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모 국가’ 된 중국…규제 칼춤에 게임·교육·부동산업계 초토화

중앙일보

입력 2021.08.31 18:49

업데이트 2021.08.31 19:06

지난 26일 중국 상하이의 한 거리에서 한 여학생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포스터가 걸린 거리 옆을 걷고 있다. [EPA=연합뉴스]

지난 26일 중국 상하이의 한 거리에서 한 여학생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포스터가 걸린 거리 옆을 걷고 있다. [EPA=연합뉴스]

중국 정부가 국민의 '유모(Nanny)'를 자처하고 나섰다. 게임 시간제한에다 학교 시험과 사교육 금지까지 국민의 사생활에까지 깊숙이 발을 디디고 일거수일투족에 간섭하기 시작한 것이다. 시진핑 국가 주석이 내건 ‘공동부유(共同富裕)’ 기치에 발맞추기 위해서다.

신화통신에 따르면 지난 30일 게임 부문을 총괄하는 중국 국가신문출판서는 청소년 게임 규제안을 발표했다. 18세 미만은 월~목요일에 온라인 게임을 아예 못하는 게 골자다. 금~일요일과 휴일에도 오후 8~9시까지 1시간만 게임을 할 수 있다. 중국 당국은 지난 3일 관영언론 경제참고보에서 “온라인 게임은 정신적 아편”이라며 게임 중독 해결을 위해 목소리를 높였다.

교육 분야에선 ‘학교 시험 금지’ 조치를 도입했다. 이날 중국 교육부는 초등학교 1~2학년은 지필고사를 볼 수 없도록 했다. 주간·월간 단위 시험뿐 아니라 비정기적 테스트·시간제한 연습 등 변칙적 형식도 금지했다. ‘쪽지시험’ 도 못 본다는 얘기다.

초등학교 고학년이나 중학생은 시험을 볼 수 있지만, 등수를 매기거나 성적을 공개해선 안 된다. 공부 잘하는 아이들만 모으는 우등반 편성도 금지했다. 학생에게 반복적·징벌적 숙제를 내서는 안 되고 학부모에게 숙제 검사 등을 부탁해선 안 된다.

이는 공산당 중앙판공청과 국무원 판공청이 지난달 말 과도한 숙제와 사교육 부담을 줄이겠다며 내놓은 ‘쌍감(雙減) 정책’의 일환이다. 당시 공산당은 학교 수업 관련 사교육 기업의 활동과 초·중등생의 사교육을 금지했다. 이런 강공책에 연 1200억 달러(약 138조 원) 규모의 중국 사교육 시장은 얼어붙었다.

31일 중국 베이징의 한 PC방에서 한 남성이 게임을 즐기고 있다.[AFP=연합뉴스]

31일 중국 베이징의 한 PC방에서 한 남성이 게임을 즐기고 있다.[AFP=연합뉴스]

중국이 사교육과 게임에 철퇴를 내리치는 건 시 주석이 강조하는 '공동부유' 때문이다. 부(富)를 공정하게 나누자는 ‘공동부유’의 시각에서 사교육과 게임은 가장 눈엣가시 같은 영역이다.

베이징대에 따르면 중국 개인 교습 시장은 2017년부터 3년간 연평균 30% 성장했고, 2019년 규모만 총 8000억 위안(약 146조 원)이다. 농촌과 도시, 소득 수준에 따른 교육비 불균형도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 속 중국 부모들은 입시와 취업 경쟁에 지친 자녀들이 게임에 과도한 돈을 쓰는 걸 걱정해왔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국 공산당이 해결책으로 꺼낸 것이 ‘유모 국가(Nanny State)’ 전략이란 게 파이낸셜타임스(FT)의 분석이다. 유모국가는 유모가 어린아이를 돌보듯 국민의 세세한 부분까지 간섭하고 통제하는 국가를 일컬는다. 공공질서 유지를 위해 촘촘한 규제를 펼쳤던 싱가포르가 대표적인 '유모 국가'다.

FT는 “(공동부유) 실현을 위해 중국이 택한 것은 규제”라며 “시 주석과 공산당은 전체 산업을 뒤엎고 자녀 교육과 게임 등 인민의 사적인 생활을 규제하는 등 (개혁개방 이후) 40년 동안 꾸준히 줄여오던 개인에 대한 간섭을 다시 늘리고 있다”고 평가했다.

홍콩에 있는 중국 헝다그룹의 헝다센터 건물 모습.[로이터=연합뉴스]

홍콩에 있는 중국 헝다그룹의 헝다센터 건물 모습.[로이터=연합뉴스]

문제는 강력한 규제 전략을 택한 중국의 행보가 중국 기업에 큰 타격을 주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 컨설팅업체 플레넘의 천룽 애널리스트는 “중국은 정치적으로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산업 전반의 환경을 변화시키는데 주저하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이미 철퇴를 맞은 사교육 시장뿐만 아니라 정부 정책의 희생양이 된 대표적 분야가 부동산이다. 중국 최대 부동산 기업 헝다(恒大) 그룹의 주가와 회사채 가격은 지난 6월부터 하락하며 유동성 위기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공동부유를 내세운 중국 정부가 잇따른 대출 규제로 부동산 개발업체의 자금 조달을 옥죄며 헝다그룹도 위기에 빠졌다”고 분석했다.

중국 당국이 부동산 시장 규제에 나선 것은 치솟는 부동산 가격으로 인한 불안을 우려해서다. 리서치 회사 EJ부동산에 따르면 중국 평균 주택가격은 연간소득보다 24배나 많다. 소득을 한 푼도 안 쓰고 24년을 모아야 집을 살 수 있다는 의미다.

의약ㆍ바이오 기업에도 된서리가 내릴 확률이 높다. 중국 국무원이 지난 6월 약값 인하와 의료체계 정비를 주요 정책 목표로 제시했기 때문이다. 헤지펀드 대부 조지 소로스 소로스펀드 및 오픈소사이어티 회장은 FT 기고문에서 “시 주석은 시장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해하지 못한 채 기업을 과도하게 규제하고 있다”며 “이 조치가 중국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비판했다.

중국 당국의 규제에 타격을 입은 곳은 중국 기업만이 아니다. 국내 업체도 영향을 받고 있다. 중국의 게임 금지 조치가 알려진 뒤 31일 국내 주식시장에서 중국 텐센트가 핵심 주주인 게임회사 크래프톤(-1.11%)을 비롯해 펄어비스(-7.55%), 네오위즈(-3.65%) 등 주요 게임 회사 주가가 하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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