"고 한 줄 입장만 냈다. 하지만 법조계와 정치권에선 "최근 김경수 전 경남지사,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에 대한 법원의 잇따른 유죄 판결로 여권이 법원 길들이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왔다.

법원 “10년 이상 로펌 파트너급이 오겠냐" 개정안 추진

현행 법원조직법에 따르면 내년부터 검사·변호사 등 경력 7년 이상인 법조인만 판사 임용에 지원할 수 있고, 2026년부터는 10년 이상인 법조인만 지원할 수 있다. 2013년부터 로스쿨(2009년)·변호사시험(2012년) 제도 도입의 후속 조치로 변호사 경험을 쌓은 법조인을 판사로 임용하는 법조일원화 제도를 시행하면서다. 2013~2017년 경력 3년 이상, 2018년부터 올해까진 5년 이상으로 경과 기간을 뒀다.

하지만 법원 내부에서는 현행대로 최종 경력 10년 이상 변호사만 판사로 임용하게 되면 우수 인력을 유치하기 힘들어진다는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이런 김명수 대법원의 우려를 반영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홍정민 의원, 정청래 의원 등이 지난 5~6월 앞다퉈 5년 개정안을 발의했다. 야당 국민의힘에서도 판사 출신 전주혜 의원이 비슷한 개정안을 발의했다.

로펌에서 이미 자리를 잡은 10년차 이상 파트너급 변호사가 공직(Public Service)이란 이유 하나 때문에 급여가 훨씬 적은 판사를 지원하겠느냐는 현실론이 근거다. 김형두 법원행정처 차장은 7월 15일 법안심사1소위에서 "현재도 10년 이상 법조 경력자가 판사를 지원하는 비율은 7~11%밖에 안 된다"며 최소 법조 경력을 5년으로 낮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3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판사에 지원할 수 있는 최소 법조경력 요건을 낮추는 내용의 법원조직법 개정안이 부결되고 있다. 연합뉴스

3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판사에 지원할 수 있는 최소 법조경력 요건을 낮추는 내용의 법원조직법 개정안이 부결되고 있다. 연합뉴스

김경수 유죄 확정 이후 법원 향한 기류 달라진 여권

여당 의원들이 주도한 개정안이었기에 법안소위 통과까지 무난했다. 하지만 7월 21일 대법원이 '친문 적자' 김경수 전 경남지사의 유죄를 확정판결한 뒤 기류가 달라졌다. 하루 뒤인 7월 22일 법사위 전체회의에 상정도 되지 못한 채 발목이 잡혔다. 이탄희 의원이 주도한 반대론에 열린민주당 최강욱 의원 등이 가세했기 때문이다.

이어 한 달만인 지난 24일 여야 합의로 법사위 전체회의를 통과한 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된 것도 21대 국회 들어 처음 있는 일이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야당은 몰라도 여당 의원 30~40여명이 집단으로 반대·기권한 건 최근 법원에 대한 판결에 대한 괘씸죄를 묻는 보복 차원 아니냐”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달 11일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부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가 서울고법 항소심에서 1심과 같이 징역 4년 형을 선고 받고 26일엔 동생 조권씨가 1심보다 3배 형량인 징역 3년형을 받고 법정 구속된 게 영향을 미친 게 아니냐는 의심이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개정안이 통과되면 대법원이 여당에 아쉬울 게 없어지지 않겠나"라며 "앞으로도 중요한 판결들이 남아 있어 법원 길들이기가 필요하다고 보는 여권 의원들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판사 출신인 이탄희 의원은 이날 반대 토론자로 나서 "(개정안이 통과되면) 지난 6월 강제징용 손해배상 각하 판결처럼 탁상공론 늘어날 것"이라며 법원 판결을 지목하기도 했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이탄희 의원을 비롯해 친조국 강경파인 최강욱·김용민·황운하·고민정 의원 등이 반대표를 던진 것을 보면 여권이 법원에 던지는 메시지가 읽힌다"고 말했다.

이탄희 "김명수 코트도 입법 로비…양승태와 뭐가 다른가"

더불어민주당 이탄희 의원이 지난 2월 4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제384회국회(임시회) 제4차 본회의에서 법관(임성근) 탄핵소추안의 투표를 마치고 동료의원과 인사를 하고 있다. 뉴스1

더불어민주당 이탄희 의원이 지난 2월 4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제384회국회(임시회) 제4차 본회의에서 법관(임성근) 탄핵소추안의 투표를 마치고 동료의원과 인사를 하고 있다. 뉴스1

이 의원은 이날 본회의 반대 토론과 이후 TBS라디오 '신장식의 신장개업'에 출연해 "김명수 법원행정처의 현직 판사들이 법원조직법 개정안 입법 로비에 많이 동원됐다"라고 폭로하기도 했다. 그는 "현직 대법관이나 고등법원 부장이 재판 영향력을 앞세워 양당 국회의원에 접근하는 게 전임 양승태 대법원과 뭐가 다르냐"며 "입법 로비를 전담했던 판사들은 재판부에 복귀 안 했으면 좋겠다"라고도 했다.

야당 국민의힘 의원들도 상당수 반대했다. 반대표를 던진 국민의힘의 한 의원은 "당 차원의 합의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고, 의원들 개별적으로 판단했다"며 "개정안이 통과되면 여권에 순응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경력 낮은 법조인들이 법관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반영된 것 같다"고 말했다. 김명수 대법원장에 대한 반감이 작용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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